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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할게.실은 나 이영화 좋아해,감독들의 커밍아웃 [2]
김혜리 2003-06-20

류 승 완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 감독

옛날 옛적 이 땅에 뮤턴트들이 살았나니?

<변강쇠>

1986 | 감독 엄종선 | 출연 이대근, 원미경

<사망유희> 재개봉! 충청남도 온양에 있을 때 중학교 1학년이었으니 1986년이었을 것이다. 난 스크린에 부활한 이소룡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동시상영관 중앙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같이 합기도장에 다니던 친구와 함께였는데, 우리가 당도했을 땐 동시상영작인 <변강쇠>의 프린트가 먼저 돌아가고 있던 차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 성적 판타지의 대리물은 학교 앞의 영화포스터만으로 충분했다. <어우동> <어울렁 더울렁> 등등. 가슴을 풀어헤친 포스터 속 여인네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등교하는 나를 그윽한 눈으로 맞아줬는데, 그래선지 굳이 에로영화를 봐야겠다는 마음은 좀처럼 일지 않았다. 그날 <변강쇠>를 굳이 봐야 했던 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변강쇠>가 상영되는 동안 극장 매점 옆의 의자에 앉아 비디오나 보면서 시간을 때우려고 했는데 그만 매표소 아저씨가 “바깥에서 누가 보면 안 된다”고 우리를 극장 안으로 떠밀었던 것이다.

장내는 대만원이었다. 특히 변강쇠가 폭포수 같은 오줌을 날리는 장면에선 폭소가 터져나왔다. 언덕에서 소방호스로 물을 뿜어댄 것이 분명한데도 누구도 그런 것을 문제삼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저렇게도 영화를 찍는구나” 하고 킥킥댔지만, 얼마 되지 않아 악역 전문 조연이었던 장혁 아저씨가 원미경 아줌마의 가슴을 더듬는 장면에선 나 또한 아저씨들과 함께 정신을 못 차렸던 것 같다. 대개 이야기를 들어서라도 알고 있겠지만, 영화에서 변강쇠가 판을 벌이면 여인네들은 쓰러지고, 옹녀가 판을 벌이면 줄초상이 난다. 이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들에게 해를 가하는 조선시대 성적 초능력자들이다. 변종인간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라고 보면 과장일까. <엑스맨> 시리즈보다 한참 빨리 나왔던 셈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변강쇠와 옹녀가 사람들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는 엔딩이 슬펐던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인 듯하다. 10대 시절에 유일하게 극장에서 본 에로영화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것이 전부다.

문 승 욱 - <이방인> <나비> 감독

외계에서 온 천사의 슬랩스틱

<미스터 빈>

Mr. Bean | 1990~1995 | 연출 존 버킨 외 | 출연 로완 앳킨슨

어느 날인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미스터 빈>이란 영국의 코미디 단막극을 보았다. 거의 무성영화에 가깝게 대사없이 슬랩스틱으로 꾸며진 코미디였다. 많이 웃었다. 정말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가뭄에 콩나듯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말에서 매우 점잖은 영국식 악센트를 느낄 수 있었고 엎어지고 무너지는 과장된 슬랩스틱한 몸짓이 아닌 꽤나 우아한(?) 작은 몸짓으로 폭소를 자아내는 기이한 코미디를 난 그때 정말 인상적으로 보았다. 나중에야 그 코미디가 <미스터 빈>이란 제목으로 설날마다 우리의 안방극장을 찾던 유럽식 시트콤이란 것을 알았다.

<미스터 빈>을 보던 날은 비가 몹시 오는 그런 우중충한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영화의 투자자를 찾는 기약없는 나날이 몹시도 나를 지치게 하던 그런 비오는 날…. <미스터 빈>은 세상에 나말고도 외롭고 지치고 바보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그가 벌이는 코미디의 포인트는 자기의 얄팍한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멍청한 잔머리 굴리기에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상처받기 쉬울 것 같은 여리고 소심하지만 맑은 그의 외로움이 기이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미스터 빈의 낡고 작은 아파트로 찾아가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정말 바보 같이 느껴질 때 찾아가서 위로받고 싶은 그런 친구 같다. 외롭지만 꿋꿋하게 잔머리를 굴리며 오늘도 세상과 한바탕 엎치락뒤치락 싸움을 벌이는 미스터 빈에게 살아갈 여유도 얻을 수 있다. 웃기는 일이지만 사실 그날 미스터 빈으로부터 받은 위로는 대단한 것이었다. 미스터 빈은 혼자 허름하지만 나름대로 깔끔한 자기만의 공간에서 산다. 여자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낸다.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세상에 나와서 정말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쓰는 애처로움이 느껴지는 그런 인물…. 아니면 외계인 같다고 해야 할까? 지구라는 세상을 그리고 인간을 처음 대하는 그런 신기함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거…. 사실 좀 거창하게 예기하면 예술가들의 그런 천진함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미스터 빈>을 보면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가 생각난다. 그래… 어쩌면 미스터 빈도 천사였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가 지상에 떨어진 이유는 너무 잔머리를 굴려서일 것이다. 천사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잔머리였지만 닳고 닳은 우리에게는 불어터진 자장면처럼 김이 빠지지만…. 그래도 그의 잔머리에서 천사들의 소박함을 느껴본다. 너무 감상적인가? 후후… <미스터 빈>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감상적이 된다.

