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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월드컵①] SBS 박지성·배성재, "에너지와 자신감이 흐름을 잘 타기를"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18-06-18

박지성 해설위원과 배성재 캐스터(왼쪽부터).

축구 해설자 박지성이라니, 선뜻 상상이 안 된다. 일찌감치 축구 해설에 발을 들인 다른 선수 출신 해설자들과 달리 그는 은퇴한 뒤 대학원에 진학해 축구행정을 공부하고, 박지성 재단(JS 파운데이션) 일에 전념하며,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을 맡아 유소년 축구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방송과 거리를 두었던 그를 러시아월드컵 해설위원으로 꾀어낸 사람은 ‘배거슨’ 배성재 SBS 아나운서다. 당대 최고의 ‘드립력’을 구사하는 배성재라면 박지성의 봉인된 입에서 선수 시절 경험담과 분석력을 끄집어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면서 수많은 리그 우승컵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한국을 월드컵 4강에 올렸던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였던 그를 말이다. 배성재가 또 박지성을 <씨네21>에 꾀어내준 덕분에 SBS 박지성 해설위원과 배성재 캐스터를 러시아로 출발하기 직전에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지난 6월 6일 방영된 MBC <라디오스타>에서 MBC 안정환 해설위원이 “이영표와 박지성은 재미없다”고 말했는데. (웃음)

=박지성_ 내가 재미있는 사람이 아닌 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축구 해설이 계속 재미있을 필요는 없다. 경기 중 한두번 정도는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 수 있고, 배성재 아나운서가 위트가 있기 때문에 우리 해설이 지루하지만은 않을 거다.

=배성재_ 박지성은 21세기 한국 축구를 바꾼 주인공이다. 단지 ‘박지성이니까’ 보는 거지, 박지성이 재미있어서 보는 건 아니다. 그 방송에서 박지성이 내 애드리브를 못 받는다고 말했던데, 나는 벽을 보고도 ‘드립’을 칠 수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박지성은 실제로 꽤 재미있는 사람이다.

-박지성 해설위원은 해설이 처음인데 해설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계기가 무엇인가.

박지성_ 그간 SBS와 좋은 관계를 이어왔다. SBS는 지난해 JS 파운데이션이 주최한 JS CUP U-12 국제유소년축구대회를 중계했고, 배성재 아나운서가 지속적으로 내게 해설할 것을 설득해왔다. 그가 한 말 중에서, 지도자가 될 생각이 없는 내가 지도자로서 축구 철학과 경험을 보여줄 수 없으니 해설로 공유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에 많이 공감했다. 또 SBS로부터 K리그를 위한 방송을 다시 하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박지성 해설위원을 SBS로 끌어들이기 위해 어떤 전략을 썼나.

배성재_ 지난 몇년 동안 만날 때마다 해설에 대한 ‘인셉션’을 해왔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대영특사’로 비밀리에 잉글랜드로 건너가 2주간 축구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를 설득하는 동시에 SBS 입장에서 그가 축구 이야기를 얼마나 잘하는지도 확인했다. 박지성은 자신을 드러내는 ‘쇼’ 욕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해설자로서 책임감을 가질 때는 선수 시절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이타적인 ‘코멘테이터’로 돌변한다. 활동량, 이타성, 전술 이해도 모두 현역 시절 그대로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다.

-해설 준비는 거의 다 끝났나. 팀과 선수 정보를 어떻게 조사했나.

배성재_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집중 리허설을 하는 ‘팍스 스피치’ 프로토콜을 가동했다. 내가 박지성에게 말을 가르친 게 아니다. 내가 다듬어준 방송 화법은 해설 준비의 20%밖에 안 됐고, 나머지 80%는 그의 축구에 대한 생각을 배우고 듣는 시간이었다. 시간과 정신의 방에 들어가서 특별 훈련한 결과를 본선에서 보여주겠다.

-평소 좋아하는 해외 해설자는 누구인가.

박지성 해설위원

박지성_ <ITV>에서 활동하고 있는 리오 퍼디낸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시절, 말이 엄청 많아서 왠지 은퇴한 뒤 해설을 할 것 같았는데 진짜 하더라. (웃음) 역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동료였던 게리 네빌도 말이 많은 선수였는데 <ITV>에서 축구 시합을 중계하고 있다.

-그간 차범근 감독을 포함해 박문성, 장지현 등 여러 해설위원들과 호흡을 맞춰봤는데, 해설위원으로서 박지성은 어떤가.

배성재_ 차범근 위원에게서 느껴지던 레전드의 무게감과 젊은 축구인 특유의 편안함을 함께 갖추고 있다. 한국에서 월드컵과 챔피언스리그의 최상부를 함께 경험한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에 대단히 특별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남에게 뭔가를 설명하거나 자신을 내세우려는 욕심 자체가 아예 없는 사람이라 가만히 놔두면 답답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내가 패스를 뿌릴 것이다. ‘박지성 착즙쇼’를 기대해달라.

-한국이 속한 F조에 대한 얘기부터 해보자. 독일, 스웨덴, 멕시코와 한조인데, 한국의 16강 진출이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박지성_ 독일은 우승 후보 중 하나다. 말이 필요 없을 만큼 개인 능력, 조직력 모두 최고의 전력을 갖춘 팀이다. 우리와 만나기 전까지 멕시코와 스웨덴을 이겨주는 것이 우리가 16강에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멕시코는 전술적으로 상당히 유연한 팀이다.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많은 까닭에 경기 중 수시로 다른 전술과 내용을 보여줄 수 있는 팀이다. 최근 월드컵에서 6회 연속 16강 진출을 이루어낸 경험 역시 강점이다. 스웨덴은 멕시코와 달리 4-4-2 전형을 고집한다고 하지만 그만큼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하고, 누가 경기에 들어가더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확실히 알고 경기하는 장점이 있다. 수비에 중심을 두고 역습으로 공격을 하는 부분과 피지컬에서 강점을 보인다.

