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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4]
박혜명 2003-07-25

순풍타고 돌아온 정열의 에스메랄다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에서 <고독이 몸부림칠 때>까지, 선우용녀

I’m back_ 평범하고 솔직한 가정의 거실로

단정한 머리에 굵직한 진주 목걸이와 귀걸이, 화사한 오렌지빛 투피스 차림을 한 선우용녀는, TV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산층 이상의 고상한 아줌마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이 익숙한 스타일은, 바꿔 말하면 ‘중년연기자’라는 용어의 실제적 정의이고 선우용녀에 대한 우리 세대의 첫 기억이다. 엄마의 위치에 대한 딸의 첫 기억이 ‘여보’, ‘아무개 엄마’ 혹은 ‘아줌마’이듯이. 그래서 <순풍 산부인과>의 오 박사 부인 ‘용녀’로 시작되는 두 번째 기억은 중요하다. 여기서 그가 보여줬던 이른바 ‘망가진 아줌마’ 캐릭터는, 기존 드라마의 그것으로부터 90도 이상 틀어져 있으면서도 선남선녀 청춘배우들이 홍보용 멘트처럼 “저 망가졌어요”라고 말하는 것과도 달랐다. “의사, 판사 부인은 어떻다, 그런 게 있는데 사실 그런 사람은 한두 사람일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더 자유롭고 싶고 더 편한 사람도 많을 텐데. 그래서 아, ‘용녀’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일부러 더 캐주얼하게 편한 옷도 입고 그랬어요.”

그것이 ‘중년연기자 선우용녀의 귀환’이다. <대박가족>으로 이어진 ‘용녀’스러운 캐릭터로 아줌마도 웃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직접 보여준 그는,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다. 젊은 층이 소비하는 패스트푸드 식품 광고에 출연하는 한편, 연예인 10명이 각각 한편씩 맡아 시리즈로 제작된 우유 광고에서 ‘열정’이란 컨셉을 표현했다. 붉은색의 집시 드레스를 입고 탱고를 추는 그의 모습은 <노틀담의 꼽추>에 등장하는 에스메랄다를 연상시켰다. “내가 아주 옛날에 <노틀담의 꼽추>를 뮤지컬로 했었는데 우리 후배가 어떻게 그걸 알아가지고 그것처럼 하자고 그러더라구.” 1969년 명동의 한 극장에서 당대의 스타 이대근과 함께 공연했던 그때, 그는 “그 CF랑 똑같은 옷 입고 내 머리도 이렇게 기르고” 있었다. 임신 4개월의 몸이었지만 지금보다도 날씬했던 그때.

Once Upon a Time_ 넘치는 스케줄, 메마른 열정

원래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선우용녀는, 원하는 대학에 시험쳤다가 떨어진 뒤 친언니의 권유로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그해 6월엔 동양방송(TBS)이 개국할 예정이었다. 교수는 2개월짜리 신입생에게 추천서를 써주면서 방송사에 시험칠 것을 권했다. 그때까지도 연기에 별 관심이 없었던 그는 발레를 배운 경험을 살려 무용분야로 지원했다. 그런데 TBS는 그에게 합격 통지서와 함께 입사 동기들 중 가장 먼저 드라마에 발탁되는 기회를 주었다. 선우용녀의 연기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숲속의 바보>

<순풍 산부인과>

<대박가족>

처음부터 그는 “잘 나갔다”. 데뷔 드라마 <상궁나인>(1966)은 곧바로 히트했고 여기서 선우용녀의 연기를 눈여겨본 김기영 감독이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에 그를 캐스팅했다. 이후 82년 <친구 애인>을 끝으로 미국에 이민을 다녀올 때까지 그는 스무편에 가까운 영화에 주·조연으로 출연하고 그보다 많은 수의 드라마를 소화했다. 분위기 있는 여배우와 탤런트로 인기가 높아지면서 TV드라마 <외아들>로 TBS TV연기상을, 김수용 감독의 <산불>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생활은 그에게 늘 힘들었다. “그땐 한국영화 쿼타 딴다고 일주일 만에 영화 한편씩 찍으니까, 거의 뭐 기계처럼 했죠. 그리고 지금은 머리 해주는 사람, 옷 입혀주는 사람 다 따로 있지만 그땐 내가 옷설정하고 화장하고 머리하고 그리고 촬영장 가면서 대본 읽고 그랬어요. 진짜 정신없었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 비단 환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힘들던 와중에도 연기에 대한 열정이나 애정은 혹 없었는지 묻자 그는 말이 없었다. 잠시 뒤, “근데…” 하며 조심스러운 대답이 들려왔다.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하고 싶지 않은데 하려니까….” 20년 가까운 연기생활은 이렇게 정리됐다.

