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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보다 더 빛나는 할리우드 조연 12인방 [1]
박혜명 2003-06-05

톱스타 쓰니가 좋아? 쯧쯧‥ 우리도 없으면서

“아 정말 답답하네. 왜 그 사람 있잖아. <**>에서 !!로 나왔던 배우… 정말 생각 안 나? 얼굴이 어떻게 생겼냐 하면….” 이런 식으로 기억의 물꼬를 트게 되는 배우들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 그런 배우들을 조연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말라버린 기억력을 다시 길어올려야 할 만큼 그들이 가치있다는 사실을 그 누가 모를까? 기억을 더듬으며 할리우드의 명조연들 12명을 여기 초대한다. - 편집자편집 심은하 eunhasoo@hani.co.kr

그러니까 그는

출렁거리는 두부살 속에 예민한 촉수를 숨긴 남자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Philip Seymour Hoffman

1967년 생

주요작

1992 <여인의 향기>

1997 <부기 나이트>

1998 <위대한 레보스키>

1998 <해피니스>

1999 <매그놀리아>

2000 <올모스트 페이머스>

2002 <펀치 드렁크 러브>

멍하니 벌린 입, 창백한 흰 얼굴, 근육질 제로의 두부살, 힘없는 금발머리.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모든 것은 ‘무력’이란 말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기 나이트>에서 포르노 스타 덕에게 “제발 키스 한번만…”을 애원하다 거절당한 뒤 “이 좆같은 천치야!”라고 자학하던 포르노 중독자로 나왔을 때도, <플로리스>의 게이 가수 러스티였을 때도, <매그놀리아>에서 죽어가는 톰 크루즈 아버지의 남자간호사로 등장해 전화기를 잡고 울먹거릴 때도, 그는 이보다 더 무력할 수 없었다. “나는 마치 놀이터에서 괴롭힘당하고 동정받는 뚱뚱한 소년 같았다. 게다가 스코티, 더스티, 러스티, 죄다 뚱보 소년의 이름 아닌가!”

또한 그는 <리플리>에서 맷 데이먼을 계속 의심하다 죽음을 자초하는 얄미운 역을 맡아도, <올모스트 훼이모스>의 음악잡지 편집장 같은 시니컬한 역할이 주어진다 해도, 심지어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 애덤 샌들러를 괴롭히는 폰섹스 회사 ‘매트리스 맨’ 같은 악역을 맡아도, 악하기보다는 안쓰럽고, 남성적이기보다는 여성적이고, 즐겁기보다는 슬펐다. 때론 세상사에 전 듯한 얼굴로, 때론 세상의 흐름과는 상관없다는 루저의 표정으로, 어떤 것도 할 수 없고,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는 태도로, 그는 스크린을 휘적거리고 다닌다.

뉴욕대에서 드라마와 연기를 전공했지만 배우뿐 아니라 배우 외의 일자리도 얻기 힘들었던 그는 레스토랑 웨이터도 헬스클럽 경호원도 번번이 잘렸고, 실업수당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여인의 향기>는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해피니스>를 함께한 토드 솔론즈나 폴 토머스 앤더슨 같은 독립영화감독들이 앞다투어 그를 원했고, 앤서니 밍겔라, 조엘 슈마허 같은 감독들도 이 독특한 배우를 자신들의 작품에 모셔가는 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첫 주연작 <러브 리자> 덕에 유명 남성잡지 표지에 실리면서도 “역시 내 머리 크기는 참 비정상적으로 크다”는 자학성 멘트로 날리는 그. “나도 내가 볼품없는 남자란 건 안다. 그래도, 언젠가, 누군가, 최소한, ‘귀엽다’ 정도는 말해주길 기다렸는데 한명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고 한숨 쉬는 그. 혹시 길모퉁이나 버스 한 귀퉁이에서 멍하니 입을 벌리고 힘없는 슬픈 눈으로 앉아 있는 사내와 마주친다면, 꼭 이 말 한마디를 건네길. “아, 당신! 뚱뚱하고 땅딸막하지만, 참 귀엽네요”라고.

