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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영화 전문가, 김지석 [2]

‘핫 영화 소식’은 새로운 관객을 만들고 소통하는 공간

로우예 감독과 김지석 프로그래머

김지석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천편일률적인 영화문화를 바꾸는 데 일조했으나, 그 달라진 환경 때문에 딜레마에 처해 있다고 설명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타이영화를 수입하겠다고 나선 곳은 없었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데뷔작부터 애정을 쏟아온 펜엑 라타나루앙의 신작 <보이지 않는 물결>만 하더라도 국내 투자·배급사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3월에 개봉하겠다고 하더라.” 좀처럼 볼 수 없는 아시아영화들이 수입돼서 공개되는 것이야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젠 “부산이 아니면 볼 수 없다”는 희소가치를 내세우는 것으로는 도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것이 말처럼 쉽진 않다. “여전히 한국의 영화문화는 일본, 중국, 이란, 여기에 기껏해야 타이 정도에 관심이 맞춰져 있다. 2년 동안 인도네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뛰어난 작품들을 소개했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아시아영화를 연구하고자 하는 후배들조차 이들 나라 외에는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는다.” 스타들이 대거 몰려들었던 까닭에 지난해 영화제의 경우 외려 작품들에 대한 관심은 전보다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보아가 개막식 축하공연을 하는 것에 반대했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정체성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개막작 삽입곡을 부르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그렇다면 방책이 없을까.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영화제만 생각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는 이미 ‘제2의 티핑포인트’를 찾는 중이다. “갑자기 어떤 유행이 폭발적으로 번지는 사례들이 있다. 허시퍼피처럼 뉴욕 빈민가의 아이들에서 시작된 고급 브랜드처럼. 부산영화제의 성공은 그보다 더 명확한 원인이 있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제2의 티핑포인트가 필요한 시점이다.” 두 번째 도약을 주도할 이들은 부산국제영화제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3만여명의 열혈 관객이다. “마케팅에서 2 대 8 법칙이 있는 것처럼 새로운 뭔가를 끊임없이 찾는 이들이야말로 잠재 관객을 이끌어낼 커넥터라고 본다.”

인터넷 중독자처럼, 그가 어딜 가서든지 맨 먼저 PC방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처음엔 혼자 알고 있기에 아까워서 시작했다. 보도돼서는 곤란한 내용도 있긴 하지만. 또 영화제 예산에는 세금도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알아낸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셈이다. 정보 공유 차원에서 아시아영화 소식들을 올렸다. 그런데 지금은 충성도 높은 열혈 관객에 대한 서비스인 동시에 새로운 관객을 생성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3만명이라는 수가 적은 게 아니다.” 영화제 사무실에서 종일 컴퓨터 자판을 토닥거려도 그가 뒷말 듣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제가 일정 규모가 넘어서면 필연적으로 관객에 대한 서비스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3대 메이저 영화제에 가보면 알겠지만 그곳에 프레스와 게스트는 매년 늘어나지만 일반 관객은 줄어든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프레스와 게스트에 좌석을 내주다보면, 자연스레 관객이 영화제를 즐길 기회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부산도 이미 아이디를 내줘야 하는 이들이 1천명이 넘었다. 그러나 현재 70% 가까운 관객 좌석은 줄이지 않을 것이다.” 관객에게 부산국제영화제가 명절이 됐으면 좋겠다는 그는 “영화제에 부담이 되더라도 상영을 더 늘려야지 관객의 몫을 뺏어선 곤란하다”고 덧붙인다.

