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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혁 스토리, <국가대표2>로 어때?
주성철 2010-03-02

밴쿠버 동계올림픽 시청자를 위한 동계스포츠 영화 총정리

정말 대단하다. 급속한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어지간해서는 한강도 잘 얼지 않고, 동해 바다에는 우리나라산 명태가 씨가 말라 오징어들만 가득 차고 있다는데, 올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은 역대 최고의 성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쇼트트랙의 이정수, 스피드스케이팅의 모태범과 이상화가 금메달을 따내면서 현재로선 종합 2위라는(잠깐이나마 1위도) 믿기 힘든 결과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아직 중반이라 최종 순위는 뒤바뀌겠지만 쇼트트랙과 피겨스케이팅에서 또 다른 메달이 기대되고 있으니 역대 최고성적은 무난해 보인다. 영화 <국가대표>로 톡톡한 마케팅 효과를 누린 스키점프와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박명수의 눈물로 감동을 줬던 봅슬레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처럼 동계스포츠는 하계올림픽과 월드컵만큼 이제 막 대중 속으로 깊이 스며들고 있는 중이다. 영화 같은 소식을 매일 전해주고 있는, 그러니까 영화와 현실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결과를 얻어내고 있는 밴쿠버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보며 동계스포츠 영화들을 떠올려본다. 자, 빠져들 준비가 되셨습니까.

믿기 힘든 일이다. 2002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하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야구대표팀이 미국팀을 이기는 것 같은 기적 같은 일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동계올림픽에서 메달 색깔은 물론이요 메달 획득 여부조차 딱히 고려하지 않던 시절, 이름부터 멋진 제갈성렬과 김윤만의 질주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던 게 엊그제 같은데 한국 동계스포츠가 정말 영화 같은 기적을 이뤄내고 있다. 쇼트트랙으로 편식하던 지난 10년을 넘어 각기 서로 다른 종목의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김동성에 올라 안현수만큼이나 몸에 좋다는 약수 이정수를 마시며 절경의 쌍둥이 바위 이강석이호석에 걸터앉아 쉬고 있자니 저 멀리 아름다운 향기를 뽐내는 이상화가 피어 있고 그 뒤로 늠름한 백호 모태범이 서 있다. 마치 순도 높은 최고급 기름 진선유로 윤을 낸 명품가방 성시백을 선물받은 것처럼 황홀하다. 지금의 광경이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이라면 그 꿈의 동계스포츠 영화들을 모아봤다.

봅슬레이, <쿨 러닝> 4인방 아직도 기억나네

아마도 종목을 떠나 처음으로 떠오르는 동계스포츠 영화는 <쿨 러닝>(1993)일 거다. 4명이 욕조에 쪼그리고 앉아 봅슬레이 흉내를 내던 그 모습은 빌보드 넘버원 히트곡 <I Can See Clearly Now>의 레게 리듬과 함께 이 장르의 어떤 상징과도 같다. 자메이카의 육상선수 4명은 100m 육상선수로 서울올림픽에 출전하는 게 꿈이지만 엉뚱한 사고로 선발전에서 탈락하고, 올림픽을 향한 꿈을 버리지 못한 채 동계올림픽으로 눈을 돌린다. 절대 눈이라고는 오지 않고 언제나 30도가 넘는 카리브해 자메이카에서 맹연습을 한 그들이 자동차를 판 돈으로 반대로 언제나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캐나다 캘거리로 떠나는 것. 할리우드 농구 영화에서나 볼 법한, 그러니까 늘 점프를 해야 말이 될 것 같은 흑인들이 사이좋게 일렬로 앉아 있는 모습, 결코 포기하지 않는 유쾌한 표정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쿨 러닝>

