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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브로] 정성 쏟으니 팝콘영화도 명품이 되더라
김도훈 2010-05-04

<아이언맨2>의 존 파브로 감독

존 파브로를 처음 본 건 <러브 앤 섹스>(2000)에서였다.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은근 재미난 구석이 있는 이 로맨틱코미디에서 팜케 얀센은 존 파브로를 시종일관 “곰돌이”라고 부른다. <프렌즈>에서 제니퍼 애니스톤의 백만장자 데이트 상대자로 등장할 때도 존 파브로는 ‘곰돌이 남자친구’ 이미지의 코미디언이었다. 그 이미지는 더그 라이먼의 <스윙어스>에 함께 출연했던 빈스 본이 물려받았다. 그러면 존 파브로는 뭐가 됐느냐. 그는 <엘프>와 <자투라: 스페이스 어드벤쳐>로 성공적인 연출자로 자리잡았고, <아이언맨>으로 홈런을 날렸다. <아이언맨2>를 끝내고 신작 <카우보이와 에일리언>을 준비 중인 존 파브로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언맨>은 드물게도 한국 비평가들의 사랑을 받은 블록버스터였다. 한국 비평가들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좀처럼 환대를 보내지 않는 편이라는 걸 일단 알아두시라. =정말인가? 나로서는 대단히 기쁜 일이다. 이 동네에서는 이런 영화를 팝콘영화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 팝콘영화의 스토리에 큰 정성을 들였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비롯해 자신들의 일에 심각하게 접근하는 배우들을 끌어들였다. 비평가들과 관객이 팝콘영화에서 기대하는 것보다 더 나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첫 영화의 엄청난 흥행 이후, 속편을 어떤 식으로 만들고 싶었나. =가장 어려운 건 이거다. 모두가 기대하는 것을, 그들이 기대치 않았던 방식으로 해내야 한다! 캐릭터들의 다이내믹함과 화학작용을 더 높이기 위해 샘 록웰, 스칼렛 요한슨, 미키 루크 같은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액션 역시 좀더 야심적으로 해내고 싶었다. 다만 첫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까다로웠던 건 아니다. 아이언맨의 슈트를 만드는 것부터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는 게 아니라 1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었으니까.

-<아이언맨>의 마지막 장면에서 토니 스타크가 커밍아웃하는 장면은 정말 끝내주게 놀라웠다. =이른 커밍아웃은 여러 가지 색다른 가능성을 속편에 안겨준다. 다른 모든 슈퍼히어로들은 비밀스러운 정체성을 숨기고 있지 않나. 우리는 일찍 정체를 알림으로써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이 슈퍼히어로의 정체를 알 때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은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캐스팅 중 하나였다. 게다가 <아이언맨2>에는 샘 록웰, 스칼렛 요한슨처럼 블록버스터 액션영화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배우들이 잔뜩 포진하고 있다. 캐스팅 철학이 뭔가. =천재적이라니, 감사하다. 알다시피 나는 인디펜던트 영화계에서 배우와 감독 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그 시절의 취향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런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는 특수효과나 프로덕션 과정에서 제한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연기를 자유롭게 할 만한 여지가 그리 크지 않다. 그래서 나는 좋은 유머감각을 가진 배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는 명석한 배우가 좋다.

-미키 루크, 스칼렛 요한슨 같은 독특한 배우들과 협업한 경험에 대해 말해달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맞설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기 때문에 엄청난 존재감이 있는 미키 루크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스칼렛 요한슨은 이처럼 거대한 프랜차이즈 영화에 참여해본 경험이 없어서 작업 내내 아주 흥미로워했다. 직접 스턴트까지 해내며 진짜 액션 캐릭터로 거듭났다. 하지만 그녀는 인디영화계 출신이기 때문에 영화에 아주 고전적인 기운을 첨가할 거란 믿음이 있었다.

-속편의 가장 큰 스캔들은 역시 워머신 역의 배우가 테렌스 하워드에서 돈 치들도 바뀐 일이다. 같은 역할에 새로운 배우와 작업하는 건 어땠나. =두 배우 모두 함께 작업하는 게 정말 즐겁다. 그런데 둘은 아주 다른 배우다. 돈과 테렌스의 에너지는 성격이 다르다. 어쨌거나 돈은 스스로가 감독이기도 하며 매우 지적인 배우다. 이런 블록버스터는 촬영 중 많은 것이 늘 바뀌기 때문에 지적인 사람들과의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파이더맨 3>는 솔직히 좀 난장판이었다. 악당이 너무 많았다. <아이언맨2>에도 악당이 너무 많다. =흐음, 하지만 <아이언맨2>의 캐릭터들은 매우 유기적으로 스토리에 얽혀 있다. 미키 루크와 샘 록웰의 역할은 같이 활동하기 때문에 사실상 하나의 악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칼렛 요한슨의 블랙 위도우는 일종의 조연이다. 그러므로 <아이언맨2>에는 단 하나의 악역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엘프> <자투라…> <아이언맨>, 그리고 진행 중인 신작 <카우보이와 에일리언>까지, 대부분의 연출작이 SF·판타지 장르에 속해 있다. 감독으로서 이런 장르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 =내가 언제나 즐기던 장르다. 이렇게 큰 블록버스터영화는 제작에 2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정말로 흥미를 가지는 장르가 아니면 견디기 힘들다. 나로서는 열정과 비전을 가질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 나이가 드니 스토리텔링이 점점 중요해진다. 배우로 활동할 땐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게 즐거웠지만, 감독이 되고 나니 더욱 선별적이 되는 것 같다.

-지금 프리 프로덕션 중인 신작 <카우보이와 에일리언>은 어떤 영화인가. =SF와 웨스턴의 하이브리드다. 매우 독특한 영화가 될 거다. 대니얼 크레이그가 참여하고 해리슨 포드도 출연을 거의 확정했다. 무엇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총제작자라는 게 중요하다. 나는 지금 위대한 대가에게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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