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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유령’을 보다

1960년작 <하녀>는 박찬욱, 봉준호, 임상수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하나의 유령이 한국영화 위를 떠돌고 있다. 김기영이라는 유령이. 이것은 한국영화계에서 드물게 만나는 영화 유산의 자의식이자 특정한 시대정신의 발현이다. 50년 만의 재개봉을 앞두고 있는 김기영 감독의 1960년작 <하녀>(CGV대학로·강변·서면, 대한,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를 앞에 두고, 우리는 이제부터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앵무새처럼 되풀이해왔던 김기영 영화의 특징은 죄다 잊어도 좋다. 이 놀라운 ‘하녀의 세계’를 다시 한번 마주하며, 이것이 어떻게 거듭 현재성을 띠고 박찬욱, 봉준호, 임상수 감독의 영화를 방문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는지를 예민하게 살펴보면서 새로운 계보를 만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상상과 취향의 계보는 의외로 굳건한 힘을 발휘한다.

삼각형의 라이벌 구도 속에 놓였던 김기영, 유현목, 신상옥 감독은 서로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 편이었다. 남겨진 그들의 인터뷰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된 언급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대신 그들이 공통적으로 상찬했던 대상이 후배 이만희 감독이었다는 점도 특이하다. 경쟁자에게 인색하고 후배에게 너그러운 인지사정 외에도 이만희 감독이 일찍 사망한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어쨌든 김기영 감독이 동시대 거장들에게 공격당한 내용 중에는 배타적인 작업방식과 후진양성의 실패가 자리한다. 누구나 가난했던 개척기에 한국영화라는 시스템 정비를 우선과제로 삼았던 그들이 공유하거나 거부했던 책임감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니 산업적 허기가 채워지는 미래에 찾아올 미학적 허기에 대해 고민할 여유는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은 시간의 문제다. 거장에 대한 평가는 현재적 맥락 속에서 굴절된다. 50주년을 맞이한 <하녀>의 재개봉. 시네마테크에서 멀티플렉스로 이동하게 된 이 영화는 마틴 스코시즈의 후원 아래 디지털 복원작업을 거쳤다. 그 덕에 칸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그 와중에 임상수의 리메이크작이 만들어졌다. 시네필이라면 영상자료원이 주도한 김기영 패키지 DVD들이 얼마나 많은 후배의 성원 속에서 화려한 출정식을 가졌는지도 알 것이다. 망각과 분실의 역사를 가진 한국영화사에서 드물게 기억될 사건의 연속이다. 언제나 신문의 사회면에서 영화 소재를 찾았고 문예물일지라도 당대의 사건을 접목시켰던 김기영 영화는 재유통과 재소비 과정에서도 크고 작은 이슈를 낳고 있다. 가히 김기영 특수라고 부를 만한 상황. 그런데 이것은 그의 사후에 불었던 열광에 이어진 두 번째 붐일까? 혹시 한국영화가 비로소 영접하게 된 영화유령의 신호탄은 아닐까?

‘영화유령’이란 말은 꼭 비유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마주의 경건한 대상, 패러디의 즐거운 상대가 되는 그것은 종종 강박관념 그 자체로 자리잡기도 한다. 이를테면 일본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는 다다미방을 촬영할 때면 겁부터 난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 방에 상이 놓이고 가족이 둘러앉으면 오즈 야스지로의 구도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물의 뒷모습을 좋아하지만 어떻게 찍어도 오즈 냄새가 나서 포기했다는 기타노 다케시는 여러 인물을 찍을 때도 나란히 세우지 못하고 세로줄로 세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장르와의 유희를 즐기는 두 감독은 오즈의 자장권에 놓여 있는 영화(고레에다 히로카즈 같은)를 만들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 비슷비슷한 고충을 더 많은 일본 감독들에게 들을 때마다 충분히 이해한다며 박장대소했지만 속으로는 부러움이 더 컸다. 집단적 무의식이 될 만큼 강력한 영화유령의 현존. 그것을 인정하건 부정하건 상관없이 그들은 자신들만의 영화적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으며, 일본영화의 과거와 현재가 행복하게 소통하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박쥐> <마더>에서 김기영의 체취를

물론 한국영화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각개전투를 선호하는 한국 영화감독들의 체질상 어울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최근 몇편의 화제작은 김기영 유령을 보았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유발한다. 한 영화에서 다른 영화의 영향을 본다는 것의 예민함 또는 사소함. 텍스트적 완결성에 함몰되어 있는 주변적 요소. 딱 그만큼이지만 박찬욱의 <박쥐>와 봉준호의 <마더>는 오늘날의 한국영화에서 김기영의 체취를 느끼게 하는 좋은 자리다. 여기에 리메이크의 운명을 지고 스스로 뛰어든 임상수의 <하녀>까지. 김기영의 <충녀>를 본 뒤 <박쥐>와 <마더>에서 그 기운을 읽어낸 정한석(<씨네21> 제717호)은 ‘상상의 계보’라는 멋진 표현을 쓰고 있다. 이 글의 서두에서 밝힌 김기영의 약점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소되는 순간이다. 세대와 가치관의 단절에 익숙한 한국영화사에서 취향으로 세워진 상상의 계보는 의외로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굵직한 토픽을 생산해내는 중요 감독들의 정신적 지지는 식을 줄 모르는 김기영 특수의 가장 중요한 토대일 것이다. 담론의 유행, 비평의 변화는 그 토대 위에서만 작동한다(최근 한 매체의 역대 한국영화 베스트 집계에서 처음으로 <하녀>가 <오발탄>을 눌렀다고 한다. <하녀> DVD 코멘터리에 참여한 봉준호 감독의 환호를 통해 알았다).