민 규 동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공동감독

야동 세상의 복음서

<색즉시공>

2002 | 감독 윤제균 | 출연 임창정, 하지원

1.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나오는 주인공의 친구가 <Make’em laugh>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웃긴 춤을 춰. 풀 죽은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서야. ‘사람들을 웃겨라!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다!’라고 외치는군. 윤제균 감독의 영화는 날 위로해줬어. 왜냐고? 웃기니깐. 2. 벼랑 끝으로 몰려가는 ‘양’보다 스테파네트의 ‘질’을 택하리라 맘먹던 시절, <그로잉 업>이라는 걸출한 영화를 만난 뒤, 미국 10대의 섹스코미디는 모조리 훑었지. 결국 <High School Memories>라는 전설적인 영화도 만났어. 스쿨버스 맨 뒷좌석, 남자애들 4명이 순진한 여학생 한명의 옷을 벗겨 한 꺼풀, 또 한 꺼풀, 이내 질 속까지 탐구해 들어가는 프롤로그로 시작되는 영화야… 아! 그 영화는 끝내 보지도 못했으면서 아직도 왜 이렇게 기억이 선명한 걸까? 3. 기숙사는 늘 침투해보고 싶은 곳이었어. 특히 여대생 기숙사엔 만날 아라비안나이트가 펼쳐질 것 같았어. 낙엽 쓸리는 소리는 누군가의 치마 벗는 소리로, 커피 따르는 소리는 비누 거품 샤워소리로 들리던 곳. 이 영화는 다 알지만, 보고 싶지만, 잘 모르고, 보고 싶지 않은, 태고 때부터 한치도 진화하지 않은 아·우·性을 양념으로, ‘주인공은 죽도록 고생할 것 그리고 절대 희망을 잃지 말 것’이라는, 채플린이 막스 형제에게 그리고 우디 앨런에게까지 절절히 이어준 코미디의 2가지 원칙을 다채롭게 풀어내는군. 그가 어느새 이 비법을 체화한 걸까? 4. 나도 한때 사람들을 웃기는 걸 소명을 삼았던 광대였어. 말 못할 고독과 슬픔 따윈 가면 뒤로 숨길수록 좋다고 믿었어. 그래야, 사람들이 웃고 지나간 뒤 곤혹스럽게 찾아오곤 하던 허무감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으니깐. 발가벗고 무대 위에 올라 한바탕 쇼를 보여주고,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가 다음 레퍼토리를 고민하는 그를 사랑해. 그의 쇼가 추잡하다고? 쳇, 또 볼 거면서! 5. ‘Sperm Fry’ 먹어봤니? 진짜 해봤다. 그거 안 된다더라. 말이 많더군. 실은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 생텍쥐페리처럼 사막에 좌초됐는데, 어린 왕자를 못 만난다면, 어떻게 살아남을래? 몇 가지 방법이 떠오르지만, 아무래도 이거 괜찮은 것 같애. 틈틈이 정액을 짜내서 태양으로 튀긴 스펌 프라이 먹고 살아 남는 거야! 그나마 당최 꺼지지 않는 마법의 샘 아니니? 6. 추신. 요즘 불만사항? 요새 왜 이렇게 메일이 많이 오니? 에잇, 긍휼할 야동 천지 세상! <Sex is Zero>인데, 너무들 하는 거 아냐?

박 기 용 - <모텔 선인장> <낙타들> 감독

오, 고독한 늑대의 낭만이여!

<돌아온 외팔이>

Return of the One Armed Swordsman | 1969년 | 감독 장철 | 출연 왕우

1970년대 중반, 서울 종로의 재개봉관 화장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일단의 까까머리에 검은 교복 차림의 중학생들이 볼일을 보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평소에는 까불거리던 아이들도 왠지 입을 굳게 다물고 말이 없었다. 모두들 방금 보고 나온 <돌아온 외팔이>의 비장한 무사 왕우 같은 표정이었다. 우리반에서 제일 덩치가 크고 쌈을 잘하던 창식이는 혼자 창 밖 야경을 바라보며 고독을 씹다가 피우던 담배를 발로 천천히 비벼 끈 다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나가서 한잔 때리자.” 모두들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때, 화장실 문이 ‘팍’ 하고 열리면서 처음 보는 다른 중학교 애가 화장실 안으로 튀어들어왔다. 모두들 그 애의 입에서 나온 “단속 떴다” 한마디에 순식간에 혼비백산이 되어 서로 먼저 화장실 창문을 넘어 밖으로 도망가려고 난리가 났다. 고독한 무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철부지 중학교 2학년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었다.

내 중학교 시절은 이소룡과 함께 보낸 시간이었다. 4편 모두 평균 30번 정도는 봤고 우리집 빗자루대와 개줄은 전부 쌍절곤 재료로 쓰여 남아나질 않았다. 이소룡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시절 왕우는 이소룡과는 다르게 나를 사로잡았다. 이소룡이 현대적이고 가벼운 느낌이라면 왕우는 고전적이고 무거운 느낌이었다. 미국 물을 먹은 이소룡이 서구적이었다면 왕우는 철저하게 동양적이었다. 이소룡이 주로 맨손이었다면 왕우에게는 장검이 있었다. 이소룡이 요절한 천재였다면 왕우는 호흡이 긴 남자였다. 이소룡의 절권도가 스포츠 같았다면 왕우의 검술은 필살의 무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왕우는 외팔이였고 늘 고독한 냄새가 났다. 시쳇말로 ‘독고다이’였다. 그때는 ‘외로운’, ‘외톨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전율이 났었다. 동네 고아원 애들이 부럽기만 하던 나이였다.

오래 전 영화계를 떠난 왕우가 대만 암흑가의 두목이 됐다는, 그리고 진짜 외팔이가 되었다는 헛소문이 떠돌았다. 사실 여부를 떠나 왕우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왕우라면 영화 밖에서도 강호의 의리를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제 영화의 내용은 거의 다 잊었지만 부러진 칼을 들고 상대방을 길게 응시하던 짙은 눈썹의 왕우의 이미지는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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