배성재_ 최근 선수 기용 패턴에 팀마다 차이가 있다. 스웨덴은 선수들을 일관되게 기용했고, 멕시코는 선수들을 계속 바꾸며 로테이션 기용을 해왔다. 독일은 선수가 너무 풍부한 게 탈이다. 우리나라 수비가 제 몫만 해준다면 16강 가능성은 50 대 50이다. F조 첫 경기인 독일과 멕시코 경기가 무승부로 끝날 경우 지옥의 문이 열릴 것이다.

-16강 진출을 위해 한국은 어떤 전략으로 이들을 상대하는 게 좋을까.

박지성_ 첫 경기인 스웨덴을 이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당히 힘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 역시 우리를 이겨야 하기에 우리보다 급한 건 스웨덴일 것이다. 선제골을 내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후반 중반까지 0대 0 상황을 만든 뒤 승부를 봐야 할 것 같다. 우리의 빠른 공격수들이 스웨덴의 양쪽 측면과 수비 뒷공간을 잘 노린다면 상대를 힘들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찬스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전부터는 첫 경기 결과에 따라 전략이 달라질 것 같다. 우리 계획대로 첫 경기를 이기고 멕시코가 독일에 진다면 우리가 전략 짜기가 좀더 수월해질 것이다. 멕시코는 공격적인 압박을 하는데 그 부분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 같다. 당황하지 않고 압박을 잘 견디고 벗어난다면 좋은 찬스를 맞이할 수 있다. 개인 기술들이 뛰어나기 때문에 수비수들에게 높은 집중력이 요구되는 경기가 될 것이다. 3차전 역시 두 경기 결과에 따라 전략이 달라지겠지만 독일은 누가 나오더라도 우리에게는 힘든 경기가 될 것이다. 앞서 두 경기를 좋은 흐름으로 치르고 자신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해야 할 것 같다. 운도 따라주기를 바란다. 힘든 조인 건 분명하지만 그나마 대진 순서는 좋다고 본다. 회의적인 시각이 많지만 그것을 뒤집는 결과를 보여주기를 응원한다.

배성재 캐스터

배성재_ 전원을 경계하기를 바란다. 특히 수비진이 공을 멋있고 예쁘게 차는 것이 아니라 혼신의 투지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공격진도 ‘축구란 뻥뻥 차는 것이다’라는 느낌으로 자신 있게 슛을 많이 때리길 바란다.

-신태용 감독 체제의 대표팀이 최근 인상 깊은 경기 내용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박지성_ 부상 선수들이 많아서 최종 엔트리를 구상하는 데 상당히 힘들었을 것으로 본다. 대표팀에 새로 들어온 선수들이 기존 선수들과 얼마나 호흡을 잘 맞추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이근호와 염기훈의 부상으로 월드컵을 경험한 베테랑 선수가 부족해 보이지만 패기 넘치는 어린 선수들의 에너지와 자신감이 흐름을 잘 타면 무서울 것이다.

배성재_ 박 해설자의 의견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팀과 선수를 각각 꼽아달라.

박지성_ 브라질. 지난 3번의 월드컵에서 유럽 국가가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번만큼은 브라질이 그 기록을 저지할 수 있을 거라 기대가 된다. 독일에 참패당했던 지난 월드컵 결승전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브라질은 독일에 1 대 7로 패배해 준우승에 머물렀다.-편집자). 주목하는 선수는 프랑스 대표팀의 스트라이커인 킬리앙 음바페(파리 생제르맹). 어린 나이인데도 유럽에서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는 선수로, 이번 대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기대된다.

-방송사 각사의 시청률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자신 있나.

박지성_ 안정환, 이영표 해설위원은 이미 월드컵을 경험했고, 자신의 장점을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해설자로서 월드컵을 처음 경험하는 까닭에 그들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지만 배성재 캐스터와 열심히 연습했고, 원래 친분이 있는 사이인 만큼 호흡도 좋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 축구를 잘 전달하다면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

배성재_ 안정환과 이영표의 선수 시절 팬이었고, 현재 해설자로도 팬이다. 앞으로 팬으로 남을 것이다. 두분이 오랫동안 해설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이광용, 김정근 형들도 힘든 시기를 겪었는데 이번 월드컵이 형들의 커리어에 좋은 시기로 남길 바란다.

박지성과 배성재가 예상하는 우승국

박지성_ “우승팀이 브라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선수 개개인의 능력도 훌륭하지만 팀의 조직력도 좋다. 지난 대회의 아픔을 씻을 수 있는 기회다. 네이마르(파리 생제르맹)가 부상에서 회복된 뒤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관건이다. 득점왕은 예상하기 어렵다. 지난 대회에서도 콜롬비아의 하메스 로드리게스(바이에른 뮌헨)가 득점왕이 되었듯이 이번 대회에서도 의외의 선수가 될 것 같다.”

배성재_ “우승팀은 브라질. 득점왕은 브라질의 가브리에우 제수스(맨체스터 시티). 2017~18 프리미어리그 시즌 전에 득점왕으로 그를 꼽았는데, 생각보다 골을 많이 넣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내 예상을 살려주길 바란다.”

내 인생의 영화

<이프 온리>

박지성_ “하나를 고를 수가 없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영화는 <이프 온리>(2004)다.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보다보니 가장 많이 본 영화가 됐다. 그런 용기 있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해준 멋진 영화다.”

<백 투 더 퓨처>

배성재_ “<백 투 더 퓨처>(1985). 100번 이상 본 첫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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