<헤비레이싱>

종목은 다르지만 <베른의 기적>(2003)을 연상시키는 코미디 <헤비레이싱>(2007)도 ‘독일판 <쿨 러닝>’으로 불렸던 유쾌한 봅슬레이 영화다. 황폐해진 독일을 올림픽에서의 승리로 위로하고자 1952년 오슬로동계올림픽 4인 봅슬레이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려는 독일 선수들의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봅슬레이라는 종목 자체가, 건장한 네 남자가 같은 유니폼과 헬멧을 쓰고 일렬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귀엽다. 더불어 열악한 조건에서도 믿기 힘든 성과를 일궈낸 실제 우리 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은 ‘한국판 <쿨 러닝>’으로 불리기도 했다. 봅슬레이 경기장이 없어 늘 일본에 가서 훈련을 하고, 국제경기임에도 봅슬레이 그 자체도 주최쪽에 대여해 경기에 나설 정도였던 우리 대표팀이 올해 밴쿠버올림픽에는 4인승 종목에 이어 2인승 출전권도 따냈다. 눈 대신 아스팔트 위로 몸을 내던지며 연습한 그들의 이야기는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2009)로도 이어진다.

아이스하키, 어느 액션 못지 않은 박진감이 흐르는 링크

아마도 가장 많이 제작된 동계스포츠 영화 종목은 아이스하키일 거다. 여기서 갑작스레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이스하키 골키퍼 가면을 쓰고 있는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의 영원한 살인마 제이슨이다. 또한 오우삼의 <페이스 오프>(1997)도 떠오르는데 일상적으로 쓰이는 아이스하키 용어인 ‘페이스 오프’란 경기 시작 또는 재시작을 위해 양팀 두 선수 앞에 심판이 퍽을 떨어뜨려 그 퍽을 양 선수가 뺏는 것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전혀’라고 할 만큼 인지도가 없지만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NHL)의 인기는 엄청나다.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가슴 뜨거운 청춘영화이기도 할 <영블러드>(1985)는 이 종목 팬들의 고전이기도 하다. 그 팬들은 당대 최고 청춘스타 중 한명이었던 로브 로가 경기장의 뽀얀 안개를 가르며 스틱을 들고 혼자 연습하는 고속촬영 장면들을 마틴 스코시즈의 <분노의 주먹>(1980)의 오프닝과도 바꾸려하지 않을 것이다.

캐나다 남부 출신의 영블러드(로브 로)는 미국 뉴욕의 한 실업팀으로 테스트를 받기 위해 떠난다. 하지만 기존 선수들의 텃세가 너무 심하다. 가장 악질적으로 괴롭히는 선배가 바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패트릭 스웨이지다. 초췌했던 마지막 모습과 달리 탄탄한 상반신을 과시하는 그 모습이 향수에 젖게 한다. 그러고 보면 그는 <영블러드>에서처럼 ‘캡틴’으로 등장할 때 가장 멋있었다. 그는 심지어 로브 로의 바지를 벗겨 셰이빙 크림을 잔뜩 발라 거시기 털을 밀어버리는 악질적인 추태를 보인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아웃사이더>(1983)에 함께 출연했던 두 사람이 악연으로 만난 것. 생각해보면 <아웃사이더>에 톰 크루즈도 출연했는데 당시 그가 로브 로보다 더한 스타가 되리라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영블러드>에서 끈팬티를 입고 뽀얗고 탱탱한 엉덩이를 과시하는 로브 로의 서비스 숏도 있을 정도니까. 그리고 영블러드를 함께 괴롭히는 학생들 중에는 아직 엄마 젖을 떼지 않은 앳된 키아누 리브스도 있다. 그 둘은 나중에 <폭풍 속으로>(1991)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영블러드>

