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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2003 한국 공포 에세이 [1]

악몽을 씨앗으로 시(詩)를 짓다

2003 한국 호러의 ‘예술’ 도전- 절반의 성공, 혹은 시행착오에 대하여

듀나 djuna01@hanmail.net

<여고괴담>이 개봉된 1998년을 원년으로 잡는다면, 우린 벌써 한국 호러영화 부흥기의 5년째를 맞이하는 셈이다. 그동안 우리는 두 차례의 여름 호러영화 열풍을 맞이했다. 첫 번째는 <가위> <하피> <해변으로 가다> <찍히면 죽는다>와 같은 영화들이 무더기로 우리를 찾아왔던 2000년이고, 두 번째는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장화, 홍련> <거울속으로> 과 같은 영화들이 개봉된 2003년이다.

겨우 3년이 흘렀지만 그동안 한국 호러영화가 이룩한 발전은 상당하다. 2000년 호러 열풍의 결과는 소문과 작품 수를 고려해본다면 시시했다. <가위>를 제외한 나머지 영화들은 흥행에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고, 대부분 약간의 오컬트를 첨가한 슬래셔 무비 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2003년에 개봉된 호러영화들의 흥행 성적은 모두 기대 이상으로 좋았으며 소재와 스타일도 다양해졌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2000년의 호러영화 열풍이 그렇게 가볍게 평가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해야겠다. 양에 비해 결과가 시원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고 대부분 일본과 미국영화의 모방이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특정 장르가 자기만의 힘으로 피어오르기 위해서는 이 과도기적인 단계는 필수적이다. 관객의 수용폭을 알기 위해서는 안전한 영화들의 전초전이 먼저 따라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걸 거치지 않고도 독창적인 영화들이 나오면 좋지만 예술만 가지고 모든 일이 되는 건 아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2000년이 조심스럽게 한국 호러영화의 시장과 장르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면, 2003년은 그 기반 위에서 한국 호러영화가 본격적으로 ‘예술’을 하기 시작한 해였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예술’하기는 얼마나 성공했는가?

실속있는 공포 <장화, 홍련>

이번 여름 시즌에 나온 호러영화들 중 장르 관객에게 가장 실속있는 작품은 <장화, 홍련>이다. 이 평가는 비교적 쉽게 내릴 수 있는데, 이 영화가 지금까지 나온 네편의 영화들 중 가장 공포 자극의 강도가 높은 작품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화, 홍련>에는 극장 안의 모든 관객이 목청껏 비명을 질러댈 만큼 직접적인 효과를 내는 공포장면이 하나 있고 그만큼은 못해도 비슷한 수준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장면들이 서넛개 더 있다.

이 단순한 미덕은 결코 값싸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첫째, 이런 공포 자극이야말로 관객이 공포영화를 찾고 공포영화라는 장르가 존재하는 진짜 이유이다. 둘째, <장화, 홍련>이 이 자극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용한 테크닉은 쉽게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영화가 깩깩거리는 효과음처럼 손쉽고 진부한 공포 도구들을 남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나 쉽게 지적해낼 수 있는 진부함은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니다(반대로 이 영화의 감독판이 나온다면 깩깩 소음과 같은 것들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런 진부한 공포 도구는 자신이 충분히 관객을 자극할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은 감독이 허겁지겁 단 안전망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관객을 겁먹게 하기 위해 동원하는 진짜 무기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 혼란스러운 스토리와 설정 속에서 빚어지는 불안함과 같은 은밀한 것들로, 모두 장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의 손에 의해 다듬어졌다. 이 영화의 가장 효과적인 공포 장면인 ‘얼굴 가린 아침 유령’ 장면을 보라. 이 장면은 순전히 초자연적인 현상이 주인공에게 일어난다는 것과 주인공과 관객이 그 초자연적인 대상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 둘을 엮어 만들어낸 것이다. 나머지는 굉장히 정교하고 어느 정도는 독창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리듬감에 의해 통제된다.

