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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땅에서 벌어지는 전쟁담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
박혜명 2008-05-14

전편과의 재미비교 지수 ★★★☆ 판타지물 마니아 충족 지수 ★★★ 장르 독창성 지수 ★★☆

<나니아 연대기>는 <반지의 제왕>이 아니다. <해리 포터>는 더더욱 아니다. C. S. 루이스가 1950년부터 1956년까지 7년간 7권의 책으로 써낸 페벤시가(家) 사남매의 나니아 모험기는 아이들이 읽기 적당한 글 분량, 이해하기 적당한 판타지 세계의 묘사, 감당하기 적절한 긴장감, 교훈적인 기독교적 세계관 등을 견지한 아동문학이다. 2005년 개봉한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원작 소설의 아동 타깃적 성격과 교훈적 태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작은 문장 하나도 지나치지 않고 스크린으로 옮겼다. 확실히 1편은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의 강도 높은 자극과 무서운 이야기에 길들여진 성인 관객을 매료시킬 만한 것은 아니었다.

2편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이하 <나니아 연대기2>)는 달도 뜨지 않은 깊고 어두운 밤, 거대한 성 안에서 힘겹게 출산하는 여자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아들을 얻게 된 나니아의 왕 미라즈(세르지오 카스텔리토)는 조카 캐스피언 왕자(벤 반스)를 더이상 곁에 둘 이유가 없어졌다. 핏줄을 숙청해도 좋다는 왕의 명령이 떨어지고, 젊은 왕자는 성을 떠나 죽을힘을 다해 도망친다. <나니아 연대기2>는 과거의 풍요로움을 잃고 황폐해진 나니아 땅에서 벌어지는 전쟁담이다. 침략당한 땅을 되찾고 싶은 기이한 생김새들의 나니아인들, 영주들을 모두 누르고 제왕이 되려는 왕 미라즈, 잔인한 정복왕 캐스피언의 후손 캐스피언 왕자 그리고 1천년 전 나니아를 통치했던 페벤시가 사남매가 광활한 평야 위에서 무기를 들고 만난다.

사실 2편은 원작의 플롯 자체가 1편보다 복잡하고 의외성이 많긴 하다. 여기엔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의심이 훨씬 짙어서 판타지·영웅블록버스터 제작진들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하는 ‘어두움’을 영화에 불어넣기 좋은 구실이 된다. 그러나 군대 절반을 미라즈 왕의 성 안에 버려두고 돌아서야 했던 아군의 비극이나 페벤시가의 장남 피터와 캐스피언 왕자간의 갈등, 영주들의 음모와 배신, 하얀 마녀(틸다 스윈튼)의 유혹 앞에 흔들리는 캐스피언 왕자의 모습 등은 제작진이 전편보다 감정의 무게추를 더 쌓기 위해 만든 부분들이다. 드라마적인 스릴을 위해 고심한 각색도 성공적이다. 원작을 읽은 관객이라면 영화 초반부에서 캐스피언 왕자의 왕궁 탈출기와 페벤시가 사남매의 나니아 귀환기가 어떻게 재치있게 편집·압축되었는지 알아볼 것이다. 물론 영화는 여전히 원작의 틀 안에 있다. 나니아를 둘러싼 유혈전쟁의 최후 승전보는 그곳의 최고 통치자인 사자 아슬란의 출현과 함께 손쉽게 선한 이들 것이 된다. 그럼에도 2편은 교훈적이며 정해진 결말을 향해 쓰여진 원작과 전체 관람가의 한계로부터 뽑아낼 수 있는 최대 사이즈의 판타지블록버스터다.

마음에 남는 다소 지루한 느낌은 그러므로 이 영화가 아동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마도 영화 곳곳에서 <반지의 제왕>을 강하게 상기시키는 프로덕션디자인들이 출몰하기 때문일 것이다. 숲의 거목들이 움직인다든지 강물이 육체처럼 솟아 군대를 뒤덮는 모양은 설사 그것이 원작에 있었다 하더라도 또 다른 판타지물에서 다시 반복해 보고 싶은 장면들은 아니다. 들려주는 이야기의 상상력만큼 보여주는 상상력도 중요한 판타지 장르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나니아 연대기>는 2010년 5월7일 개봉을 목표로 현재 3편 제작 준비에 돌입해 있다. 감독은 <이너프> <브링크> 등 날렵한 스릴러물 연출에 재능을 보인 마이클 앱티드다.

TIP/ 캐스피언 왕자로 출연한 배우는 1981년생 영국 배우 벤 반스다. 연극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그를 영화에서 본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면 아마도 <스타더스트>일 듯. 주인공 트리스탄의 아버지로 앞부분에 짤막히 출연했다.

C. S. 루이스는 누구인가 C. S. 루이스(1898∼1963)는 본래 아이들을 좋아하긴커녕 끔찍이 싫어했다. 그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지독한 기독교 회의주의자였고 무신론자였다. 그는 오컬티즘를 추종했던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시들을 사랑했고, 북유럽과 그리스 신화 그리고 고향 아일랜드의 신화 등에 학문적으로 심취했다. 완고한 무신론자였던 그가 기독교인으로 돌아서게 된 계기는 그의 옥스퍼드 동료이자 일평생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J. R. R. 톨킨과 20세기 영문학의 주요 작가인 G. K. 체스터톤의 저서 <영원한 인간>(The Everlasting Man)이었다. 그중에서도 톨킨과 나눴던 기독교에 관한 격하고 긴 토론은 루이스를 무너뜨렸다. 그 뒤 루이스는 <예기치 못한 기쁨> <순전한 기독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순례자의 귀향> <기적> 등의 저서를 통해 비논리적이며 감정적이라 비판받는 신과 신앙심의 정체를 가장 논리적이며 지적인 방식으로 풀어내 보였다. C. S. 루이스는 20세기 기독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자 중 하나다.

루이스에 관한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결혼이다. 평생 독신주의자를 결심하고 살았던 그는 1952년 <나니아 연대기>의 3권째를 저술하던 기간 중, 평범한 이혼녀이자 두 아들을 둔 37살의 여인 조이 그레샴과 만나게 됐다. 뒤늦게 찾아온 사랑으로 4년 뒤 그는 그레샴과 결혼했다. 그레샴은 그때 이미 암 투병 중이었고, 8년 뒤 루이스는 아내를 잃었다. 이듬해 그는 그 자신의 가장 감정적이지만 아름다운 저서 <헤아려 본 슬픔>를 썼다. 3년 뒤 C. S. 루이스는 65살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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