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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편집기사 김현의 영화인생 7막8장 [3]

#5.

서울 시내 호텔의 커피숍. 신상옥과 김현이 마주보고 앉아 있다.

김현은 싫다고 했다. 78년, 신필림이 허가취소된 지 1년 남짓하던 때였다. 영화사 허가를 다시 내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신 감독의 시도가 다 좌절되자, 신 감독은 자신이 아끼던 편집의 김현을 포함해 촬영, 조명기사를 데리고 홍콩에 가서 영화를 찍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단체로 여권을 준비하던 와중에, 신 감독이 김현과 둘이 먼저 홍콩에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김현은 영어도, 중국말도 못 하는데 홍콩에 먼저 가서 뭘 할 수 있겠냐며 거절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 신 감독이 납북됐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이전에도 신필림은 부도가 나서 1년가량 쉰 적이 있지만 신 감독의 수완으로 극복해왔다. 이제 신필림이 재기할 길은 완전히 사라졌다. 김현은 실업자가 됐다. 한편으로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로 해방됐다 싶기도 했다. 그는 “내 꿈은 연출”이라고 줄곧 말해왔지만, 신 감독이 “편집을 알면 연출도 잘된다, 좀더 해라”고 해서 여기까기 왔다. 실업자가 된 게 역으로 감독으로 나설 기회가 될 수도 있었지만, 김현은 돈도 없었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에게 남아 있던 가난의 그림자가 무서웠다. 이장호 감독이 데뷔해 영화를 찍고 있었지만, 김현은 그걸 편집할 아무런 여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이장호의 조감독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배창호 감독이 82년 <고래사냥>을 들고 왔다.

“맥주 한잔 더 할까요?” 평소와 똑같은 억양으로 묻는 그는 하나도 취한 것 같지가 않았다. 가까운 맥주집으로 2차를 왔지만, 80년대 이후, 그러니까 편집인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뒤부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90년대 중반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한국의 감독들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써달라고 부탁해왔지만 거절했다고 했다. 지금도 편집을 하고 있고, 몇년은 더해야 하는 처지에서 감독들 품평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중견감독들이 시들한 게 큰 문제”라면서도 “감독들한테 할말이 정말 많지만, 편집에서 은퇴할 때 할게요”라고 덧붙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못다 이룬 연출의 꿈을 되새기며 자리를 파했다.

#6.

돈암동 삼영필름 사무실. 한쪽 방에 필름 더미가 쌓여 있다.

김현은 혼자서 열심히 자르고 붙였다. <고래사냥>은 명실상부하게 자신이 책임지고 편집한 첫 영화였다. 신상옥 감독은 편집도 자기가 다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었다. 영화는 성공했고, 이후부터 배창호 감독의 영화는 다 맡았다. 84년 충무로에 김현 편집실을 내고, 신필림 시절부터 친구로 지냈던 박철수 감독의 <어미>를 필두로 신명나게 일하기 시작했다. 유명감독들의 작품이 몰려들었다. 86년 후반부터 동시녹음이 본격화되면서 김현의 주가는 더 뛰었다. 신필림 시절 신상옥 감독이 <대원군> 세트 촬영에서 동시녹음을 했고, 김현은 이미 그때 동시녹음 편집을 해본 상태였다.

87년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호헌철폐운동이 벌어질 때, 정지영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 등과 함께 편집기사로 유일하게 반대서명을 한 탓에 영화사에서 편집 중이던 필름을 회수해가는 일이 벌어졌다. 반년가량 놀아야 했지만, 곧 다시 일감이 밀려들었다. 장선우, 박광수, 강우석 등 데뷔감독들도 줄지어 찾아왔고, 그는 동시녹음 기자재 스탠백이 있는 영화진흥공사로, 필름 싸들고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90년에는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이 5천만원가량 하는 스탠백 편집기를 그에게 사줬다. 1년에 10편 넘게 열심히 자르고 붙이고, 마시면서 과로로 쓰러져 한달 동안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7.

답십리 김훈의 집. 밤늦게 잠 못 이루고 창 밖을 내다본다. 멀리 동해바다에선 다시 고래가 자맥질을 한다.

48년생. 50대 중반을 넘긴 김현은 영화와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연출을 못해본 것이다. 직접 쓴 시나리오가 4편 있지만, 지금도 엄두를 잘 못 낸다. 실패해서 다시 가난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꾸 따라붙는다. 30대 감독들이, 김현을 어려워해 다른 젊은 편집기사들을 찾아가면서 최근엔 일감이 1년에 4∼5편으로 줄었다.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귀여워>의 김수현 등 그를 찾아오는 30대 감독은 조감독 시절부터 알던 이들이다. 요즘은 40대 후반에 결혼해 낳은, 초등학생 아들과 주말에 북한산 가는 게 갈수록 즐겁다. 주말이 다가오면 설레기까지 한다. 그 즐거움이 영화에 대한 사랑을 대체하기 시작하는 걸까. 이렇게 늙어갈지 모른다는 우려를 애써 떨치며 다시 다짐한다. “난 영화감독이 될 거다.”

김현 필모그래피

1972년 <삼일천하>

1974년 <욕망>

1975년 <아이러브 마마>

1976년 <여수 407호>

1977년 <사나이들>

1980년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1984년 <고래사냥>

1985년 <어미> <고래사냥2>

1986년 <황진이> <안개기둥>

1987년 <거리의 악사> <기쁜 우리 젊은날> <안녕하세요 하나님>

1988년 <성공시대> <사방지> <칠수와 만수> <달콤한 신부들> <개그맨>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비오는 날 수채화>

1990년 <우묵배미의 사랑> <남부군> <마유미> <그들도 우리처럼> <꿈>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젊은 날의 초상>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1년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서울에비타> <베를린 리포트> <천국의 계단> <경마장 가는 길>

1992년 <걸어서 하늘까지> <하얀 전쟁> <미스터 맘마> <그대안의 블루> <첫사랑>

1993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웨스턴 애비뉴> <화엄경> <그 섬에 가고 싶다> <투캅스>

1994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두여자 이야기> <세상밖으로> <게임의 법칙> <너에게 나를 보낸다> <마누라 죽이기> <젊은 남자>

1995년 <남자는 괴로워> <금홍아 금홍아>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맨?> <런 어웨이>

1996년 <러브스토리> <투캅스2> <지독한 사랑> <고스트 맘마>

1997년 <초록물고기> <비트> <산부인과>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1998년 <태양은 없다>

1999년 <이재수의 난> <> <구멍> <해피엔드> <박하사탕>

2000년 <킬리만자로> <청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무사>

2001년 <봄날은 간다> <흑수선> <오아시스>

2002년 <연애소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3년 <와일드 카드> <귀여워> <영어완전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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