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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요상한 사랑 이야기,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가 보여주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요상한’ 사랑 이야기

<나라야마 부시코> <우나기> <간장선생>에 이어 한국에서 개봉되는 네 번째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은 거칠게 비교해 마치 <우나기>의 속편처럼 보인다. 우선 영화의 주인공 요스케와 사에코 역을 맡고 있는 야쿠쇼 고지시미즈 미사가 <우나기>에 이어 다시 한번 연인으로 등장한다. 주제적으로는 근래 들어 이마무라 쇼헤이가 추구하고 있는 화해와 합일의 세계관을 한눈에 긍정할 수 있는 그런 영화이기도 하다. 아내의 불륜장면을 목격하고 살인을 저지른 뒤 감옥을 갔다와서 한 마을에 정착해 이발사로 살아가는 남자가 그 마을에 자살하러 들어온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줄거리의 <우나기>는 이마무라 쇼헤이가 자신의 전작들을 참조하면서 암암리에 긍정적인 성찰의 그림자를 드리운 영화였다.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의 요스케는 그와 비슷한 서사구조로 복제된 인물들을 보여주면서 그 성찰의 총체를 다시 한번 재조합해보는 영화이다.

직장을 잃고 실의에 차 있던 주인공 요스케는 평소 절친하게 지내던 노인 타로를 찾아간다. 그러나 다리 밑에 허름한 집을 짓고 살았던 ‘천막에 사는 철학자’ 타로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다. 요스케는 타로와의 기억을 되짚던 중 그가 전쟁 직후 노토 반도의 한 마을, 붉은 다리 옆에 있는 어느 집에 황금불상을 숨겨놓고 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것을 기억해낸다. 돈이 궁한 요스케는 충동적으로 그 보물을 찾아 떠난다. 그곳에서 요스케는 사에코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부터 영화의 이야기는 욕망의 법칙 안으로 빠져들어간다. 성교를 하지 못하면 몸에 물이 차는 기괴한 병에 걸린 사에코, 그녀를 위해 요스케는 있는 힘을 다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본능의 질서에 눈을 떠간다. 요스케는 그 마을에 남아 어부로 살 것을 결심하고 둘의 관계는 연인으로 발전해간다.

<나라야마 부시코>와 <우나기>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두번이나 거머쥐었던 이마무라 쇼헤이의 상상력은 언제나 상식을 배반한다. 그는 인간의 몸을 격식 갖춘 이성의 수준에서 판단하고 그려내는 법이 없다.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역시 그렇다. 데뷔작 <도둑맞은 욕정>에서부터 이 영화에 이르기까지 이마무라 쇼헤이는 욕정에 젖은 인간 몸의 본심을 살피면서 전후 일본의 모습에 대한 비판의 알레고리로 얽어매어왔다. 혹은, 살과 피로 얼룩진 난처하고 두렵지만 숨길 수 없는 욕망의 몸짓 그 자체에 대해 광적인 숭배로 연구해왔다.