<미스테리 알라스카>

아마도 아이스하키 영화가 인기있는 것은 액션영화와도 같은 남성적 박력 때문일 것이다. 고의적으로 글러브를 벗고 주먹다짐을 벌이는 러핑(roughing), 상대선수를 보드(경기장을 둘러싸고 있는 벽)로 밀어붙이는 심한 보딩(boarding), 스틱으로 상대 선수를 가격하는 슬래싱(slashing) 등 실제 경기에서는 지양해야 할 행위들이 영화에서는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다. 거기에다 <영블러드>는 청춘 스포츠영화의 공식을 철저히 따른다. 반목하던 선수들이 하나의 팀워크로 뭉치는데, 영블러드가 패트릭 스웨이지에게 감각적인 드롭 패스(퍽을 멈추듯 뒤로 밀어줘서 뒤쪽 동료에게 하는 패스, 축구의 힐 킥 정도?)를 연결해주면서 그 정점을 찍는다. 나중에 다른 경기에서 패트릭 스웨이지를 뇌진탕으로 쓰러지게 만든 선수에게 복수하는 것도 영블러드가 할 일이다. 거기에 적당히 말랑말랑한 로맨스도 빠져서는 안된다. 로브 로는 코치의 딸과 사귀게 되는데 여배우의 엉덩이가 다 드러나는 두 사람의 러브신이 당시 국내 청소년들에게는 꽤 충격이었다. 그리고 <국가대표>의 코치 성동일에게도 딸이 있듯 어떤 스포츠영화에서나 코치들에게는 늘 딸이 있고 그것은 선수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기량을 끌어올리는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이런 스포츠영화의 여아선호사상은 이 장르의 제1공식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소련을 이긴 미국 아이스하키팀의 기적

다소 노골적이긴 하지만(월트 디즈니 제작) 가장 완성도 높은 아이스하키 영화라면 <미라클>(2004)일 거다. 그러고 보면 신파영화만큼이나 노골적일수록 감동적인 게 스포츠영화다. 커트 러셀이 이끄는 미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 무적 소련팀을 꺾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당시 미국과 동계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졌던 곳이 바로 캐나다 밴쿠버다). 당시 미국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소련은 물론 동구권 팀들에도 밀리던 약체팀이었다. 하지만 감독으로 선임된 커트 러셀은 가정에 소홀하면서까지 최고의 선수들만 골라 올림픽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예상 가능한 선수들로 팀을 꾸리지 않고 치밀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전혀 뜻밖의 선수들을 대표팀으로 발탁하는데 “실력자를 뽑는 게 아니라 적격자를 뽑는 겁니다”라는 게 그의 얘기. 여러모로 2002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은반 위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출시되기도 했던 <미라클>은 기적을 향해 달려가는 순수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실제로 경기 해설자는 시청자를 향해 “기적을 믿습니까?”라고 외친다.

러셀 크로가 카리스마 넘치는 주장으로 등장해 ‘글래디에이터스러운’ 대사들을 뱉어내는 <미스테리 알라스카>(1999)도 흥미로운 영화다. 더구나 감독은 포복절도 코미디 <오스틴 파워> 시리즈를 2편까지 만들고 <미트 페어런츠> 시리즈를 시작하기 전의 제이 로치다. 미스터리는 알래스카 한구석에 자리잡은, 옆집에 포크가 몇개인지 알 만큼 인구 633명의 조그만 마을이다. 어려서부터 스케이트를 일상생활로 익힌 그들에게는 프로팀 부럽지 않은 마을 아이스하키팀이 있다. 어느 날, 미스터리 출신의 저널리스트가 스포츠지에 이 마을 하키팀이 NHL 선수들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기사를 게재하면서, 전통의 프로 아이스하키 강호 뉴욕 레인저스와의 친선경기가 이뤄지게 된다.

<미라클>

<마이티 덕>

얼핏 오합지졸들의 인생 역전기 정도를 예상하지만 영화는 제이 로치답지 않게(?) 진지한 휴먼스포츠영화다.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는 마을 남자들이 마치 한국의 조기축구회처럼 토요일에는 아이스하키 선수로 거듭난다. 두 아들의 아버지이자 마을 보안관인 러셀 크로는 마치 과거 한국축구 국가대표팀의 홍명보처럼 듬직한 고참 수비수다. 풋풋한 후배에 밀려 자신의 포지션을 잃을 위기에 처하지만 풀이 죽은 선수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은 그의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다. 무표정한 얼굴로 필요한 말만 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글래디에이터다. ‘오스틴 파워’ 마이크 마이어스가 경기 해설자로 카메오 출연하는 모습도 반갑다. 러셀 크로 못지않은 터프 가이 폴 뉴먼 주연의 좌충우돌 아이스하키 영화 <슬랩 샷>(1977)도 있는데, ‘슬랩 샷’이란 아이스하키에서 스틱을 몸 뒤로 올리면서 와인드업을 해 퍽 뒤의 아이스를 살짝 스치며 나가는 가장 강력한 샷을 말한다. 에밀리오 에스테베즈가 어린 아이스하키팀을 지도하는 <마이티 덕>(1992) 시리즈도 이후 3편까지 제작됐으니 빼놓으면 섭섭할 영화다. 캐나다에는 지난해 국내에서도 방영된 아이스하키 드라마 <MVP: 아이스 스캔들>(2008)도 있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를 배경으로 한 인기 TV시리즈인 <축구선수의 아내들>(Footballers’ Wives)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져 아이스하키를 둘러싼 온갖 스캔들과 음모, 약물 복용 등의 사생활을 다뤘고, 그 인기에 힘입어 시즌2는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팬이라면 필견!

