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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공포,나카다 히데오 [3]

<카오스>

<링>

유괴극을 중심으로 범인과 형사, 그리고 피해자의 가족이 얽혀든다. 그런데 영화는 이상한 방향으로 뻗는다. 시간대는 뒤죽박죽으로 배열되며 영화의 시점 역시 명확하지 않다. 사건 순서는 현재에서 불쑥 과거의 사건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좀더 앞선 시간대의 사건으로 건너뛴다. <카오스>는 등장인물부터 사건의 흐름, 그리고 이야기의 순서까지 어떤 규율을 차례로 허물어간다. <큐어>를 만든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간파했듯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고, 공범자도 배반자도 존재하지 않는” 괴상한 스릴러가 되어버린 것이다. <카오스>는 장르영화의 전형성을 벽돌을 허물듯 해체해버린, 실험작이라 할 만하다.

“공포영화 감독이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기회가 있었고, 어쩌다가 성공한 게 전부다. 앞으로도 돈을 벌기 위해선 공포영화를 만들게 될 것이다” 나카다 히데오의 솔직한 고백이다. 기실 나카다 히데오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에게 ‘공포영화감독’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망설여지는 점도 없지 않다. <유리의 뇌>와 <카오스>, 그리고 조셉 로지 감독에 대한 다큐메터리에 이르기까지 그는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다. 자신의 표현처럼 ‘우연’한 계기로 공포영화를 만들어 성공했으며 비슷한 길을 반복해 걷고 있는 것이다. <카오스>처럼 장르영화의 공식을 깡그리 무시하는 영화를 만들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반면, 나카다 히데오의 영화가 장르영화를 전면적으로, 그리고 비평적으로 재검토하는 작업이라 쉽사리 말하긴 어렵다. 그것은 구로사와 기요시와 비교하면 명확해진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큐어>(1997) 등의 영화를 통해 일본 장르영화의 전통 자체를 새롭게 인식하는 경지에 올랐음을 보여준 바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는 장르 구조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그것의 작동방식을 개조한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 일본 비평가들에게 아낌없이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론가 가미지마 하루히코는 “일본에서 영화는 죽지 않았지만 장르영화는 죽었다”라고 단언한 적 있다. 1970년대 이후 일본 메이저 영화사들의 대작주의(大作主義) 노선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영화산업 전체를 침체시켰으며 작은 규모의 오락 소품 정도가 장르영화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으로 일본영화 시스템이 변화했다는 분석이다. 나카다 히데오의 영화는 이 구조 내부에서 움직이는 의식있는 장르영화다. 독특하고 개성있는. 그러나 결코 무리하지 않는 정도로 소규모의.

무서운, 무섭지 않은

나카다 히데오의 영화는 무서우면서 무섭지 않다. 피가 튀거나 잔혹한 장면이 드물다는 의미다. <링> 시리즈를 떠올려봐도 사다코의 원혼이 TV 밖으로 걸어나오는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섬뜩한 대목이 많지 않다. 순간 관객을 놀래키거나 특수효과의 기술을 자랑하는 최근 여느 공포영화들을 기억한다면, 나카다 히데오의 영화는 깜짝쇼와는 궤도를 달리한다. 그리고 드라마 역시 탄탄한 편이어서 따스한 모성의 드라마가 그의 영화엔 곧잘 숨어 있기도 한다. <검은 물밑에서>에서 우리는 나카다 히데오의 숨겨진 장기를 구경하게 된다. 계속해서 물과 퇴락의 이미지, 어린 귀신의 등장에 내내 긴장하고 있던 관객은 기대 밖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공포의 영상 밑에서 끄집어 올려지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는 어느 어머니의 슬픈 이야기다. 그 끝자락엔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가 그러했듯, 허무적인 체념 그리고 숙명론의 분위기가 무겁게 맴돌고 있다.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

감독과 원작자가 말하는 <검은 물밑에서>공포, 사랑 뒤에 숨었다

나카다 히데오 감독과 소설가 스즈키 고지는 <여우령> 시절부터 인연을 쌓았다. 영화를 본 스즈키 고지가 감독에게 연락했고 <링> 시리즈의 영화화를 부탁했다. 원작을 쓴 스즈키 고지는 <링>의 시나리오 단계부터 참여했고 나카다 감독작인 <링2>에서도 시나리오 각색에 관여했다. 그리고 <검은 물밑에서>는 두 사람이 협동작업으로 재회한 영화이기도 하다. 스즈키 고지는 나카다 히데오의 연출에 대해 “난 공포영화라는 것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배치해선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영화는 두려움이나 공포를 배후에 흘려놓는 스타일이다. 그것이 뛰어나다”라며 평가한다.

<검은 물밑에서>의 스토리텔링에 대해선 “원작에 충실한 편”이며 “스토리의 출발점이 소설과 같고 흐름도 비슷하다”라며 논했다. 그렇지만 “소설은 소설 자체로서 메시지가 있는 것이고 영화는 또한 독자적인 이미지가 있다. 영화로서 재미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굳이 소설에 충실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며 원작과 영화의 관계에 대해 말했다. 그것은 <검은 물밑에서>의 결말이나 세세한 디테일이 소설과 다소 차이가 나는 점에 대한 원작자의 코멘트다.

스즈키 고지는 <링> 시절부터 ‘물’에 관한 묘사를 즐겼던 편이다. <검은 물밑에서>에서도 여전한데 이 점에 대해 그는 “‘물’의 모티브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물에는 무엇인가가 있다. 육지에 관한 공포스러운 이야기란, 역시 불가능하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왓 라이즈 비니스> 같은 영화를 봐도 미셸 파이퍼가 욕실에서 연기하는 장면이 무섭다.

물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은 만국 공통의 감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공포의 세계는 오컬트와는 거리가 있고, “오히려 현실적인 공포의 세계가 좋다. 예를 들어 누군가 함께 있는 이가 요트에서 떨어지는데 아무도 그것을 도와주지 않는 상황. 그것이 더 공포스럽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스즈키 고지의 소설은 공포를 묘사하는 고전적 문체, 도시의 풍경을 공포와 결합한 뛰어난 현대 호러물이다”라고 평하면서 “이야기의 효과적인 시각화를 위해 관객을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몰아넣기 위해 노력했다. 모녀의 관계라는 것이 영화를 본 관객 마음에 남는다면 영화를 만든 보람이 커질 것”이라며 연출자로서 견해를 밝혔다.

(여기서 스즈키 고지 관련 인터뷰는 <키네마순보> 2002년 1월 하순호에서 참조한 것입니다-필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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