아시아에 영화에 대한 관심은 음식, 음악으로까지

고민이 산더미지만, 지난 10년 그는 무엇보다 “인생의 지표를 삼을 만한” 영화인들을 만나 행복했다고 한다. 어울려 식사를 하다 주머니가 걱정되어 함께 자리한 학생들에겐 추가로 삼겹살을 시켜줬더니, “지금 맥주를 마시고 있는 게 안 보이느냐”며 자신도 “돼지고기를 먹겠다”고 했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이란에선 음주와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굶주린 개에게 먹이를 주다 물려 광견병에 걸렸을지도 모를 위험에서도 이튿날 또다시 그 개에게 먹이를 주러 나섰고 또 의사의 만류에도 곧바로 부산을 찾았던 모흐센 마흐말바프, “신작 연출에 방해가 될까봐 차마 말을 꺼내지도 못했”는데 아시아영화아카데미 교장을 1년 더 해야겠다며 먼저 연락해온 허우샤오시엔 등등. 프로그래머가 누려야 할 감투라기보다 나눠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소신도 그런 만남을 통해 더욱 굳건해지지 않았을까. 한 스탭은 “안 들어줘도 욕 안 먹는 일까지 직접 챙긴다. 이를테면 작은 영화제에서 부산을 다녀간 감독들 연락처를 물어올 경우에도 그분은 모르면 찾아서라도 일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얼마 전부터 그는 아시아 음식에 이어 아시아 음악에 홀딱 빠져 있다. 아시아영화로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관심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해금이 있듯이 중국에는 얼후가 있고, 타이에는 소두앙이 있고, 일본에는 고큐가 있고, 이란에는 카만체가 있고, 몽골에는 마두금이 있고” 개막 공연이나 나중에 전용관이 만들어지면 실제 협연을 제안해볼 생각인 그는 “음식은 1분 만에, 음악은 3분 만에, 영화는 2시간 만에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다”며, 나중에 아시아 음식점, CD전문점, 영화상영관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을 갖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물론 부산영상센터 완공, 아시아영화 아카이브 추진이라는 영화제의 숙제보다는 후순위겠지만 말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는 길에 그는 “올해 <씨네21>의 화두가 뭐냐”고 묻는다. 그러더니 “비주류 영화들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취지라면 언제든지 돕고 싶다”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사족 하나. 그의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의 꿈도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다. “지나치게 꼼꼼하고 부지런한 아버지 닮았으면 곤란하다”며 부산국제영화제 스탭들은 아들을 기특히 여기는 아버지의 자랑에 일절 대응을 삼가고 있다. 물론 진심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꼽은 2006년 아시아영화 기대작 9편

<바다> 샤지 카룬/인도

케랄라의 거장 샤지 카룬의 신작. 2000년 PPP 프로젝트였으며,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편지와 일기를 통해 음악을 사랑하고 바다를 동경했던 그녀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게 되는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부산은 물론 칸도 이 영화를 고대하고 있다.

<두만강> 장률/중국

<당시> <망종> 등을 내놓으며 중국영화의 신성으로 떠오른 재중동포 감독 장률의 차기작. 이번 작품 또한 최두영 프로듀서가 제작을 맡았다. 두만강을 배경으로, 두 소년의 눈을 통해 본 탈북자의 이야기를 그릴 예정. 민감한 소재 때문에 이 작품 역시 지하영화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부납치> 어니스트 압디자파로프/키르기스스탄

구소련 붕괴 이후 영화산업이 거의 몰락해버린 키르기스스탄에서 주목할 만한 늦깎이 신인이 지난해에 나왔다. <사라탄>의 어니스트 압디자파로프가 그다. 특유의 유머와 냉소가 한층 더 빛을 발할 신작 <신부납치>는 키르기스스탄에 아직도 남아 있는 악습을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를 할 것이다. 제2의 악탄 압티칼로코프의 출현을 기대한다.

<천국에 가려면 죽어야 한다> 잠셰드 우스마노프/타지키스탄

민병훈 감독과 공동연출한 데뷔작 <벌이 날다>로 잘 알려진 잠셰드 우스마노프의 세 번째 장편영화. 결혼은 했지만 아내와 사랑을 나눌 수 없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타지키스탄영화의 부활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남프라> 위시트 사사나티앙/타이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티즌 독>으로 각광받았던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신작. 특출한 미각을 지닌 한 남자의 인생을 통해 드러난 사랑과 고통, 마음의 평온과 우울함 그리고 질투와 복수에 관한 이야기로, 또 한편의 독특한 판타지영화가 될 전망이다. 뤽 베송의 유로파사가 투자를 결정했다.

<하나보다 나호> 고레에다 히로카즈/일본

<아무도 모른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시대극. 라쿠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고 하는 유약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고레에다로서는 사실주의 경향을 벗어난 첫 작품으로, 메이저사인 쇼치쿠와 함께하는 대작이다.

<흑안권> 차이밍량/대만

차이밍량이 고향인 말레이시아로 돌아가 뮤지컬을 만든다. 하지만 내용은 인도와 중국계 이주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다루고 있다. 발리우드의 3대 칸 중 한명인 아미르 칸의 캐스팅이 아직 미지수이지만,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아 오스트리아 비엔나시가 후원하는 영화 중 한편으로 선정되어 제작비 문제는 해결되었다. 올가을 완성예정이다.

<개미의 통곡> 모흐센 마흐말바프/이란

정부의 미움을 받아 반망명 상태인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인도에서 제작 중인 작품. 평소 인도의 풍부한 정신세계를 동경해왔던 마흐말바프가 마침내 인도에서 영화를 만들겠다던 그의 오랜 꿈을 이루는 작품이다. 칸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칸이 아닌 다른 메이저급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일 것이다.

<여름궁전> 로우예/중국

<수쥬>에 이은 로우예의 신작. 지난 2000년 PPP 프로젝트였다. 외형적으로는 결혼 뒤에도 대학 시절 연인을 잊지 못하는 여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천안문 사태라는 역사적 사건이 시대배경이다. 중국 내에서 엄청난 논란이 예상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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