북미 지역에서는 동계스포츠 영화의 꽃이라고 할 정도로 아이스하키에 대한 관심이 높다면, 국내 팬들은 김연아로 인해 전적으로 피겨스케이팅에 눈길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피겨스케이팅 영화는 의외로 그 수도 적고 괜찮은 작품도 드물다. 다른 종목과 달리 헬멧을 쓸 수 없으니 대역 활용의 자유로움이 떨어지고, 그러다보니 순수하게 개인 기량만으로 승부로 걸어야 할 피겨스케이팅 영화가 드물다. 우리가 피겨스케이팅을 볼 때 느끼는 매력 요소가 영화화에서는 저해 요소가 된 것이다. 본격적인 첫 번째 피겨스케이팅 영화인 <사랑이 머무는 곳에>(Ice Castles, 1978)가 1974년 피겨스케이팅 전미 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기록한 실제 선수 출신의 린 홀리 존슨을 배우로 내세운 것도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배우들을 계속 바꿔가며 3편까지 제작됐다는 점에서(3편은 TV영화) 가장 눈길이 가는 영화는 ‘페어 피겨스케이팅’을 다룬 <사랑은 은반 위에>(The Cutting Edge, 1992)다. 그런데 여기서도 아이스하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유망한 아이스하키 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그만둔 덕 도로시(DB 스위니)는 피겨스케이팅 전미 챔피언 케이트 모슬리(모이라 켈리)와 한팀이 된다. 케이트는 2년 동안 8명의 파트너를 갈아치울 정도로 괴팍한 여자지만 둘 사이에는 묘한 감정이 싹튼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덕이 아이스하키가 아닌 피겨스케이팅으로 재기하려는 모습에 가족과 친구들은 실망한다. 남자가 무슨 피겨스케이팅이냐며 “피겨스케이팅을 하려면 다리털도 깎아야 하잖아”라며 무시하는 모습이다.

피겨 남남 커플 가능한가요?

하지만 그 어떤 무시도 <블레이즈 오브 글로리>(2007)에 비할 바가 못된다. 싱글 피겨스케이팅 공동 1위를 했던 채즈(윌 페렐)과 지미(존 헤더)는 서로에 대한 미움이 지나쳐 주먹다짐을 벌이게 되고 협회로부터 영구 제명당한다. 하지만 스케이트가 너무나 타고 싶었던 둘은 페어 피겨스케이팅의 남남 커플로 기어코 대회에 출전한다. 사타구니를 잡고 회전하는 등 시치미 뚝 뗀 민망한 스케이트 장면들이 압권이다. 이미 올해 밴쿠버에서 페어 피겨스케이팅의 금메달은 우리가 ‘빙속’에 심취해 있던 사이 중국에 돌아갔다.

