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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영화광 시대가 왔다 [4] - DVD 컬렉터
오정연 2004-05-11

언제든 내 맘대로 본다

DVD 콜렉터 전승민씨

모 금융회사 과장 전승민(33)씨. 맞선 자리에서 오가는 그 흔한 질문이 그에겐 다소 곤란하다. “취미가 뭐예요?” “DVD 타이틀을 모으고 있습니다.” “몇장 모으셨어요?” “몇장일 것 같아요?” “설마 100장?” 이런 식이다. 그가 소장한 타이틀은 대략 1700여장. 그나마 박스 세트로 구입한 것들을 모두 한장으로 쳤을 때의 이야기다. 마니아들 사이에서 그것은 ‘제법이군’ 정도겠지만 일반인에게는 상상이 안 가는 수준이다.

전승민씨는 대학 때는 과후배들과 영화동호회를 운영했고, 단편영화 스탭으로 참여하기도 했지만, 시네마테크 문화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거기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영화를 제대로 모른다는 듯한, 왠지 모를 우월감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지난 2001년 퇴직금 중간 정산을 했다. 그리고 그중 일부로 AV 시스템을 소박하게 장만했다. 그렇게 눈뜨게 된 DVD의 세계. 예술영화전용관에서 개최하는 영화제들을 쫓아다니지 않는다고, 영화책에서만 접했던 고전들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 고전들을 친절한 설명(서플과 코멘터리)과 함께 집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지점이었다. 게다가 주위 사람들(그는 현재 mydvdlist의 고전영화 동호회에서 활동 중이다)의 추천으로 타이틀을 구입한 뒤, 영화가 좋으면 금방이라도 그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구할 수도 있었다. 물론 다른 수집광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주변의 ‘펌프질’(바람잡이)에 큰 영향을 받는다. <에이리언> 박스 세트가 대표적인 케이스. 그러나 <버스터 키튼 박스 세트>처럼 출발은 펌프질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만족한 경우도 허다하기에, 원인을 따지는 건 이젠 거의 무의미하다. 어느 순간 구입속도가 감상속도를 앞질렀기에,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타이틀 중 못 본 것도 태반이다. 직장인인 그에게 언제든 마음이 내킬 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DVD가 주는 또 다른 매력이다.

그도 한때는 영화와 관련한 직업을 가지려 했다. 그러나 “패기만으로 덤비기에는 당시 뛰어난 분들이 너무 많았다. 미련없이 좋은 관객으로 남겠다는 결심을 했다”. DVD를 모으기 시작한 이후에도 그가 극장가는 빈도는 줄지 않았다. 최신작의 경우, 어쨌든 극장에서 영화를 본 뒤에 괜찮은 것들을 구입한다. 이 밖에 한주 만에 내려버릴 것 같은 영화들을 극장에서 보고, 부산, 전주, 부천영화제를 찾아다니는 것은 ‘좋은 관객’이 되기 위한 노력들이다. HD급 DVD가 나온다 해도 현재 가지고 있는 타이틀을 모두 새로운 매체로 바꿀 것 같지는 않다는 전승민씨. 그는 모든 영화를 최고의 화질과 음질로 감상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AV광이 아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사랑해왔던 영화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즐길 수 있는 매체로서 DVD를 사랑하고 있었다.

베스트10 (순위없음)

<셜록 주니어>/ 오랜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를 능가하는 ‘영화에 대한 영화’는 없다(‘The Art of Buster Keaton’ 11 디스크 박스 세트 중에 담겨 있으며, 해외에서 무사히 배송받고 제일 뿌듯했던 타이틀 중 하나).

<동경 이야기>/ 평범한 일상에서 이끌어내는 비범한 진실(오즈의 전작이 출시된 일본판은 일본어 자막밖에 없어 미국판을 구입. 미국판에는 오즈에 관한 다큐멘터리 2편, 음성해설 등이 서플로 제공된다).

<용서받지 못한 자>/ 스튜디오의 장르영화가 다다를 수 있는 경지. 이 영화에 이르러서야 총잡이는 비로소 하나의 인간으로 온전히 이해받을 수 있다(일반판과 2 디스크 스페셜 에디션 두 종류가 있고, 후자에는 리처드 시켈의 음성해설과 10주년 기념 다큐를 포함한 풍부한 서플이 담겨 있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장르영화가 어떻게 역사를 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존 포드 서부극의 정점(시간의 흐름을 감안하면 양호한 화질이나 서플은 예고편 빼고 전무하다. 영화의 무게에 비교해 너무 가볍게 출시된 경우가 아닐까).

<사랑은 비를 타고>/ 다시 재현할 수 없을 것 같은 할리우드 뮤지컬영화의 최고봉. 102분간 펼쳐지는 흥겨움의 롤러코스터(2 디스크 스페셜 에디션으로 아서 프리드와 그의 뮤지컬영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풍부한 서플이 담겨 있다).

<아메리카의 밤>/ 영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트뤼포의 찬가(캐서린 비셋과 내털리 베이의 인터뷰를 비롯한 서플이 담겨 있다).

<미스틱 리버>/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깊어지고 신랄해지는 이스트우드의 시선(미국 워너 출시예정, 현재 이 시점에 제일 기다리고 있는 타이틀로 미국에선 이스트우드의 서늘한 음악을 담고 있는 O.S.T 포함 3 디스크로 출시예정이나 국내에서 어떤 식으로 나올지 미지수).

<로제타>/ 안타까움과 절망 끝에 간절히 희망을 원하게 만드는 진실한 감정의 영화(영국 Artificial Eye 출시, 감독의 전작인 <약속>이 별도의 디스크에 수록되어 있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의 고독과 의사소통에 관한 섬세(그래서 결국 깨져 버리고 마는)하고 미묘한 감정을 그려내고 있는 창의적인 속편(프랑스 TF1 출시, 감독 인터뷰, 삭제장면 등의 서플이 깔끔한 디지팩에 담겨 있는 프랑스판이 국내판보다 여러모로 낫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디즈니와 스필버그가 만들어낸 실제 배우들과 만화 캐릭터들의 유쾌한 한바탕 소동(미국 브에나비스타 출시, 국내에선 일반판으로 출시되었으나 월등히 나아진 품질의 본편과 저메키스의 음성해설을 비롯한 많은 서플, 로저 래빗과 제시카의 사인을 비롯한 멋진 패키지로 구성되어 2003년 재출시된 미국판이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