그러나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은 그런 입장의 표현들이 분명 유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그 변화는 이미 <우나기>에서 확인한 바 있다. 어떤 업보가 있고, 그것이 대전제가 되지만 영화의 주인공들은 초기 영화의 주인공들과 달리 위험한 길로 들어서기 직전에 발길을 돌린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살인은 이미 전 세대에게서 벌어진 사건일 뿐 다시 재발하지 않는다. 죽은 타로가 이 집의 할머니와 관계가 있었고, 살인자가 되어 도망을 친 과거가 있지만, 그리고 요스케 역시 우연한 사건에 얽혀 그 살의를 발동시키지만 그것은 <우나기>의 이발소 소동처럼 미수로 그친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복수의 진짜 난투극 대신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화합을 향해 나아가는 즐거운 소동극을 꿈꾼다. 이것은 과거 일본 역사에 보내는 반성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여전히 여성이 있고, 가족이 있고, 마을이 있고, 사회가 있고, 그 사이를 욕망이 매개하지만, 관계를 엮어내는 거장의 손길은 놀랄 만큼 따뜻해진 것이다. 대표적인 장면. 요스케와 사에코가 성교를 나누는 순간을 이마무라 쇼헤이는 그녀의 몸에서 분출되는 물줄기를 보여주면서 사랑의 쾌감으로 승화시킨다. 온 방 안에 물줄기는 방사되고, 그 물은 강으로 흐르며, 고기떼들은 순식간에 밀려온다. 마침내 몸의 치료에서 마음의 소통으로 이르는 순간 그 물줄기 위로 무지개가 그려진다. 주인공이 여행길에 오르고 다시 되돌아가지 않으면서, 새롭게 발을 디딘 그곳에서 사건을 겪고 마침내 긍정의 삶이 시작되면서, ‘붉은 다리 아래’에서는 아주 요상한 방식으로 새로운 겹겹의 공동체가 생겨난다. 그 완성에 이를 때에 자연의 섭리조차 일치되는 수준에 이른다.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은 그렇게 유쾌한 사랑 이야기가 되어간다. 처음에는 궁금증으로, 뒤로 갈수록 미스터리로, 마지막 순간에는 행복으로, 붉은 다리 아래에서는 많고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결국 무엇이 진짜 보물인지를 알게 되는 그때까지.

::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 속 여자들

“무엇이 이 여인들을 그토록 강인하게 만들었을까?”

<우나기>

<복수는 나의 것>

<나라야마 부시코>

“누군가는 21세기가 과학과 기술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고 싶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가 될 것이다. 지난 세기에 내가 만들었던 영화들인 <형> <돼지와 군함> <일본 곤충기> <붉은 살의> <좋지 않습니까> <나라야마 부시코> <뚜쟁이> 등은 여성이 사회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며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여겨졌던 시대에도 자신의 운명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강인한 여성들을 다루고 있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자신의 영화 속에 등장했던 여성의 이미지를 이렇게 해석해낸다. 주로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를 설명하는 말인 욕망, 성, 에너지, 원초성, 본능 등의 주인은 거의 언제나 여성주인공이다.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에서 사에코가 앓고 있는 그 해괴한 병을 사랑이라는 행복한 결말로 이끄는 방식에도 다 연원이 있는 셈이다. 사실 이 영화는 야쿠쇼 고지가 연기한 요스케에서 시작하지만 한편으로 시미즈 미사가 연기하는 사에코가 더 큰 역할의 주인공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초기에 이마무라 쇼헤이의 여성들은 착취당하거나 배척되는 존재들로 자주 등장했다. 데뷔작 <도둑맞은 욕정>에 등장하는 유랑극단 여주인공은 오즈의 영화 <부초>에 등장하는 여성상과는 천지 차이의 성적 욕망을 드러낸다(한때 이마무라 쇼헤이는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이었다. 그러나 그는 동의할 수 없었던 오즈의 세계와 결국 헤어져 다른 길을 갔다). <일본 곤충기> <붉은 살의> <돼지와 군함> <인류학 입문> 등에서는 짓밟히고 학대받는 성적 농락의 대상으로 등장했다. <신들의 깊은 욕망>과 <복수는 나의 것> 등에서는 근친상간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욕망이 바깥으로 번질수록, 고난이 험난한 질곡들을 거칠수록 역설적으로 강인한 주체성이 성취되는 것이라고 이마무라는 말하는 듯하다. 실제로 이마무라 쇼헤이는 “무엇이 이 여인들을 그토록 강인하게 만들었는가? 그것이 내가 ‘혐오스런 힘’이라 부르는 여성들만의 특징은 아닐까? 나는 헨미 요의 소설을 재해석함으로써 여성의 본성 밑바닥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밝혀내고 싶다”면서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을 설명한 바 있다. 이마무라 영화에 피력된 여성관은 <나라야마 부시코>의 강인한 의지를 지닌 할머니를 지나, 조직폭력배의 정부로서의 과거를 지닌 <우나기>의 여주인공을 지나, <간장선생>의 전직 창녀를 지나, 이상한 병을 앓고 있는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의 사에코까지 이르러 피해자가 아닌 다른 방식의 주체자로 다양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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