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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27살이었고"

<타짜> 조승우

뮤지컬 <헤드윅>의 공연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조승우는 <씨네21>의 <타짜> 리유니언 표지 촬영에 함께하지 못했다. 고니의 빈자리가 컸다고 하자 “이번엔 유독 공연 후유증이 컸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타짜>의 조승우, 조승우의 <타짜>는 떼놓고 언급할 수 없는 강력한 세트다. 조승우의 곁엔 그림자처럼 늘 <타짜>가 따라다녔고 그래서인지 <타짜>는 그에게 오래된 옛날 영화가 아니다. 개봉 이후 <타짜>를 다시 본 적 없다면서도 얘기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영화의 대사와 장면을 복사하듯 읊고 있는 조승우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특유의 솔직한 화법 사이사이, 함께 사는 반려묘의 소리도 간간이 끼어들었다.(조승우는 이번 촬영에 함께하지 못해 <타짜> 개봉 당시 촬영한 사진을 싣는다.)

본인의 출연작은 쑥스러워 다시 보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타짜>가 재개봉하면 극장에서 다시 볼 생각이 있나.

보지 않을 것 같다. (웃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실 <타짜>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주변에 진짜 많다. 특히 20대, 30대 남자들. 40대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처음 만났을 때 <타짜> 몇십번 봤어요, 그게 인사였다. 해마다 <타짜> 잘 봤다는 문자를 받아서인지, <타짜>를 찍고 15년이 지났다는 게 와닿지 않는다. 내가 50대가 되고, <타짜> 개봉 25년, 30년이 되면 그땐 볼 수 있을 것 같다. 얘기한 것처럼 조승우의 영화 대표작을 <타짜>로 꼽는 사람이 많다.

본인에게도 <타짜>의 고니는 애착이 가는 특별한 캐릭터인가.

그렇다. 촬영 현장이 굉장히 유쾌하고 자유로웠다. 물론 힘도 들었지만. 최동훈 감독님이 자율성을 많이 부여해줬고, 마치 즉흥연기하듯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내서 이런저런 신을 만들기도 했다. 우리 같이 한번 만들어볼까요, 하고 제안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작품이다. 군대에서도 사람들이 다들 나를 고니라 불렀다. 이몽룡에 버금가는 나를 대표하는 역할인가보다, 싶더라.

군대에선 이몽룡이 아니라 고니라 불려 내심 좋지 않았나.

몽룡이가 섭섭해하겠는데. (웃음)

돌이켜봤을 때, <타짜> 현장에서 어떻게 이런 연기가 가능했지 싶은 순간들이 있나.

그때 나는 27살이었고, 너무 어렸다. 백윤식, 유해진, 김혜수, 김윤석 선배님이랑 같이 있으면 나는 특별히 뭘 할 게 없었다. 그분들이 워낙 에너지가 쟁쟁하니까 그분들과 멋진 앙상블을 이루기만 하면 됐다. 자유로운 현장이었기 때문에 때론 즉흥적으로 재미나게 맞춰보고.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에너지 덕분에 제대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 거라 생각한다. 그때는 연기에 욕심을 부린 것도 별로 없었다. 재밌게 찍은 기억이 많다.

연기의 고수들 사이에서 연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그분들의 에너지에 눌린다거나 주눅 든다거나, 그런 분위기 자체가 없었다. 원작 만화에서 고니는 곰처럼 크고 퉁퉁한 이미지인데 나는 작고 왜소하고 어렸기 때문에, 그런 내가 고니를 연기해서인지 개봉하고 나서 나는 별로 존재감이 없었다. 아귀, 짝귀, 정 마담, 평경장, 고광렬은 다 화제가 됐는데 나는 주목받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품이 워낙 재밌어서 묻어간 거지. 그렇다고 거기에 주눅 들지도 않았다. 어쨌든 최선을 다해서 찍었고, 과정도 재밌었기 때문에.

<말아톤>으로 영화상을 휩쓸고 <지킬 앤 하이드> <헤드윅>으로 꿈에 그리던 뮤지컬 무대에서 열렬히 환호받던 시기에 <타짜>를 만났다. 그 시기엔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던 것 같나.

최동훈 감독님이 <타짜>를 하자고 제의했을 때가 2005년 <헤드윅> 초연 올렸을 때인데, 극장에 오셔서 “만화 <타짜> 알아? 만화 한번 봐봐. 재밌어” 하고 가신 기억이 있다. 만화를 봤을 땐, 이 역할을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 주는 거지, 싶었다. 20대 중반엔 항상 도전의 연속이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때도 사람들이 어떻게 저 여리여리한 배우가 하냐 그랬고, <헤드윅> 때도 조승우가 무슨 헤드윅이냐 그랬고, <말아톤>도 능력 밖의 일이라 못하겠다고 도망다녔던 작품이고, <타짜>도 화투짝 볼 줄 모르고 손도 무디고 게임에는 재능도 없는 상태에서 하게 됐다. 최동훈 감독님이 나를 원한다고 하니 민폐나 끼치지 않으면 다행이겠거니 하고 수락했다. 그 뒤로 주머니에 늘 화투를 넣고 다녔다. 모든 게 도전의 연속이었다. 최동훈 감독님은 당시의 내가 답답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20대 때 나는 20대처럼 살지 않았다. 철없는 생각을 해도 될 나이인데 어른인 척하고 애늙은이 같이 굴었다. 야생마처럼 날뛰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감독님이 얼마나 답답해하셨을까,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다.

평경장의 대사 중 “타짜의 첫째가 야수성”이라는 말이 있다. 배우에게도 그런 야수성이 필요할 것 같은데, 연기하면서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 안의 야수성을 발견한 적이 있다면.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인간 조승우가 할 수 없는 일들을 극중에서 경험한다. 그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는 건데, 그럴 때 내가 연기한 캐릭터가 조승우라는 인간을 설득시키는구나 싶다. 근데 <타짜> 때는 그 야수성을 잘 못 살린 것 같다. 그땐 풋풋한 야수성? 귀여운 야수성? (웃음)

<타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은 뭔가.

뭔가 불사르는 느낌? 한번 사는 인생 액셀 한번 밟아봐야 하지 않겠냐는 고니의 대사가 있는데, 고니는 물불 안 가리고 무조건 불살라버리는 느낌이었다. 뜯어먹고 뜯어먹히는 잔인한 야생의 세계에서 결국 살아남아 나중에 돈도 불살라버리지 않나. 고니의 마음속에는 불이 있다고 느꼈다.

그런 고니를 연기하던 당시 조승우 배우의 마음에도 뜨거운 불씨가….

없었고, 대리만족이었다. 불사르지 못하는 소심쟁이 배우의 고니 역할을 통한 대리만족?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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