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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감독의 인권영화 프로젝트(1)
2002-11-22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여섯가지 이유

박광수, 여균동, 임순례, 박찬욱, 박진표, 정재은. 세대도, 영화 색깔도 다른 이 여섯 감독이 함께 영화를 만든다. 10~20분 분량으로 각자 찍어 옴니버스 형식으로 한데 묶는 이 프로젝트의 공통주제는 뜻밖에도 ‘차별’이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 이하 인권위)가 인권운동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이다. 메세지 강한 영화가 환영받지 못하고 정치도 인기 없는 요즘에 보기드문 기획이다. 그 취지의 훌륭함에 공감해 참여했지만, 이 연출력있는 감독들은 메세지만 직설적으로 실어나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저마다 소재에 맞는 형식을 찾고, 그 안에 함의 깊은 역설과 영화적 재미를 담고자 애쓰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1991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에는 비디오테이프 한개가 전달됐다. <망각에 반대하며>(CONTRE L’OUBLI)라는 딱지를 단 국제 앰네스티 30주년을 기념 영상물이었다. 장 뤽 고다르, 알랭 레네, 샹탈 애커먼, 베르트랑 타바르니에 등 서른세명의 유명 감독들이 모여 만든 다큐멘터리는 철창 안에 갇힌 “전세계 양심수들을 자유롭게 하라”는 내용의 서한 형식을 띠고 있었다. 그 안에는 베트남의 시인을 석방하라는 에마뉘엘 베아르의 간청이, 모스크바 광장에서 고르바초프를 향한 파트리스 르콩트의 삿대질이, 테러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엘살바도르 여인의 살해자들에 대한 카트린 드뇌브의 경고가 담겨져 있었다. 테이프를 돌려보던 당시 민가협 총무 남규선씨의 눈에 낯익은 이름 석자가 들어왔다. 김성만. 숨막히는 80년대,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던 그였다. 감독은 <게엄령> 등의 정치영화를 만들었던 코스타 가브라스. 그는 신념의 자유를 허락지 않는 남한의 철창을 향해 흑인 래퍼를 내세워 “김성만를 석방하라”고 연신 외쳐댔다.

그로부터 10년여가 흘렀다. 타국에서 온 뜨듯한 영상편지에 대한 답신을 어떻게든 보내야 한다는 채무감 때문이었을까. 테이프를 건네받고서 “언젠가 한국에서도 이러한 프로젝트를 꾸려보겠다”고 계획했던 남씨는 오랜 진통 끝에 지난해 4월, 출범한 인권위에 몸담은 뒤로부터 틈틈이 ‘인권영화 프로젝트’ 기획에 매달렸다. 하지만 책정된 예산이 없는 상황에서 홀로, 그것도 의욕만으로 밀어붙이기란 난망한 일이었다. <외투> <내 컴퓨터> 등 인권을 소재로 한 단편영화를 함께 만들어왔던 여균동 감독이 없었더라면 중도에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맨땅을 고르고, 다지기 1년여. 여전히 인권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권영화 프로젝트가 기획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뜻이 통하는 감독들이 알음알음 인권영화 프로젝트에 가세했다. 여균동, 박광수 감독을 시작으로 이들 6명의 감독들이 한국의 인권상황을 영상으로 체크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남규선씨는 “편당 예산 5천만원이면 사비를 털어야 하는 상황인데 이를 뻔히 알면서도 제안을 묵묵히 받아들여준 감독들이 고맙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인권위가 제시한 ‘차별’은, 기본적 인권의 하나인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국가인원위원회법이 명시한 모든 유형의 차별을 포함한다.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병력(아팠던 경력) 등 18가지가 이에 해당한다. 인원위는 가급적 올해 안에 촬영을 마치도록 할 계획이며, 후반작업은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 의사를 밝혀 조력자로 나섰다. 6편의 단편영화 제작을 책임질 이진숙 프로듀서는 “영화가 완성되면 일단 영화제 중심으로 출품을 계획하고 있으며, 좀더 많은 관객과 만나기 위해 극장개봉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장 먼저 촬영을 끝낸 여균동 감독의 <대륙횡단>은 광화문을 홀로 건너면서 겪는 뇌성마비 장애인의 고통을,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가제)는 무관심 아래 자행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다룬다. 정재은 감독의 <그 남자의 사정>은 성범죄 사범의 인터넷 신상공개 제도를 둘러싼 논란을 아이템의 출발로 삼았고, 박진표 감독의 <오디션>은 영어공화국이라 불리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프닝들을 담는다. 아직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임순례 감독의 단편은 못생긴 외모의 여고생이 겪는 외모 콤플렉스가 소재. <방아쇠> 촬영을 진행하느라 박광수 감독만 아직 스타트를 못한 상태다. 박광수 감독에게선, 작품 내용 대신 아직 아이템을 정하지 못한 변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이영진 ant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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