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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 바치는 두편의 필름 에세이 [4]

“이왕 촌을 쫓겨난 이상 남자 털어먹는 직업을 가질래. 다방, 바, 돈벌이라면 뭐든지 할래.” “난 올케 사는 집 식모살이 할 테야. 잘사는 법을 지켜보고 배운단 말이야.” “서울에는 31층 빌딩이 있대. 우리 헤어져도 그걸 쳐다보고 살자.” “31층 떨어져 죽기 편리하겠다.” (<화녀> 중 두 이농처녀의 대화)

<황홀경>의 손거울에 비친 1970년대와 1980년대는 ‘그들만의 전성시대’다. <가시를 삼킨 장미> <꽃순이를 아시나요> <겨울여자>. 근대화의 썰물이 밀려나간 사금파리 투성이의 개펄에서 여공, 차장, 매춘부의 옷을 입은 무수한 영자들이 울고 있다. 그리고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멀티플렉스의 시대. 새로운 한국영화의 황금기는 이상한 망설임으로 남한 여성을 초대하기를 주저했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파이란> <서편제> <오아시스> 같은 성공적인 영화에서 남한 여성은 북한, 스위스, 중국 여성으로 대체되거나 남성적 환상이 투사된 병든 육신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한국영화와 여성의 밀월은 계속된다.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대기 속에서 다시 터를 잡는, 사방의 위협 속에서 탄생하는 여성영화인, 여성 관객의 낙원을 가리켜 김소영 감독은 ‘여성장’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인다. ‘여성장’은 지난해 군산 개복동 화재 참사에서 출구없는 주거환경 탓에 떼죽음을 당한 매매춘 여성들에게 바친 여성장(女性葬)의 기억 위에 여성들의 마당(場)이라는 의미를 접붙인 개념이다. 도시를 하나의 극장으로 둔갑시키고 있는 유무형의 스크린을 점령할 능력과 주변부 여성 노동, 가족, 성 정체성 문제에 진실하고 당돌한 발언의 욕구를 지닌 젊은 여성 감독들이 ‘여성장’의 안주인들이다. 완전히 새로운 장을 구성하고 가꾸는 일이 낡은 영화, 영화사에 주석을 달고 부정하는 작업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더 즐겁고 신난다는 것이다. “20대에는 염세적이어서 황홀경이라는 제목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황홀경>을 완성했다. 이 판타 다큐는 은어처럼 자유롭게 수영장을 헤엄치는 소녀들의 나신(소녀들의 페미니즘 <바다…>)으로 코다를 맺는다. 맑은 물에 씻긴 그녀들의 비늘이 뒤채며 빛을 발할 때 우리는 김소영 감독의 새로운 낙관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여성장(女性場)이 열린다. 주변부 여성 노동, 가족문제, 성 정체성을 다루는 여성 감독들. 영상이 자신의 언어가 된 10대 소녀들. 그녀들은 인터넷과 도시의 전광판을 점령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확장시키며 활개친다. 도시의 하늘이 그녀들의 것이다. 지하의 네트가 뿌리처럼 뻗어나간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과연 어떤 괴물들이 여신들이 뛰쳐나올 것인가. ”(김소영 감독의 내레이션)

* 김홍준 감독의 나의 한국영화-에피소드1:My 충무로>와 김소영 감독의 <황홀경>은 1월 3일부터 9일까지 매일 한회씩 서울아트 시네마에서 `한국영화를 기억하다`의 한 프로그램으로 상영 중이다.

나는 왜 영화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나

씨네필의 은밀한 즐거움을 위해

“충무로영화는 여성 관객의 영화다. 여성 관객이 없었다면 충무로영화란 존재하지 않았다.” 김소영 교수는 언제나 그렇게 힘차게 힘차게 외쳐온 연사였다. 그러나 지난 가을 학기 미국 버클리대에서 한국영화를 가르치며 그녀가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던 한국영화 다큐멘터리 장선우 감독의 <씻김>과 토니 레인즈의 <장선우 변주곡>은 그녀가 알고 있는 한국영화의 진실을 전하는 데에 쓸모없는 교재였다. 여성 감독, 여성 관객, 여성 평론가의 목소리에 두 다큐멘터리는 전혀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회는 여성부가 김소영 교수에게 대방동에 새로 설립하는 여성사 전시관 내 여인극장의 개관 프로그램을 2700만원의 지원금과 함께 의뢰하면서 찾아왔다. 김소영 교수는 정사(正史)가 아닌 일종의 도취상태에서 즐기는 다큐멘터리, 여성을 줄곧 피해자로 바라보지 않는 당당한 앵글, 교정과 부정이 아니라 완전히 처음부터 새로 쓰는 한국 영화사를 원했다. 김소영 감독과 이병원, 이정아 프로듀서, 그리고 한명의 남자를 포함한 연출부로 이뤄진 제작집단 ‘판타 시스터즈’는 2002년 11월13일 <황홀경>의 촬영을 시작해 크리스마스 무렵에야 촬영을 마쳤다. 김소영 감독이 <황홀경>을 통하는 구하는 목표의 하나는 교사의 그것이다. <황홀경>으로 처음 한국 영화사를 접하는 학생은 지금까지의 한국 영화사 다큐멘터리로 첫발을 뗀 학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영화의 지도를 그리게 될 거라는 희망이다. 한편 1980년대에 신상옥, 김기영 감독을 통해 한국영화를 재발견한 영화광으로서, 김소영 감독은 <황홀경>이 시네필들끼리 은근한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무엇보다 <황홀경>은 “시간은 많지 않고 할 일은 많다”고 느끼며 점점 늘어가는 김소영 감독의 조바심을 뿌리로 하여 피어난 꽃이다. “김기덕 감독 영화를 비판하기보다 다른 데에 시간을 쓰고 싶어요. 이루지 못했던 꿈들을 점점 실현시키고 완전히 새로운 구성물을 만들고, 그야말로 다른 경(經,境,鏡)을 만드는 쪽으로 가고 싶어요.”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한편의 다큐멘터리는 그 길 중간에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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