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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CAF2004 부문별 초청작
김현정 2004-08-04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애니메이션 모음오시이 마모루, 아드만이 온다

겨울날 Winter Days

가와모토 기하치로 외 l 일본 l 95분 l 아시아의 빛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와 일종의 시화 기능을 하는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서정적인 영상시라 할 만한 작품. <겨울날>은 가부키 등 일본의 전통예술과 인형애니메이션의 접목을 통해 독특한 양식미를 추구해온 독립작가 가와모토 기하치로를 필두로 모두 35명의 애니메이션 작가와 작곡가, 음악효과 감독들이 함께 작업한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이다. 에도 시대의 시인으로 일본의 전통 문학 형식인 하이쿠로 이름난 마쓰오 바쇼의 시 선집 <겨울날>, 그중에서도 두 사람 이상이 5-7-5 또는 7-7 음으로 된 구절을 이어가는 공동 창작인 렌쿠((連句)에 바탕하고 있다. 각 시인의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렌쿠의 전개에 따라, 비바람을 헤치는 나그네의 정교한 인형애니메이션부터 빈집에서 추위를 이기기 위해 애쓰는 아이의 모습을 그린 유화 질감의 이미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부드러운 파스텔톤으로 패러디한 듯한 장면 등 갖가지 기법의 애니메이션이 유기적으로 흐른다. 하나하나 개성이 다른 작가의 작품이면서도 전체적인 연결성을 잃지 않는 하나의 장편처럼 완결된 시와 이미지의 물결이 낯선 매력을 선사하는 작품.

야마무라 고지 아시아의 빛

열세살에 첫 번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야마무리 애니메이션을 설립하기도 한 야마무라 고지는 일본 독립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감독이다. <두산>(오른쪽 사진)으로 2003년 안시애니메이션영화제 단편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했던 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 일본에서 내려오는 이야기 <아타마-야마>를 동그랗고 귀여운 그림체로 표현한 <두산>,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미로를 잘게 그은 펜선으로 그린 <지구늑골 사나이>, 짧은 에피소드를 이어 음악방송국 바이브의 로고에 도달하는 <바이브-ID>, 글자가 모여 단어를 이루고 다시 그 단어가 다양한 표현방법을 동원한 형상으로 이어지는 <백과도감>, 초현실적인 캐릭터들이 기괴하고도 즐겁게 퍼레이드를 벌이는 나카무라 가즈요시의 싱글 CD 홍보물 <쥬빌리>, 단순하고 간결하게 그린 소년이 장난감들과 함께 작은 방에서 신기한 변화를 겪는 <키즈 캐슬> 등이 상영된다. 야마무라 고지는 <인생>의 김준기 감독과 함께 올해 SICAF 리더 필름을 제작하기도 했다.

프로덕션 I.G. SICAF의 시선

프로덕션 I.G.는 <공각기동대> <인랑>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등을 내놓은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음울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제작해온 이 회사는 얼마 전 <이노센스> 프로듀서로 라이벌 회사인 스튜디오 지브리의 스즈키 도시오를 영입하는 등 변신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올해 SICAF 특별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 <공각기동대> 속편에 해당하는 이 영화는 전편에서 형사 바토를 데려와 3년 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이보그 형사 바토는 뇌의 극히 일부와 쿠사나기 소령의 기억만을 인간의 흔적으로 간직하고 있다. 어느 날 바토는 고스트(영혼)가 없는 소녀형 로봇이 그 주인을 살해한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어떻게 로봇이 인간을 살해하고, 자살까지 할 수 있었을까. <이노센스>는 서양 근대 철학과 사이버 펑크를 혼합한 사색의 그물 속으로 헤엄쳐 들어간다. <에반게리온의 종말>에 애니메이터로 참여했던 이마이시 히로유키의 <데드 리브즈>(오른쪽 사진)는 달표면에 있는 형무소 ‘데드 리브즈’에 보내진 두 남자의 이야기. 니시쿠보 미즈호의 <오토기조시>는 헤이안 시대, 활의 명수 미나모토가의 딸이 신비한 힘을 지닌 구슬을 찾아 떠나는 TV시리즈다.

시선을 돌려라 Avoid Eye Contact 제3의 앵글

시선을 돌려라! 뉴욕산 독립 애니메이션의 기묘하고 이상한 세계로. 올해 안시페스티벌에서도 특별 상영된 바 있는 이 섹션은 뉴욕 애니메이터 11명의 기발한 단편 묶음이다. 빌 플림턴의 <섹스 매뉴얼>(1995)은 여성을 만나는 순간부터 눈, 목선, 가슴 등에 대한 매혹을 거쳐 섹스에 이르는 남성들의 심리를 엽기적인 판타지로 그려낸 작품. 눈알이 빠지고, ‘그녀’에게 덥석 삼켜지는 묘사 정도는 장난이다. 상영작 중 가장 초기작인 존 슈날의 <나는 추수감사절 칠면조였다>(1986)는 칠면조 주인공 시점의 추수감사절 이야기. 오븐 속 암흑에서 나오는가 싶더니 식탁에서 포크 세례를 받는 칠면조의 처지를 고딕 공포영화처럼 풀어내 웃음을 선사한다. 약자인 Pes로 알려진 신예 애덤 페스페인의 <지붕 위의 섹스>(2002)는 고풍스러운 두 의자의 지붕 위의 정사(?). 장식이 치마처럼 펄럭이는 여성 의자와 남성 의자의 섹스를 한 프레임씩 찍은 영상이 기상천외하기 짝이 없다. 할리우드의 주류 애니메이션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을, 장난스럽고 자유분방한 상상력에 눈을 돌려보시길.

