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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배우는 미국 현대사 [2] - 심화편
오정연 2006-03-15
심화편: 실존인물을 다룬 영화들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인간이다. 실명으로 영화 속 주인공으로 채택되는 인물들은, 조금은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남들보다 한발 먼저 그 흐름을 이끌었거나, 사회적 함의를 좀 더 많이 부여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았거나.

대놓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혁명이다

性을 부르짖은 사람들/ <킨제이 보고서> <래리 플린트> <부기 나이트>

<킨제이 보고서>

<부기 나이트>

아직도 미국은 섹스 어필하는 영화에 대한 검열이 폭력영화나 전쟁영화에 대한 그것보다 엄격한 나라다. 짐짓 보수적이고, 소수자에 대해서는 대놓고 예의가 없어서,// 피임의 필요성을 말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던 시기. 다양한 연력, 직업, 인종의 1만2천명을 심층인터뷰하여 남성 성기 중심의 성문화에 속하지 않는 사례가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 출간됐다. <킨제이 보고서>는 이를 작성한 앨프리드 킨지가 자신이 제시한 노골적인 성담론으로 사회의 표적이 되는 과정을 담았다. 킨지가 보고서를 출간한 지 20년이 흐르면, <플레이보이>의 평이한(?) 성적 상상력에 반기를 든 래리 플린트가 진정한 도색잡지 <허슬러>를 출간한다. <래리 플린트>는 이 속물 자유주의자가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미국 포르노산업의 이면이 궁금하다면 <부기 나이트>를 권한다. 가진 것은 ‘33센티’(도대체 뭐가?)뿐인 별볼일없는 인생이었던 에디가, 포르노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인생이 곧 음악이다

전설이 된 뮤지션들/ <레이> <라밤바> <앙코르> <도어즈>

<앙코르>

<레이>

잊혀지지 않는 뮤지션의 첫째 조건. 그것은 요절도 아니고 약물중독도 아니다. 그들, 그리고 그들의 음악은 어떤 식으로든 사회의 편견에 맞섰다는 것이 중요하다. 흑인에 맹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한 레이 찰스는 솔의 대부가 됐고,(<레이>) 멕시코 이민촌에서 출신인 리치 밸런스는 라틴음악을 미국 팝음악에 이식했으며,(<라밤바>), 짐 모리슨은 음란하고 쇼킹한 음악으로 히피들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도어즈>)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60년대 로큰롤 스타 조니 캐시를 다룬 <앙코르>도 최근 국내에서 개봉됐다.

링 위에선 누구나 주인공이다

스크린에서 부활한 복서들/ <신데렐라 맨> <허리케인 카터>

<신데렐라 맨>

<허리케인 카터>

배가 무지하게 고프거나, 무언가에 무지하게 화가 나거나. 유난히 복싱선수들 중엔 남 모를 분노를 간직한 이들이 많다. 일단 맨주먹만으로 링 위에 선다는 사실, 누군가 쓰러질 때까지 주먹을 휘둘러야 한다는 점이 어쩐지 처절하다. 대공황기 미국 서민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어주었던 짐 브래독의 이야기를 옮긴 <신데렐라 맨>은 그의 분노보다는 가족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초점을 맞춘다. 더욱 첨예하게 사회에 맞서는 헝그리 복서를 만나고 싶다면 <허리케인 카터>가 제격이다. 인종차별의 설움을 딛기 위해 권투를 시작한 촉망받는 프로복서 루빈 ‘허리케인’ 카터가 백인을 살해한 혐의로 20년 간 복역한 끝에 무죄로 풀려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져 있다.

진정한 평등은 아직 오지 않았다

여전히 할 말 많은 흑인운동가들/ <알리> <말콤 X>

<알리>

<말콤 X>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복서 알리를 주인공으로 하는 <알리>가 왜 이 항목에 끼었는지 궁금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해 챔피언 자격까지 박탈당한 이 성깔있는 사나이의 일생은, 오늘날까지도 첨예하기만 한 흑인인권 문제를 살펴볼 수 있는 통로가 되어준다. 알리는 대표적인 미국 흑인인권운동가 말콤X와 절친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알리>에도 말콤X는 등장하지만, 방탕한 청소년기를 보낸 끝에 역시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뒤 과격한 행동주의자로 변신한 말콤X의 인생은 <말콤X>에서 복습할 것.

불타는 스캔들의 연대기

모름지기 스캔들을 모르고 역사를 논할 수는 없다. 매카시 광풍을 잠재운 사건으로 평가되는 에드워드 R. 머로의 고발프로그램과 이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은 사건이 있은 지 무려 50여년이 흐른 뒤에 만들어진 영화다. 금기의 존재가 금기시되는 듯 보이는 미국이지만, 여전히 아킬레스건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케네디 암살 사건도 민감하기로는 순위를 다툰다. ‘실화 전문 감독’ 올리버 스톤이 <JFK>를 통해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설을 정면으로 부인하기도 했다. 온갖 종류의 게이트들의 원조가 된, 워터게이트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1972년 6월, 대통령 닉슨의 재선을 획책하는 스파이들이 워터게이트 호텔에 위치한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기사화한 주인공인 워싱턴 포스트의 두 기자를 주인공으로 사건의 전모를 정공법으로 파헤친다면, 최고의 자리에서 추락하는 닉슨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닉슨>은 영원히 케네디에게 이길 수 없었던 불운한 개인의 모습에 집중한다.

<에린 브로코비치>

거대한 기업의 비리에 맞서는 개인의 실제 이야기를 극화한 경우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대부분 담배회사의 비리를 밝히려는 추적보도 프로그램 PD와 회사 내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내부인 등 실제 사건을 옮긴 <인사이더> 속 갈등처럼 여전히 그 비슷한 성격의 사안이 현재진행형인 경우가 많다.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노조활동가 카렌 실크우드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실크우드>처럼 비극적 결말을 지닌 비장한 영화도 있지만, 대기업이 방출한 오염물질로 말미암은 피해를 끝까지 규명해낸 법률회사 말단직 여성의 이야기 <에린 브로코비치>는 줄리아 로버츠를 주인공으로 화끈하고 간결한 전개로 일반적인 상업영화로도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