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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악마는 패션을 창조했다
이화정 2010-01-28

다큐멘터리 <셉템버 이슈>로 엿보는 미국판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 이야기

안나 윈투어는 더이상 패션계만의 인사가 아니다. 그녀를 왜곡했다지만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그녀의 존재를 각인시켰고, 영화화된 캐릭터 미란다는 안나 윈투어와 일거수일투족을 비교하게 만들었다. 대중은 이제 안나 윈투어의 주변 인물들의 기술을 토대로 그녀를 기술한 책 <워너비 윈투어>를 사 읽으며 안나 윈투어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궁금증의 8할은 도대체 그녀가 누구기에 패션업계에 이토록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느냐가 아닌, 얼마나 ‘나쁜 편집장’인지로 귀결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셉템버 이슈>는 악독한 여자로 기록된 기존의 안나 윈투어에 대한 다른 ‘보기’를 제시한다. 굳이 이 다큐멘터리의 진정성의 정도를 따지기에 앞서, 질문이 앞선다. 안나 윈투어가 도대체 누구기에, 대중매체가 그녀를 소비하지 못해 이토록 안달하는지.

“정말 흥미로운 영화가 되겠군요. 그렇지만 이 영화가 얼마나 진실을 담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안나 윈투어만큼 포커페이스에 능한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요.”

패션계의 살아 있는 전설, 현 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셉템버 이슈>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뉴욕포스트>의 가십 매거진 <페이지 식스>의 콜킨은 이렇게 말했다. 매해 1천억달러의 가치를 창출하는 패션 비즈니스. 오로지 힘에 의해 먹고 먹히는 정글의 세계. 그곳에서 20년 넘도록 한번도 정상의 자리를 놓친 적 없는 인간에게라면 포커페이스도 무기가 될 법하다.

<셉템버 이슈>는 냉혈한 성격으로 ‘얼음 공주’로 통하는 안나 윈투어의 성역에 초대받은 단 한대의 카메라가 기록한 그녀의 조각이다. R. J. 커틀러 감독은 황송하게도 안나 윈투어를 주축으로 회전하는 성역, 패션지 <보그>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받는다. 그러니 이 다큐멘터리는 명백히 그녀를 모델로 삼았지만 안나 윈투어 자신은 한껏 불쾌감을 드러냈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편집장 미란다의 가공의 책상을 담지 않는다. 그녀의 말은 한마디도 인용되지 않은 채 오직 주변 인물들의 뒷담화만으로 엮은 도서 <워너비 윈투어>와도 달랐다. <셉템버 이슈>는 어디까지나 안나 윈투어의 허락 아래 9개월간 촬영된, 실제 안나 윈투어가 매일 패션지 <보그>를 만들기 위해 출근하는 ‘진짜’ 업무의 공간이자, 그녀의 실제 삶에 대한 기록이다. 진실을 판단하기 이전, 그 자체로 이미 짜릿한 엿보기다.

21년간 일등 패션지에 군림해온 실질적 주인

미국 <보그>는 ‘미국 <보그>’다.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전세계 10여 개국에서 발행되는 여러 <보그> 중 하나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말 하나가 패션업계에서는 그 자체로 고유명사로 통용된다. 이 성과에 대한 찬사를 받을 유일무이한 인물은 무려 21년 동안 일등 패션지 미국 <보그>의 편집장 직책으로 군림해온 <보그>의 실질적인 주인 안나 윈투어다. 그녀가 없었다면 미국 <보그>는 명성은 있지만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화석이 됐을지도 모른다. 1988년, 다년간 편집장으로 일한 58살의 미라벨라가 경쟁지가 된 신생 잡지 <엘르>가 공략하는 젊은 시장을 파악하지 못하고 품위에만 연연하고 있을 때, 그 자리를 꿰뚫고 들어간 39살의 안나 윈투어는 발빠르게 혁신과 변화를 진행했다. 전통과는 과감히 결별했다. 모델만이 표지를 할 수 있다는 <보그>의 불문율을 깨고 안나 윈투어는 마돈나, 힐러리 클린턴 같은 유명인사들을 표지모델로 기용했다.

핵심은 ‘대중’에게 있었다. 경기 침체가 한창이던 그 시절, 안나 윈투어는 패션이 돈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즐겁게 시도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임을 대중에게 각인하고자 했다. 불황에도 소비를 유도한, 이른바 <보그>의 외교관인 셈이다. 또 존 갈리아노, 마크 제이콥스, 베라 왕과 같은 젊고 유능한 디자이너를 찾아내 그들이 시장에서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조력하여 <보그>를 젊고 창의적인 인재 등용의 관문, 패션업계가 주목하는 잡지로 만들었다. 이런 시도는 <보그>를 좀더 역동적인 잡지로 인식시켰으며 <보그>가 시장의 경쟁지인 <엘르>를 비롯해 <하퍼스 바자> <마리클레르>보다 앞서나갈 수 있는 패션지의 상징적 존재가 되는 데 일조했다. <POP> 아니 <i-D> 같이 스타일을 앞세운 첨단의 잡지들이 생겨난 것도 <보그>의 성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개혁을 진두지휘한 안나 윈투어에게 주어진 대가는 엄청났다. <보그>의 성공은 <맨스 보그> <보그 리빙> <틴보그> 같은 자매지를 생산, 안나 윈투어가 실력을 발휘할 영역을 넓혀주었다. 한해 연봉만 자그마치 200만 달러, <보그>의 발행사인 콘데 나스트가 헤어, 메이크업, 의상비 등 그녀의 품위 관리비로 한해 20만달러를 아낌없이 쓴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말 그대로 <보그>의 각 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생활을 실제로 소비하며 사는 부류가 그녀였다.