<블레이즈 오브 글로리>

<아이스 프린세스>

김연아를 떠올리며 볼 수 있는(지나치게 대입하면 실망하겠지만) 싱글 피겨스케이팅 영화는 <아이스 프린세스>(2005)다. 물리 천재인 케이시(미셸 트라첸버그)는 어느 날 피겨스케이팅 중계를 보다가 점프를 하고난 뒤 우아하게 ‘레이백 스핀’(등을 뒤로 젖히고 다리는 구부려 회전하는 기술)을 하는 선수를 보고는 스핀과 점프 등 피겨스케이팅 동작들을 물리학의 원리로 풀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캠코더 촬영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그녀는 직접 수강신청을 하더니(코치가 바로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 어느덧 타고난 재능 덕에 주니어 선수권대회 출전자격까지 획득하게 된다. 비싼 레슨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한다. 피상적이나마 영화는 피겨 선수들의 일상생활까지 보여준다. 김연아의 장기이기도 한 점프 ‘러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중으로 몸을 던지는 게 익숙해져야 한다며 오리궁둥이처럼 엉덩이 보호대를 찬 모습, 스케이터의 생명은 8년에 불과한데 자신의 미래를 걸어도 되겠냐며 진학을 권하는 어머니의 꾸지람, 새로 산 피겨스케이팅 신발을 길들이는 것과 새 경기 직전 메이크업의 중요성 등 꽤 치밀하게 보여준다. <스텝 업>(2006)과 <프로포즈>(2009)를 연출한 댄서 출신 감독으로 유명한 앤 플레처가 안무를 맡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마지막 경기의 우정출연 해설자 또한 미셸 콴이다.

스키·스노보드, 순백의 설원을 내달리는 상쾌함

아이스하키와 피겨스케이팅이 실내경기라면 스키와 스노보드처럼 동계스포츠의 야외 경기를 빼놓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설원’의 스펙터클은 동계스포츠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궁극의 그 무엇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가장 탁월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은 다큐멘터리인 <퍼스트 디센트>(First Descent, 2005)다. 무려 <스노보드 혁명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스노보드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치밀한 리포트다. 프리 라이딩 스노보드의 메카 알래스카를 무대로 하고 있는데, 미국 본토 바깥에서 서퍼들의 성지가 하와이라면 그들에게는 알래스카가 바로 그런 곳이다. 정해진 경기장이 아니라 헬리콥터를 타고 가다가 적당한 봉우리를 골라 거기서부터 타기 시작하는 스키를 ‘헬리 스키’라 부른다면 이들은 ‘헬리 보드’를 하는 친구들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도 라이드해본 적 없는 곳에서 시작”하는 게 그들의 신념이다. 물론 그것은 어쩌다 그렇게 하는 것이고 영화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스키장에 출입조차 금지됐던 그들의 역사와 선구자들에 대해 얘기한다. 갑자기 산에 스키의 전통의 따르지 않는 무리들이 생겨나게 된 거다. 당시 그들은 하나같이 ‘배드 보이’ 이미지였지만 점차 저변을 넓혀가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에 채택된다. 스노보드의 생명은 ‘프리 스타일’인 만큼 국가 대항전인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60살의 나이에 스노보드를 배운 뒤 다시는 스키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할아버지가 말하는 스노보드의 정신도 프리 스타일이다.

국내에서 깜짝 흥행을 거둔 스키, 스노보드 영화로는 <익스트림 OPS>(2002)도 있다.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려 수상스키를 하듯 보드를 타는 이들에게 스키를 탈 때 필요한 스틱도 거추장스런 물건일 뿐이다. <익스트림 OPS>가 익스트림 동계스포츠와 첩보영화가 결합된 형태라면 그 인기에 힘입어 개봉한 정통 스노보드 영화 <스노우보더>(2003)도 있었다.

<익스트림 OPS>

<은색 시즌>

마이클 매드슨이 출연한 <딥 윈터>(2008)도 굉장한 스펙터클을 보여준 스키 영화다. 스키 선수의 시점 숏으로 촬영한 장면들의 속도감은 어마어마하다. 여기서도 알래스카의 마이클 매드슨은 마치 <킬빌> 같은 심드렁한 저음으로 젊은 스키어들에게 말한다. “알래스카는 바다 속 8천 피트 아래에 있는 느낌이야. 이 눈은 꽤 끈적끈적하게 농축됐지. 깨져서 쏟아지면 너희들은 시멘트에 파묻힌 것처럼 돼. 파기 시작하면 내년 여름에나 너희들을 찾을 수 있을걸.” 말하자면 눈은 동계스포츠에 열광하는 모든 이들이 도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다.

