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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중국시장 공략, 달라져야 산다
이영진 2007-10-23

폭발적 성장세 보이는 중국 영화시장 노리고 한·중 합작의 새로운 전략 모색중

중국 영화시장의 성장세가 놀랍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자오우 메가조이픽처스 부사장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영화의 총수입은 57억3천만위안이다. 우리 돈으로 치면 약 7천억원 규모. 이중 극장에서 거둬들인 수익은 전체 매출액의 46% 수준인 26억2천만위안쯤 된다. 자국영화의 극장 매출 기준으로만 보면 아직 한국 영화산업의 절반 수준이다. 참고로 한국영화는 지난해 5916억여원(영진위 집계)의 수익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중국 영화산업의 총수익은 매년 2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영화채널을 통한 방송수입과 해외판매 수입은 극장 매출보다 더 많다. 불법 복제물에 대한 정부의 규제, 관련 부처 내에서 시작된 등급제 논의, 외화 수입 편수 확대 등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전후로 그동안 중국의 영화시장 확대를 가로막았던 유통 환경 또한 어느 정도 변화할 전망이어서 대륙에 대한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

국가가 한발 물러서고 그 자리를 민간자본과 해외자본이 메우기 시작하면서 중국 영화산업은 그야말로 활화산이다. 중국 자국영화의 제작편수 상승폭이 이를 말해준다. 2002년에 제작된 중국영화는 100여편이었으나 2003년에는 140편으로 늘어났고, 2004년에는 무려 212편이 제작됐다. 330편에 다다른 지난해에는 “미국과 인도 다음으로 세계 3위의 영화제작 대국”으로 올라서기까지 했다. 자오우 부사장은 올해의 제작편수가 400편이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무인 곽원갑> <야연> <BB 프로젝트> <무극> 등 4편의 영화가 무려 8억1천만위안(약 1천억원)을 거둬들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잠자고 있던 중국 대륙을 깨운 일등 공신은 바로 합작영화다. 외국영화 수입권을 독점하고 있는 차이나필름그룹을 제외하면,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투자·배급사인 폴리보나의 위동 대표 또한 “지난해에도 30편이 넘는 해외 합작영화들이 만들어졌다”면서 “합작영화들이 중국 영화산업의 파이를 키웠다”고 설명했다.

“모든 기업이 중국으로 가지 않나. 한국영화도 마찬가지다.” 조민환 나비픽처스 공동대표의 말처럼, 중국시장을 노크하기 위한 한국영화의 발걸음 또한 많아졌고 또 바빠졌다. CJ엔터테인먼트는 지난 9월27일 중국 차이나필름그룹과 <탕카>를 공동제작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쇼박스도 오우삼 감독의 다국적 합작영화 <적벽대전>의 투자자로 참여했음을 알렸고, 태원엔터테인먼트 또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동제작 중인 유덕화, 홍금보 주연의 <삼국지: 용의 부활>의 일부 영상을 공개했다. 나비픽처스는 중국의 베이징나비픽처스, 홍콩의 옥토버필름 등과 함께 로맨틱코미디 <연애합시다>의 촬영을 코앞에 두고 있으며, 신씨네 또한 중국쪽 파트너와 함께 <신월동화>를 준비 중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집결호>는 잘 알려졌듯이, <태극기 휘날리며>의 스탭들이 결합했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 한류 열풍이 사그라들고 국내시장은 더이상 성장을 멈춘 상황에서 한국영화에 있어 중국시장은 마지막 기회이자 유일한 탈출구다.

중국시장 세분화, 전문적인 기획-제작 역량 투입

그러나 최강의 드림팀이 만나 대형 블록버스터가 만들어지고, 한·중 합작영화의 편수가 이전보다 많아졌다는 것보다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다. 바로 합작의 ‘꼴’이다. 시장의 문을 열기 위한 솔루션이 과거와는 뚜렷하게 다르다. 로케이션 촬영에 도움을 얻은(<아나키스트> <천년호>) 협작(協作) 사례나, 지명도 높은 양국의 스타들을 출연시킨 합작 케이스(<무사> <무극>)에서 분명 한걸음 더 나아갔다. 현재 진행 중인 한·중 합작영화들은 중국 대중이 반길 만한 소재나 베스트셀러를 재료로 택하고, 이를 중국 감독이 연출하고, 중국 배우가 출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쪽 파트너들은 한발 물러서되, 중국보다 더 경험이 많은 기획과 제작 노하우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탕카> <연애합시다> 등은 시나리오 기획 단계에서부터 “감독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중국식 대신 끊임없이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중국시장이라는 타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무늬만 합작이 아니라 실질적인 합작의 노력은 또 있다. 프로덕션슈퍼바이저로 <집결호> <적벽대전>에 참여하고 있는 이치윤 프로듀서는 “양국의 기술 스탭들이 결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이건 중국 시스템과 한국 시스템이 만나는 과거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형태의 합작”이라고 말한다. 과거 합작 프로젝트의 경우, 고작해야 현지에서 엑스트라를 구하거나 제편창의 도움으로 소품, 의상부문 정도를 지원받는 수준이었다. 이와 관련해 <아나키스트>의 프로듀서로 중국과 인연을 맺었던 이치윤 프로듀서는 “과거에는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어느 쪽이 분명 있었고, 그 때문에 한국 스탭, 중국 스탭, 홍콩 스탭으로 편이 갈리는 일이 많았다”면서 “그때와 달리 지금은 모두가 뒤섞여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현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많아지면 양쪽의 시스템이 시너지를 발휘해 새로운 형태의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 가능성을 바탕으로 현지에 합작 프로젝트에 프로덕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준비 중이다.