영향력은 단지 지면 매체에 한정되지 않았다. 패션계 모두가 그녀의 영도를 받고자 안달이 난 것처럼 굴었다. 런던, 밀라노, 파리, 뉴욕 순으로 열리는 세계 패션위크는 안나 윈투어가 컬렉션을 빨리 보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뉴욕에서 시작하여 런던, 밀라노, 파리 순으로 교체되었다. ‘파리를 따라한다’는 소리를 듣던 뉴욕 패션계가 이로써 자존심을 세우게 된 것이다. 안나 윈투어가 도착하기 전에는 패션쇼가 시작되지 않았으며, 유명 디자이너들은 매 시즌, 쇼가 있기 전 안나 윈투어에게 의상을 보이는 것을 당연한 수순으로 여겼다. 패션계는 <보그>라는 주류의 승인 없이는 도무지 경력을 쌓을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다. <셉템버 이슈>의 한 장면을 빌려오자면, 이브 생 로랑의 작업실에 가서 패션쇼에 선보이기 전의 옷을 본 뒤, 아무렇지 않은 투로 ‘색이 너무 없네’라고 한마디 비수를 꽂는 안나 윈투어와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쩔쩔매는 수석 디자이너 스테파노의 대화가 전개된다. 깔끔한 보브 머리에 실내외, 쇼장을 가리지 않고 끼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샤넬 선글라스를 낀 채 다리를 꼬고 앉아 표정 변화 없이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품평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그녀의 일상이다.

“난 놀지 않아요”

‘안나가 말하길…’은 <보그>를 이끄는 실질적인 원동력이다. 모든 일의 진행과정에는 ‘안나가 말하길, 이건 좋대요’, ‘안나가 말하길, 이건 싫대요’라는 디렉팅 절차가 뒤따른다. 안나 윈투어가 그 자리에 없어도 안나 윈투어의 말은 성경의 한 구절처럼 진리로 그들 모두에게 빠짐없이 적용되는 것이다. <보그>의 스탭 중 한 사람도 <보그>가 안나의 잡지라는 데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패션 디렉터 캔디프랫츠 프라이스는 말한다. “우린 모두 안나의 성역에 속한 자들이죠. 안나는 그곳의 대사제인 셈이고요.” 그녀의 사전엔 애매함이란 없다. 한치 오차도 없는 호불호의 세계. 안나 윈투어는 대중의 취향을 만들고 조정한다. 모피를 입은 모델을 표지모델로 등장시켜 동물애호가들에게 지탄을 받더라도 그걸 감행해 모피의 유행을 불러오고, <보그>의 기준에 맞지 않는 외모를 가진 인터뷰 대상은 설혹 에디터가 인터뷰했다고 하더라도 싣지 않는다(실제로 오프라 윈프리에게 <보그>에 게재되려면 살을 빼고 오라고 했다고 할 정도다).

물론, 이렇게 차갑고 냉담한 성격을 뒷받침해주는 일례들은 정작 스탭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안나 윈투어의 편집 방식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의 영향력을 부인하긴 힘들다는 것이다. 그녀는 로렌 와이스버거가 소설에서 묘사한 것처럼 자기의 화를 표출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의지를 관철시키는 프로다. <CBS> TV쇼 <60 미니츠>에 출연한 안나 윈투어는 야망과 그걸 향한 밀어붙이기, 까다로운 완벽주의자라는, 자신을 향한 이 모든 강렬한 수식어에 대해 말한다. “난 내가 하고자 하는 것만 보고 달려왔어요. 경쟁심이 무척 강하죠. 근데 그게 뭐가 어떻다는 거죠? 이런 내가 까다로운가요? 네, 까다롭죠. 맞아요. 난 나쁜 여자예요.” 항상 최고의 것에 목마르다는 안나 윈투어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일에 대한 열정으로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R. J. 커틀러 감독은 말한다. “<셉템버 이슈>의 촬영은 9개월이나 지속됐어요. 누구도 9개월 동안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할 수는 없죠. 그렇게 드러난 안나의 실생활은 말 그대로 1분 1초도 허투루 쓰이는 법이 없었어요. 집에서 노는 장면을 촬영하고 싶다고 하자 그녀가 말하더군요. ‘난 놀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이 빈틈없는 프로페셔널리스트인 안나 윈투어를 향한 시선이 유독 편파적이었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나 리처드 브랜슨에게 그들이 웃지 않는다는 이유로 냉철하다고 손가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그>의 컨트리뷰팅 에디터 에드워드 에닌풀은 말한다. “안나는 따뜻하거나 다정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죠. 왜냐하면 그녀는 바쁘니까요.” 안나 윈투어는 자신의 모든 삶을 <보그>에 바쳐왔다. 왜냐, <보그>가 곧 안나 윈투어고 그녀가 곧 <보그>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패션계를 떠난다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도움 없이도 영화를 만들 수 있고, 빌 게이츠의 도움 없이도 베스트셀러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죠. 하지만 지금 패션업계에서 안나 윈투어의 도움없이 성공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3천억달러 규모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산업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 후보 캠페인에 관한 다큐멘터리 <워 룸>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알린 R. J. 커틀러 감독은 안나 윈투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결정하고 나서도 자신이 그녀의 영향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그리고 총 840페이지 중 727페이지가 광고인 2007년 9월 <보그>를 만드는 과정을 촬영하면서 그는 패션업계에서 그녀가 결코 만만히 볼 존재가 아니었음을 시인한다. 그녀는 영화 속 희화화된 미란다처럼 소리를 지르지도 않으며, 가끔 화를 내지만 결코 폭발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다스리며 이 세계를 조용히 평정해왔다.

