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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십대 호러와 동양적 정서의 만남 <썸머 솔스티스>
박성렬 2008-08-27

틴드라마 지수 ★★★ 고어 지수 ☆ R. 리 어니 카리스마 지수 ★★★★

십대는 괴담과 분신사바로 여름을 보낸다. 바다 건너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메간(엘리자베스 하노이스)과 친구들은 예년처럼 루이지애나의 별장으로 여름휴가를 떠난다. 풍광 좋고 넉살 넘치는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지만 메간은 자살한 쌍둥이 동생인 소피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자살 직전에 소피의 전 남자친구인 크리스천(숀 애시모어)과 좋은 관계가 되어 질투를 일으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장을 풀자마자 기현상이 이어진다. 아닌 밤중에 자동차의 조명이 켜지고 소피의 유품인 열쇠가 장소를 바꿔가며 눈앞에 나타난다. 소피의 영혼이 구천을 떠돌고 있다는 의혹이 점차 짙어지는 가운데 마을의 수상한 노인 레너드(R. 리 어니)가 별장 주변을 기웃거리기까지 한다. 자살의 원인이 질투에 있었다고 믿었던 메간은 기현상과 노인을 잇는 새로운 끈을 눈치채고 자살에 얽힌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동생의 영혼을 부르는 의식을 감행한다. 바로 하지(Summer Solstice) 전날 저녁에.

전형적인 미국 십대 호러의 설정을 동양 호러적 소재로 장식한 영화가 <썸머 솔스티스>다. 신체 건강하고 호기심 왕성한 십대들이 먼 별장으로 여행을 떠나 기괴한 실체와 마주친다는 설정은 별로 놀라울 게 없다. <미녀와 뱀파이어>(TV) 따위의 틴드라마에 가까운 행동도 미국의 십대 호러로서는 사뭇 진부하다. 예컨대 여자들은 매점에서 일하는 시골뜨기 젊은이 닉(타일러 후츨린)에게 추파를 던지고 마크(매트 오리어리)는 쉼없이 농담을 쏟아낸다. 날카로운 흉기, 뚝뚝 흐르는 피나 너덜거리는 살덩이로 공포감을 조성하지 않고 오로지 소박한 기현상으로 일관하는 점은 예외다. 소피의 죽음과 기현상을 연결짓는 한에 대한 인식도 낯설다. <썸머 솔스티스>는 서양 호러의 건강한 십대 주인공들을 내세워 악인을 징벌하고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 동양식으로 사건을 매듭짓는다.

이야기에 반전을 곁들여 흥미롭지만, 서로 다른 두 정서의 결합이 일으키는 균열은 문제다. 메간과 친구들의 여름나기는 너무 건강하고 유쾌하게 묘사된 나머지 메간의 정서적 불안이 어색한 지경이다. 본디 헛것을 보려면 많이 시달려야 하게 마련이니, 따돌림이나 엄격한 학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강조했더라면 더 말이 되었을 듯싶다. 본래대로 나가자면 귀신은 역시 좁아터진 육조 다다미방과 스산한 교정에 더 어울리며, 신체 정신 건강한 미국의 십대들은 너른 숲에서 살인마에게 쫓기는 편이 더 어울린다. 또 그게 전통이다. 깰 필요없는 전통에 돌을 날린 <썸머 솔스티스>는 그저 좀 이상한 영화다. <블레어 윗치>의 센세이션 이후 8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대니얼 미릭이 호러영화계에 다시 한번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켜보고 싶었던 기분이었다면 모를 일이지만.

tip/ R. 리 어니가 메건을 쫓는 노인으로 등장한다. <풀 메탈 자켓>에서 욕을 한 바가지로 쏟아냈던 하트만 상사가 마체테(아프리카의 전통 칼)를 들고 말없이 쫓아오니 좀 의외다. 역할은 비중 높은 조연에 가깝지만 캐스팅 목록에서는 가장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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