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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대신하는 부처의 설법, <나그네와 마술사>
김현정 2006-04-25

키엔체 노르부는 1999년 월드컵 중계를 보고 싶어하는 티베트 승려들의 해프닝을 그린 영화 <>을 만들었던 승려 출신 감독이다. 소박한 일상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전했던 그는 다국적 스탭들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 부탄에서 촬영된 첫 번째 장편영화를 완성했다.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하는 <나그네와 마술사>는 수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불교의 가르침과 현대화를 시도하는 부탄의 변화가 무리없이 한데 녹아 있는 영화다.

시골 마을에 공무원으로 부임한 돈덥(티세왕 댄덥)은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가 자기를 초청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기다리던 편지가 도착하자 돈덥은 짐을 꾸려 미국 대사관이 있는 도시로 나가려고 하지만,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하염없이 지나는 자동차를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나그네가 많은 이 길 위에서 돈덥은 아름다운 소녀 소남(소남 라모)과 젊은 승려(소남 킹) 등을 길동무로 맞는다. 승려는 지루한 여정을 달래고자, 고향을 떠나고 싶어하다가 신비로운 숲속에서 길을 잃는 청년 타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승려로도 유명한 키엔체 노르부는 왜 영화를 만드는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람들은 영화라면 돈과 섹스와 폭력을 떠올린다. 그러나 오즈 야스지로와 사티야지트 레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를 보았다면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불교가 과학이라면 영화는 그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처럼 <나그네와 마술사>는 영상으로 대신하는 부처의 설법처럼 느껴진다. 실재하는지도 모르는 미국의 꿈을 좇아 떠나는 돈덥은 승려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타시이기도 하다. 희고 예쁜 여자와 모험이 있는 바깥세상을 꿈꾸던 타시는 늙은 남편과 사는 미녀 데키를 만나지만 오래 간직했던 꿈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만 깨닫는다. <나그네와 마술사>는 그처럼 돈덥과 타시, 덧없는 욕심에 휩쓸리는 모두를 깨우치는 영화다.

서구 관객은 만년설이 보이는 길 위의 이야기에 매혹되기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구운몽>과 ‘조신의 꿈’ 설화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자란 동양인들에게 <나그네와 마술사>는 지나치게 멀리 돌아 단순한 주제에 도달하는 영화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세상의 때와 악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나그네와 마술사>에 호감을 주지 않기란 힘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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