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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리의 만돌린
2001-10-16

코렐리의 만돌린

■ Story

그리스의 작은 섬 케팔로니아에도 2차대전의 먹구름이 밀려온다. 의사의 딸 펠라기아(페넬로페 크루즈)는 출전한 만드라스(크리스천 베일)를 기다리며 무수한 편지를 쓰지만 답장이 없다. 이탈리아군과 독일군이 케팔로니아에 주둔하면서 펠라기아 앞에는 만돌린을 연주하며 음악과 인생을 찬미하는 낙천적인 이탈리아 장교 코렐리(니콜라스 케이지)가 나타난다.

■ Review 삶의 뿌리를 파내고 인연의 실을 헝클어놓는 전쟁은, 장엄미를 추구하는 멜로드라마에 제격인 무대다. 2차대전중 그리스 케팔로니아 섬에 배속된 이탈리아 대위 코렐리 역시 전쟁이 낳은 사랑, 전쟁 같은 사랑의 히어로. 코렐리는 마치 셰익스피어극 <템페스트>의 주인공처럼, 전쟁이라는 폭풍우에 떠밀려 당도한 섬에서 늙은 현자와 그의 외동딸을 만나 사랑의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총명하고 아름다운 펠라기아에겐 약혼자 만드라스가 있지만, 애인이 종군 전야의 슬픔을 안으로 삭일 때 실없는 장난이나 치는 이 둔한 미남이 그녀의 짝이 아니라는 점은 처음부터 분명하다. 반면 독일군의 “하일, 히틀러!”에 “하일, 푸치니!”로 응대하는 오페라광 코렐리는 펠라기아와 심미안으로 맺어진다. 둘의 연분은 머뭇대던 펠리기아가 열정적인 탱고 솜씨를 선보이는 순간 확실해진다.

역사와 휴머니즘, 로맨스를 아우른 두터운 베스트셀러 <코렐리 대위의 만돌린>을 워킹 타이틀, 미라맥스 등 네개 영화사가 가공하고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존 매든 감독과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도한 이 영화는 최선의 경우 <잉글리쉬 페이션트>와 비슷한 부류의 ‘오스카 표’ 일품요리가 될 수 있었으리라.

과연 영화의 스토리는 이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 없는 사건으로 빼곡하다. 비운의 연애와 정치 음모, 뮤지컬을 방불케 하는 합창과 해변의 향연, 그리고 <진주만>의 공습장면을 연상시키는 약간의 스펙터클까지 다양한 요소들을 종합해 두 시간짜리 협화음을 뽑아내는 과제는, 비록 난해하기는 하지만 <미세스 브라운>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존 매든 감독이라면 해볼 만한 도박. 하지만 전작들을 함께한 제레미 브록, 톰 스토파드 같은 유능한 작가의 조력이 없는 매든 감독은 허둥댄다. 적당한 길이를 부여받지 못한 에피소드들은 경중을 가리지 않은 각색 탓에 쌓아올려지기보다는 나열되고, 그 결과 이탈리아군이 파르티잔과 손잡는 반전, 연인의 기약없는 이별 등의 절정부에서도 감정은 충분히 고양되지 않는다. 자막을 피하고자 그리스, 독일, 이탈리아 인물의 대사를 영어로 통일하고 악센트로 국적을 구별한 억지도 영화에 작위적 인상을 입혔다.

전쟁이 숨죽인 뒤에도 섬은 살아남고 사람들은 고통을 치유하는 축제를 벌인다. 지진과 학살에도 불구하고 삶과 사랑은 노래할 만한 것이라는 <코렐리의 만돌린>의 품넓은 결론은 훌륭하다. 그러나 심금의 현(絃)을 탄주하지는 못한다. 선한 신의 눈동자 같은 이오니아 해의 쪽빛 수면만이 영화보다 긴 잔상을 남길 뿐이다.

김혜리 verme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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