선우용녀에게 연기에 대한 열정이 솟구치기 시작한 것은 귀국 뒤 KBS 사극 <역사는 흐른다>에 출연하면서부터였다. “그땐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했죠. 그리고 여건이 주어지면 영화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는 의욕이 말라 있던 젊은 때를 후회하는 것 같았다. “아쉬움은 있어요.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서…. 하지만 나이에 맞춰서 할 수 있는 역할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맞춰서 해가는 게 좋은 거 같아요.” 그 아쉬운 심정을 ‘아쉬움’이란 단어는 다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다. 카메라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던 그가 갑자기 “예전엔,” 하면서 몸을 뒤로 젖혀 우아하고도 섹시한 자태를 만들어 보이더니 말했다. “이러고 사진 찍었잖아.” 이어서 그는 중얼거렸다. “만날 옷 바꿔 입고 카렌다 찍고 그랬는데… 다 옛날 일이지.”

The Show Must Go On_ 이 나이엔 느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

중견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할머니 한명을 두고 세 할아버지가 사랑의 줄다리기를 벌이는, 60대 중반 노인들의 로맨틱코미디다. 여기서 선우용녀는 주현과 김무생 그리고 송재호의 젊은 마음을 사로잡는 우아한 할머니 ‘인주’를 맡았다. “시켜준다고 해서 고마웠지요, 뭐. 요즘 영화가 젊은 사람들 위주라, 이런 영화가 한번쯤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우리 나이엔 느낄 수 있는 게 더 많은데.” 그에게 드라마 하는 것이 “펑퍼짐한 옷을 집고 안방에 누워 있는” 거라면 영화하는 것은 “잘 차려입고 외출하는” 거다. “그러니까 설레요. 오랜만에 찍는 거라. 음식도 조절해서 먹고 있어요. 영화는 스크린도 큰데 하마같이 나오면 안 되잖아요.” 젊은 배우들이나 농담 핑계로 털어놓을 법한 속내를 밝힌 것이 스스로도 쑥스러운지 소리내서 웃는다.

그는 연기가 아직도 어렵다. 본인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되는 일이긴 하지만, 거기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는 연기란 말은, 참 흔한 표현이긴 해도 연기경력 38년의 중견배우가 하는 말이라면 그것은 순전히 경험이고 깨달음이다. “‘안녕하세요∼’ 하나를 하더라도 어떤 기분에서 안녕하신지가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정말 어려워요. 영원히 답은 없는 거 같아요. 그냥 그 답을 각자가 찾아가는 거죠.” 그래도 사람들은 그에게서 많은 답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순풍 산부인과>의 ‘용녀’가 그 답의 일부였고, <고독…>의 캐스팅은 그 답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본인은 “그냥 그런 데에 끼게 된 것 같아요. 나이든 사람들도 고독하지 않게 껴주시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라며 그런 평가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지만, 선우용녀가 뒤늦은 열정 속에 만난 ‘용녀’를 ‘새로운 정답’말고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글 박혜명 na_mee@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필 모 그 라 피 (Filmopraphy)

1945년생

영화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1966) <태백산맥>(1975) <산불>(1977) <세종대왕>(1978) <황토기>(1979)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 외 다수

TV <상궁나인> <아씨> <외아들> <역사는 흐른다> <순풍 산부인과> <당신때문에> <햇빛 속으로> <대박가족>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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