<장화, 홍련>은 성공적인 흥행작이었지만 비평적인 면에서는 그렇게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미 이 영화의 구체적인 장단점들에 대해서는 전에 쓴 영화읽기에서 지적했으므로, 이 글에서는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는 부분들만 다시 검토해보기로 하겠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자주 공격받는 대상은 시나리오이며, 실제로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는 몇몇 심각한 단점들이 있다. 하지만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는 내러티브의 모호함은 충분히 변호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분명치 않은 내러티브가 주는 불안한 느낌은 영화가 제공하는 공포 효과의 가장 큰 무기들 중 하나이고 영화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호러영화의 감독이 자기가 하는 이야기의 모든 진실을 알 필요는 없고 그걸 다 들려줄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요소들을 가지고 관객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이며, <장화, 홍련>의 각본은 지금 지적한 부분에서만은 확실히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 고전동화를 모방한 비교적 단순한 갈등 구조를 따르는 척하는 영화인데도 근친상간에서부터 동성애, 페티시즘에 이르는 다양한 서브텍스트가 끝없! 이 발굴되는 것도 영화의 의식적인 모호함이 보기보다 생산적이라는 증거이다.

그 다음으로 자주 지적되는 건 오버 디렉팅의 혐의를 지울 수 없는 스타일 과용인데, 적어도 호러영화라는 장르 안에서 이는 쉽게 변호될 수 있다. 호러 장르는 절제의 장르는 아니다. 마리오 바바, 다리오 아르젠토, 로저 코먼, 테렌스 피셔와 같은 이 장르의 거장들은 모두 과잉의 미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리사와 악마>와 같은 마리오 바바의 영화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요란한 스타일 과용에 비하면 <장화, 홍련>은 오히려 절제된 편이다. 과잉이 자기 역할을 한다면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여우계단>의 예고된 실패

올해 호러 영화계의 패자는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이하 <여우계단>)이다. 이 영화의 실패는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미리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영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여고괴담>이라는 시리즈에 대한 선입견이 얼마나 우리를 오도했는지 검토해보기로 하자. 이 영화가 저지른 실수는 대부분 사람들이 이 시리즈에 대해 품고 있는 선입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가장 기초적인 질문. <여고괴담>은 성공적인 시리즈인가? 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고괴담>이라는 시리즈의 예술적 생산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여우계단>이 나오기 전에 <여고괴담> 시리즈에 소속된 영화는 겨우 두편이며 시리즈를 의식하고 제작된 영화는 단 한편이다. 제대로 된 귀납적 추리를 위해서는 사례가 하나보다는 많아야 한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가 상당히 비정상적인 속편이었다는 걸 고려해보면 우린 <여우계단>의 성공 여부와 시리즈의 명성이 거의 무관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여우계단>은 시작부터 독창성이 결여된 영화는 아니다. 소원을 비는 여우계단의 전설과 세 주인공들의 소원을 에셔의 계단처럼 밟아가며 저주와 공포의 스토리를 쌓아올리는 이야기의 구조는 분명 새로운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담기 위해 영화가 끄집어낸 그릇은 이전 영화들의 답습이다.

<여우계단>의 가장 큰 실수는 시리즈의 명성을 과대평가했다는 데 있다. <여우계단>의 작가들과 감독은 전혀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대신 충실한 속편을 만들었다. <여우계단>이 한 일은 <여고괴담>에서 스타일과 설정을,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 스토리와 인물을 취해 하나로 묶은 것이다. 거창하게 말한다면 <여우계단>은 존재하지 않는 방패막 속에서 태어난 영화이고 <여고괴담> 시리즈의 명성은 <여우계단> 작가들과 감독의 나태함에 책임이 있다.

결과는 치명적이다. 영화는 무섭지도 않고 정서적 감흥도 존재하지 않으며 비판의 기능도 없다. 1편의 콩콩콩 귀신이 2편의 뱅뱅 귀신, 사다코 귀신, 마리오네트 귀신으로 변신해 스크린 안으로 들어올 때 우린 이 영화의 심각한 문제점을 인식하게 된다. <여우계단>에는 갈아입을 옷만 존재할 뿐 정작 그 옷을 걸칠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고괴담> 시리즈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콩콩콩 귀신의 전통을 따르는 ‘속편’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이 시리즈의 질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건 지난 5년 동안 한국 호러영화가 그만큼이나 성장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듀나의 2003 한국 공포 에세이 [1]

▶ 듀나의 2003 한국 공포 에세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