그러니까 그녀는

꼬리 아홉 달린 영국신사

짐 브로드벤트 Jim Broadbent

1949년생

주요작

1985 <브라질>

1990 <인생은 달콤하다>

1994 <브로드웨이를 쏴라>

2001 <브리짓 존스의 일기>

2001 <물랑루즈>

2001 <아이리스>

2002 <갱스 오브 뉴욕>

<아이리스>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탄 짐 브로트벤트가 미국 한 TV쇼 인터뷰장에 당도했다. “여기, 호주에서 날아온 짐 브로드벤트를 만나봅시다. 반가워요. 당신은 호주 사람이죠?” 준비성 없는 무심한 쇼 진행자의 질문에 짐은 당황하지 않고 온화한 미소로 대답한다. “죄송합니다. 영국사람인데요.” 그를 만나본 기자들이 “한결같고 조용하고 침착한”이라는 수식어를 이구동성으로 붙이는 사람.

그러나 짐 브로드벤트는 그리 일관성 있는 캐릭터를 선보이는 배우는 아니다. 아무리 그가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파티장 뒤켠에서 토끼꼬리를 달고 온 딸 르네 젤위거와 앉아 바람난 아내를 쳐다보며 담배만 뻑뻑 피워무는 신부복입은 불쌍한 가장으로 나왔다고 해도. 아무리 그가 알츠하이머병으로 고생하는 동반자 주디 덴치의 곁을 40년 동안 사랑으로 지키는 순애보의 주인공이었다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비정하게 외치는 <물랑루즈>의 포주 해럴드 지들러였고, 아일랜드 이민자들을 교묘하게 이용하던 <갱스 오브 뉴욕>의 트위드당의 간사한 보스 윌리엄 트위드였다.

런던 음악연극아카데미(LAMDA)를 졸업해 로열국립시에터,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등 ‘영국 연기의 엘리트 코스’를 고스란히 밟은 짐 브로드벤트는 주로 연극계에서만 활동해왔다. “사실 잘생긴 친구들은 TV로 바로 직행했던 시절” 그런 그가 공식적으로 영화계로 발을 옮긴 것은 <시간도둑들> <브라질>을 비롯한 테리 길리엄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면서다. 이후 마이크 리의 <인생은 달콤하다>에서 희망없는 속에서도 희망을 품은 소박한 요리사 가장으로 등장해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던 그는 결국 우아한 영국의 티 테이블에서 우디 앨런의 수다스런 뉴욕 식탁까지 당도하게 되었다. 수다라면 떨어질 것 없는 마틴 스코시즈가 <갱스 오브 뉴욕>에 자신을 부른 이유를 “싸기 때문에”라고 대답하는 겸손한 사람. 그러나 이런 그를 뻔한 영국 노인네일 뿐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아직까지 올해 쉰네살의 이 배우의 꼬리가 몇개인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백은하 lucie@hani.co.kr

그러니까 그녀는

똑똑하다. 멍청하다. 자애롭다. 거칠다

다이앤 위스트 Dianne Wiest

1948년생

주요작

1985 <카이로의 붉은 장미>

1986 <한나와 그 자매들>

1990 <가위손>

1991 <꼬마 천재 테이트>

1994 <브로드웨이를 쏴라>

1998 <프랙티컬 매직>

2001 <아이 엠 샘>

다이앤 위스트는 <뉴욕 소나타>(1980)라는 소품 수준 로맨틱코미디의 조연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우디 앨런이 미아 패로, 다이앤 키튼만큼 사랑한 여배우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 <라디오 데이즈>에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한나와 그 자매들> <브로드웨이를 쏴라>를 통해서 두번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미아 패로, 바버라 허시와 함께한 <한나와 그 자매들>에서 다이앤 위스트는 병적으로 강박증을 앓고 있는 텔레비전 프로듀서 미키(우디 앨런!)와 사귀는 여배우로 등장한다. 신경쇠약 직전의 지식인 세계에서 그녀는 충분히 미쳐버릴 만큼 ‘지적이다’.

그런데 웬걸. 8년이 흘러 <브로드웨이를 쏴라>의 다이앤 위스트는 백치와 자아도취로 무장한 한물간 늙은 여배우 헬렌 싱클레어를 연기하여 보는 사람이 미칠 만한 ‘무식함’으로 다시 한번 오스카를 가져갔다.

하여간 다이앤 위스트는 그 지성과 무지의 극단적인 간극을 지금까지도 힘들이지 않고 오간다. 이상하게도 그녀에게는 그런 둘 중 하나의 성격이 자주 맡겨진다. 그리고 대부분 성공한다. <가위손>의 착하지만 어딘가 비어 있는 화장품 외판원 펙 보그 부인, <첩보원 가족 로버슨>의 얼렁뚱땅 로버슨 부인. 또는 <아이 엠 샘>의 착한 아줌마 애니. 또는 영재 출신으로 특수학교를 운영하는 <천재소년 테이트>에서의 제인 그리어슨과 <미스터 커티>의 능력있는 여성 샐리.