김기영 유령은 동일한 방식으로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우선 떠오르는 것들. 문어체 대사, 때아닌 유머, 엇박자 리듬, 부조리한 딜레마. 오늘날 너무 흔해져서 소속을 찾을 길 없다. 그렇다면 그 유명한 계단장면과 창문의 안과 밖의 트래킹 숏. 구체적이긴 하지만 50년간의 기술적 진보를 감안해야 한다. 관건은 그런 변수 속에서도 고유함을 잃지 않는 원본의 아우라를 찾는 것. 그런 점에서 정한석이 언급한 <박쥐>의 마작하는 군상장면, <마더>에서 도준이 소녀의 시체를 끌고 가는 계단장면, 엄마를 지켜보는 유리창 안과 밖의 장면은 정말 불현듯 다시 돌아온 장면처럼 보인다.

물론 박찬욱은 데뷔 이전부터 김기영의 골수팬으로 유명하지만 그 사실만으로 김기영과의 연관성을 상정할 수는 없다. 또한 영향관계가 있다 해도 이미 내면화되어서 의식인지 무의식인지 경계를 나누기 어렵다. 재현의 권위를 조롱하고 이질적인 것의 충돌을 즐기는 박찬욱의 컬트적 감성을 김기영만의 것으로 보기도 힘들다. 그러나 <박쥐>의 마작하는 군상장면뿐 아니라 <친절한 금자씨>에서 유괴된 아이들의 부모가 만나 보상금부터 따지는 장면, 더 거슬러가 단편영화 <심판>에서 시체를 둘러싸고 가족들이 보이는 반응장면은 김기영에 대한 확실한 오마주로 보인다. 비극적 상황 속에 엉뚱하게 희화화된 인물들, 기괴하고 분열적인 대사를 배치하는 방식은 한국영화의 엄숙한 서사 전통 속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김기영만의 전매특허였다.

임상수의 <하녀> 오프닝 vs <충녀> 오프닝

스스로 ‘엇박자’ 리듬이라고 자신의 스타일을 정의하는 봉준호 역시 직접적인 영향관계를 도식화하기는 힘들다. 더구나 <마더>에서 감지되는 김기영의 영향은 주로 숏 내의 긴장을 위한 카메라 이동과 관련이 있어서 좀더 내밀한 분석을 요구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하녀> DVD 코멘터리 과정 중에 스스로 영감의 출처를 거의 다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녀>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밥을 나르는 장면을 설명하면서 <괴물>의 중요 모티브였던 ‘누군가를 먹인다는 것’을 환기시키는 식이다. <마더>에서 우리가 보았던 계단과 창문장면에서의 오버랩, 그것이 <하녀>의 어떤 장면과 대입되는지, 그때의 카메라 이동이 어떤 느낌인지 봉준호의 결정적인 대답이 들어 있다. 봉준호에게 김기영 유령은 ‘특별 언급’의 대상처럼 보인다.

유령과의 전면전을 피할 수 없었던 임상수는 거의 퇴마사의 태도로 <하녀>를 만든 것 같다. 김기영의 페르소나 윤여정을 앞세운 채 계보의 편입을 거부하는 그는 오리지널의 장점인 권력이동의 플롯은 폐기처분하고 오로지 대차대조표 작성에 집중한다. 이런 식이다. 김기영의 오리지널에는 하녀는 있지만 하녀복은 없다. 대신 하녀와 맞서는 본처의 한복은 있다. 반면 임상수의 리메이크에는 ‘몸에 딱 붙는’ 하녀복은 있지만 하녀는 없다. 대신 하녀는 늙은 하녀와 젊은 하녀로 분열되고 본처는 처와 장모로 증식된다. 오리지널의 남자는 생계를 위해 피아노를 치지만 리메이크에서는 여유를 과시하기 위해 그랜드피아노를 친다. 계단의 역할은 더 높은 곳의 샹들리에가 떠맡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모두 바꾸고 난 뒤에 방점이 찍힌 임상수의 <하녀> 오프닝은 오히려 김기영의 <충녀> 오프닝과 겹친다. 무심한 도심을 가로지르는 여주인공의 심연에 대한 느낌과 복선의 기능이 거의 유사하다. 아무리 자유롭다 해도 유령은 발목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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