무협대작 뿐 아니라 저예산영화도 뚫어야

중국 내에서도 비교적 저예산인 영화들이 공동제작되는 사례들 또한 주목해야 한다. 한국과 달리 중국시장에서 각국의 거인들이 손잡고 만든 대형 합작 블록버스터는 중국 정부의 지원 사격 아래 이미 “성공이 담보된” 비즈니스다. <삼국지: 용의 부활>의 중국 내 배급을 맡은 폴리보나의 위동 대표가 “<삼국지: 용의 부활> 같은 프로젝트는 1억위안 이상의 박스오피스를 자신한다”면서 “이 정도면 할리우드의 <해리 포터>나 <007> 시리즈와 대등한 수준”이라고 덧붙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반면, 나비픽처스의 김성수 감독은 “중국시장이 황금어장임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선 대형 시대극이나 무협물이 아닌 그보다 작은 규모의 장르영화들이 성공할 수 있는 시장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홍콩에 기반을 둔 옥토버픽처스의 <크레이지 스톤>처럼 작은 규모의 영화들도 중국시장에서 수익을 거둘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연애합시다> <탕카> 등과 같은 저예산 프로젝트들이 좋은 성과를 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좀더 장기적인 포석들도 준비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는 중국의 차이나필름, 미국의 소니픽처스, 홍콩의 미디어 아시아 등과 함께 중국 신인감독 발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신인감독들에게 단편영화, HD영화 제작 기회를 준 다음 최종 과정을 통과한 재능있는 감독에게는 장편영화 연출의 기회를 주는 방식이다. CJ엔터테인먼트 해외팀의 서현동 부장은 “중요한 건 자본이 아니라 콘텐츠이고 재능이고 아이디어다. 그게 없으면 아시아 블록이 형성될 수 없고, 그걸 발판으로 북미시장 진입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미 정해진 길 위에 자본을 얹고, 인력을 더하는 방식으로 신규 시장을 창출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김성수 감독 또한 “중국시장을 지금 당장 예측하긴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중요한 건 눈앞의 수익보다는 다양한 실험도 마다않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인다. 마지막 도약대 위에 선 한국영화는 과연 중국시장에서 의미있는 열매를 딸 것인가.

“<무사> <중천> 같은 합작 방식엔 한계가 있었다.”

한·중 합작영화 <연애합시다> 제작하는 김성수 감독(나비픽처스 공동대표)

-<연애합시다>는 10월부터 촬영에 들어간다고 들었다. =지금 찍고 있어야 하는데 투자·배급사들의 덩치가 크다보니 좀 복잡하다. 이해가 충돌할 만큼 큰 영화는 아니니까 계약서 쓰면 곧 들어간다. 베이징을 배경으로 모던한 젊은이들의 삶이 내용이다. 메인 배우도 거의 결정됐다. 겨울에 촬영 들어가면 베이징이 너무 추워서 헌팅 후보지 중 하나였던 칭다오에서 찍을 계획도 있다.

-베이징나비픽처스라는 현지 법인을 차렸다. =<패왕별희> 등 40편 정도 프로듀싱한 장샤 대표와 이 회사를 차린 지는 2년쯤 됐다. <무사> 찍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미국영화만큼도 중국영화를 잘 모른다는 것. 친숙한 것 같은데 사실 무지하다는 것.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영화는 다른 나라가 아는 그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 중국쪽 친구들에게 다시 여기 와서 영화 찍겠다고 했는데, 더 깊숙이 그 시장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다. 그동안에 중국영화가 굉장히 빠른 변화를 겪고 있구나 느끼기도 했고. 베이징전영학원을 졸업한 한국 유학생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그들이 앞으로 상당한 역할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는다. 베이징나비픽처스가 그들에게 둥지 같은 곳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연애합시다>는 중국 감독, 중국 배우가 참여한다.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합작이다. =합작이란 게 상대를 이용하고, 또 상대가 나를 이용하게끔 나를 내주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한쪽이 주축이 된, 이를테면 <무사>나 <중천> 같은 형태의 합작 방식으로는 그런 주고받음에 한계가 있었다. 좋은 합작이란 결국엔 합작이라는 이음새를 지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합작은 형식인데 그것에 끌려가기 시작하면 내용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합작이라는 형식의 노예가 되면 영화의 내적 완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그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모하지만 중국시장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중국 대중이 어떤 영화를 원하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한국 영화산업의 중국시장에 대한 관심은 협소한 국내시장을 감안하면 필연적이다. =한류 10년이 끝나고 난 다음에 세월을 탕진한 것 같더라. 그러면서 한류는 어디선가 불어온 것이지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는 것도 명확해졌다. 한편의 영화가 일본에서는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고, 중국에서는 모더니티를 자극하는 시기가 한류의 정점이었는데, 이제는 그 자리가 없어졌다. 무슨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한국과 중국이 함께 영화를 만들 때 우리의 시도나 실험이 발판이 됐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연애합시다>는 중요하다. 시도들이 모아진다면 빌 콩이 보여준 것처럼 아시아가 힘을 합쳐 북미시장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유사 기획들이 너무 많아져서 아시아 무협물은 힘을 다한 것 같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