(왼쪽부터)패션 디렉터 그레이스 코딩턴과 안나 윈투어.

사실 <셉템버 이슈>의 초점은 온전히 안나 윈투어에게 고정되지 않는다. 시네마베리테 스타일을 한껏 고수해 만들어진 <셉템버 이슈>는 많은 부분을 한권의 <보그>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탭들에게 할애한다. 결국 안나 윈투어의 지시 아래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스탭들이 안나 윈투어의 영향력을 만들어주는 숨은 원동력인 셈이다. 게다가 안나 윈투어의 조력자이자 대결구도를 형성하는 영화 속 디렉터 그레이스 코딩턴과의 상반된 모습은 안나 윈투어만이 유일한 <보그>의 공헌자가 아님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최근 들어 안나 윈투어의 영향력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인쇄 매체의 쇠락과 온라인의 발달,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패션블로거들이 도래한 시대에 <보그>는 그 옛날 안나 윈투어가 처음 이곳의 편집장으로 부임했을 때처럼 너무 고매하고 고상한 잡지로 평가받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정작 안나 윈투어는 소문만 무성한 은퇴설을 일거에 압축한다. 59살의 안나 윈투어. 그녀의 예측 가능한 미래에 은퇴는 아직 예정되어 있지 않다. 그녀는 여전히 세계 패션계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만일 가까운 미래에 패션계가 변화한다면 그건 안나 윈투어가 이 업계를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거야말로 의심할 바 없는 진실이다.

안나 윈투어 뒷담화

완벽한 에디터는 아니었지만!

혹여나 ‘고졸 출신으로 세계적인 패션 잡지의 편집장이 된’ 안나 윈투어라는 말에 혹할 이들을 위해 그녀의 성공 전략을 까발린다.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은 절대 ‘고졸 출신’이 아니라는 점. 그녀는 노력만이 최선이라는 신조로 살아온 자수성가형의 인물이 아니다. 아버지가 영국 <이브닝 포스트>의 편집장으로 역임할 정도로 그녀는 날 때부터 이미 은스푼을 입에 물고 태어난 축복받은 여성이었다. 그러니까 고졸은 구속되지 않기 위한 자유분방한 그녀에게 ‘선택’일 따름이었다.

패션을 위한 열의는 물론 누가 봐도 끝내주는 수준이었지만, 따라서 그녀의 모든 성공의 열쇠가 순전한 노력에 기대지는 않는다. 완벽한 에디터로 평가받기에 결격사유도 많았다. 패션에 관한 직감은 뛰어났지만 에디터로서의 필수 요소인 글쓰는 능력은 전무해, 회사에서 따로 글을 쓰는 에디터를 붙여줄 정도였다. 어시스턴트를 거의 ‘종’처럼 부려 그의 어시스턴트라는 이유로 타인의 동정을 사기도 했으며, 친화력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멀었다. 남자에게 후한 대신, 여자 동료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그녀는 늘 동료들에겐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인물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성과의 관계는 가십난에 오르내릴 만큼 화려했다. ‘소파 승진’이라는 세간의 입담을 들을 만큼 자신의 미모와 인맥을 이용해 업계에서의 영향력을 확장해나갔다. 화보 하나를 찍을 때 그간 구축한 인맥과 부를 총동원, 보기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에디터에게 욕을 해댈 고용주가 어디 있을까. 모든 일을 자신의 영향력으로 끌어들이면서 안나 윈투어가 추구한 유일한 목표는 미국 <보그> 편집장이 되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그녀가 <보그> 편집장이 되자 사람들이 내심 안도했을 정도. 더이상 자리 때문에 다른이들을 짓밟지는 않으리라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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