액션영화 속 스키추격전이 더 짜릿

<국가대표>의 실제 촬영지 중 하나인 하쿠바 스키장에서 촬영한 일본 스키 영화 <은색 시즌>(2007)도 추천할 만한 영화다. 스키 종목 중 울퉁불퉁한 급경사를 내려오는 모굴스키 경기를 소재로 했으며 오랜 시간 훈련한 배우들과 탁월한 경관이 보기 좋다. 그외 <폴리스 아카데미>스러운 <스키 아카데미>(1990)나 저예산영화인 <스노우 보드맨>(White Air, 2007)도 있지만 딱히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사실 이런 스키, 스노보드 장면은 오히려 동계스포츠 영화가 아니라 액션영화에서 더 멋진 모습으로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한다. <007 여왕폐하 대작전>(1969)에서 스위스 알프스 쉘터호른 전망대에서부터 멋진 스키 추격전이 기억에 남고, <폴리스 스토리4>(1996)에서 성룡은 스노보드를 타고 달아났으며, <트리플 엑스>(2002)에서 빈 디젤이 스노보드를 타고 질주하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애니메이션으로 오면 <빨간모자의 진실>(2005)의 ‘엽기’ 그레니 할머니는 한쪽 스키가 고장나 나머지 하나의 스키를 스노보드처럼 사용하며 질주해 경기에서도 우승한다. 스노보드를 타면서 전화까지 받는 신공을 펼쳤다. 이만희의 <쇠사슬을 끊어라>(1971)에서 난데없는 만주의 스키 추격 장면, 류승완의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에서 맨몸의 호방한 설원 추격 장면까지 더하면 우리 영화들도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다.

이런 종목까지 영화로 만들줄이야

쇼트트랙·컬링을 소재로 한 영화들

<파빙>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의 메달밭은 쇼트트랙이다. 그렇다면 쇼트트랙 영화도 있을까. 물론이다. 또 다른 쇼트트랙 강국인 중국에서 만들어진 서경 감독의 <파빙>(破氷, 2008)이다. 2008년 장춘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세계적인 쇼트트랙 선수 양양A, 왕멍 등을 길러낸 실제 쇼트트랙 코치인 흑룡강성 칠대하시의 맹경여를 모델로 한 영화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당시를 겨냥해 만든 영화인 만큼 중화권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감동의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왕멍은 2007년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다른 대표팀 감독과 전술문제로 충돌한 적도 있으니 맹경여가 더욱 돋보이기도 했다.

전이경과 라이벌이기도 했던 양양은 또 다른 양양(S)과 구별하기 위해 양양A로 불리기도 했으며, 세 차례 동계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 등을 따낸 중국의 대표적인 동계스포츠 스타다(전이경은 금메달 4개, 동메달 1개).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국내 성화 봉송 1호 주자였으며 개막식 당일 오륜기를 함께 들고 등장한 8명의 중국 스포츠 영웅 중 한명으로, 올해 IOC총회에서 신임 IOC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양양과 같은 고향으로 역시 맹경여의 지도를 받았던 26살의 왕멍은 2006년 토리노에서 한국의 진선유에 밀려 금메달을 하나만 땄지만 지금은 전관왕도 노려볼 만한 여자 쇼트트랙의 실질적인 세계 1인자다. 이미 올해 밴쿠버올림픽에서도 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한국 여자선수들이 모두 예선 탈락한 반면에 왕멍은 결승에서도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독주했다. 남아 있는 1500m 결승은 21일(일), 3000m 계주 결승은 25일(목), 1000m 결승은 27일(토)에 열린다.

국가대표 김승우가 출연한 일본 컬링영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화강암 재질의 ‘스톤’을 빗자루 느낌의 ‘블룸’(Bloom, 스톤의 방향이나 속도를 조절하기 위한 도구)으로 미끄러지게 하여 표적에 넣어 득점을 겨루는 컬링(Curling)도 엄연한 동계올림픽 정식종목이다. 우리나라에선 생소하지만 경기 발상지인 스코틀랜드나 캐나다, 뉴질랜드에선 성행 중인 스포츠다. 컬링 영화로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나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