그런데 이상한 건, 그녀가 한쪽으로 나아가려고 작정만 하면 우리는 속절없이 바보라고 놀리며 손가락질을 하거나 혹은 반대로 무슨 눈빛을 짓든지 믿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올해로 55살이 된 이 ‘할리우드 아주머니’는 여전히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 한순간 세상에는 없는 듯한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어주다가도, 또 언제 말 안 되는 대사를 내뱉을지 모를 일이다. “돈 스피크! 돈 스피크!” 정한석 mapping@hani.co.kr

명조연들을 한꺼번에 감상하는 방법우리는 패밀리, 감독-배우군단 합종연횡

<오션스 일레븐>

<위대한 레보스키>

폴 토머스 앤더슨이나 코언 형제, 스티븐 소더버그 등은 알려졌다시피 특정 배우들을 ‘군단’으로 묶어서 편애하는 감독들이다. 일명 ‘패밀리’로 불리는 이 배우집단은 감독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이합집산하면서 그 감독의 영화가 가진 연기력의 퀄리티를 보장한다. 물론 ‘패키지’로 이동하기 때문에 양적 보장은 기본이다.

이미 언급된 앤더슨의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와 코언 형제의 <아리조나 유괴사건> <바톤 핑크> <파고> <위대한 레보스키>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거기에 없는 남자> 등의 작품들, 그리고 소더버그의 <조지 클루니의 표적> <트래픽> <오션스 일레븐>은 그들 가문에서 개성으로 승부하는 배우들을 한번에 여럿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황금맥, 말하자면 매력배우 노다지땅이다. 열두명의 리스트에서 아깝게 탈락한 필립 베이커 홀과 윌리엄 H. 메이시, 토머스 제인은 앤더슨 가의 또 다른 대표 멤버들이며, 코언 가에서는 존 굿맨, 존 터투로, 스티브 부세미,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같은 일원들이 이 리스트에 합류하는 데 실패했다. 소더버그가 아끼는 흑진주 돈 치들 역시 근소한 차이로 제외된 경우. 어쨌든 이들은 어느 한 캐릭터를 대표적으로 집어내 말하기 어려울 만큼 다채로운 역할과 연기력의 폭을 자랑하는 특급 연기자들이다. 항간에 ‘이것이야말로 감독 자신의 성격이 여러 개로 분열돼 있어 불가피하게 다수의 페르소나를 필요로 하는 데서 오는 현상’이라는 비전문적인 분석 견해가 나돌고 있지만 아직 증명된 바 없다. 또 패밀리 멤버십 서비스는 받고 있지 않지만 회원들과의 충분한 팀워크를 과시한 베니치오 델 토로, 엘리엇 굴드 등도 외면할 수 없는 매력적인 배우들. 가이 리치 감독 역시 <록 스탁 투 스모킹 배럴즈>와 <스내치>를 통해 이전까지 조연 역에 한정해 있던 배우들을 주연급으로 끌어올린 케이스다. 제이슨 플레밍과 비니 존스, 제이슨 스태덤 등이 그의 손에서 컸다.

특정 배우들을 꾸려 가족화하지는 않았지만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과 <저수지의 개들>도 조연열전무대. 아만다 플러머, 빙 레임즈, 로잔나 아퀘트가 <펄프 픽션>에 출연했고 이 영화에 등장한 팀 로스는 하비 카이틀, 스티브 부세미, 랜디 브룩스 등과 함께 <저수지의 개들>에도 출연한다. 노장감독 로버트 알트먼의 작품들 역시 여러 인물들이 한 영화 속에 모여 균형있게 조율된 점에서 탁월하다. <숏컷>은 앤디 맥도웰을 위시해 매튜 모딘, 제니퍼 제이슨 리, 구스 반 산트의 <싸이코>의 앤 헤이시, <저수지의 개들>의 크리스 펜 등이 주요 출연진. <고스포드 파크>는 매기 스미스와 마이클 갬본 등과 같은 명노장배우들을 중심으로 이미 여기저기서 소개된 바 있는 연기파 배우진들이 문자 그대로 ‘한떼’ 등장하는 영화다.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와 줄리엣>, 테렌스 맬릭의 <씬 레드 라인>, 존 매든의 <셰익스피어 인 러브>, 샘 멘데스의 <아메리칸 뷰티>와 <로드 투 퍼디션> 등도 인상적인 조연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통로다. 박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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