윌리엄 켄트리지 제 3의 앵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윌리엄 켄트리지는 미술과 영화, 연극에서 활동해온 미술가다. 그는 특권층인 백인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인종차별에 반대했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선을 갖게 됐다. 아프리카의 풍경을 인간의 육체 위에 문신처럼 새겨놓는 그의 애니메이션은 목탄 드로잉을 이용해, 소호와 펠릭스라는 두 인물을 대비시키는 작품. 소호는 지배자이고 자본가지만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펠릭스는 남아프리카의 상처를 몸으로 드러내면서 사유하는 인물이다. 켄트리지는 목탄 드로잉을 카메라로 찍은 다음 그 드로잉을 수정하거나 다시 그려, 또 한번 촬영하는 수공업적 제작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그 덕분에 다소 난해한 그의 이미지들은 수묵화나 가질 법한 서정성과 유연성을 가지고 화면 위를 흐른다. 이번 SICAF에서는 연작을 이루는 <불만의 역사> <타이드 테이블> <펠릭스의 유배>(오른쪽 사진)를 만날 수 있다.

아드만 회고전 회고전

아드만의 첫 스타로 알려진 모프가 등장하는 1981년작 <모프의 대단한 모험 “위대한 모프의 가족영화”>부터 올해 안시페스티벌에서 TV 그랑프리를 받은 최신작 <동물원 인터뷰 “고양이냐 개냐”>까지, 영국 클레이애니메이션의 명가 아드만의 작품을 40편 이상 모은 섹션. 1995년작 <월레스와 그로밋>의 세 에피소드는 물론, 2002년에 나온 이들 짝패의 단편 시리즈 <월레스와 그로밋의 발명>도 만날 수 있다. 편 당 1∼2분 남짓한 이 시리즈는 월레스의 엉뚱한 발명품을 시험하면서 겪는 해프닝의 연속. 요리 기계는 계란 요리를 그로밋에게 발사하고, 자동진공청소기는 바닥의 부스러기뿐 아니라 크래커 한통을 다 빨아들일 기세다. 철없는 월레스와 그의 뒤치다꺼리를 도맡는 속 깊은 강아지 그로밋의 사랑스러운 콤비 플레이 외에도, 꼬마 렉스, 피브와 포그, 배우의 연기를 찍은 픽실레이션에 클레이 질감의 가면을 덧씌운 앵그리 키드 등 아드만이 배출한 캐릭터들과 재기 발랄한 웃음, 장인의 손길이 돋보이는 클레이의 소우주를 담은 단편들로 가득하다.

NFB 특별전 회고전

아드만과 마찬가지로 몇 차례 페스티벌을 통해 소개된 NFB(NFBC, 캐나다 국립영화위원회)는 예술적, 실험적 단편애니메이션의 산실로 정평나 있다. 이번 특별전에 상영될 작품은 모두 6편. 고향 헬름의 일상과 가족에 지쳐 떠난 한 남자가 방향을 착각해 되돌아온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헬름과 같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만족을 되찾는다는 <바보들의 마을>(오른쪽 사진), 강아지를 키우려면 진정으로 보살필 줄 알아야 함을 깨닫는 소녀의 이야기를 뮤지컬 스타일과 함께 풀어낸 <강아지를 원해>,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과 폭력의 순환 고리를 통해 폭력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불리 댄스>, 추상적인 이미지의 운동과 음악의 결합으로 순수한 애니메이션의 유희를 선사하는 <엑스맨> 등이 상영된다.

폴리마쥬 베스트 단편선 심사위원 특별전

폴리마쥬는 유럽의 비상업적인 단편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는 이들 사이에서 보증수표와 같은 이름. 1984년 자크 레미 지라드가 설립한 이래 단편, TV물 등을 주로 제작해온 프랑스의 마이너 스튜디오다. 하지만 상업성보다는 작가의 개성과 창의력을 앞세워 새로운 이미지와 재능을 발굴해온 폴리마쥬의 영향력은 순수 애니메이션의 메이저급이다. 폴리마쥬와 자신의 첫 장편 <개구리의 예언>을 개막작으로 출품한 자크 레미 지라드의 초기 단편 <아멜록>부터 잉크선을 살린 담채화풍 이미지로 연못의 물고기와 이를 낚으려는 수도승의 승강이를 우아한 춤사위처럼 그려낸 <수도승과 물고기>, 뾰족한 산꼭대기에 얹힌 집에 사는 남자에 대한 코믹한 우화 <세상의 끝>(오른쪽 사진), 버스의 급정거 때문에 피자를 엎은 남자를 둘러싼 따가운 시선을 통해 현대인의 이기주의와 무관심을 풍자한 <피자와 버스> 등 폴리마쥬의 성장을 이끈 개성 넘치는 실험들을 여기서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