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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클리셰를 갖춘 누아르 비극 <소년은 울지 않는다>
박혜명 2008-11-05

이 스토리 흥미있다 지수 ★★★ 이 영화 좀 때깔난다 지수 ★★★ 이 영화 재미있다 지수 ★★☆

한국전쟁 종전 직후인 1957년. 수용소에서 일상을 보내는 고아 종두(이완)와 태호(송창의)는 빼돌려진 미군 물품으로 가득한 수용소 창고를 대담하게 털고 그곳을 탈출한다. 두 소년은 인근 시장을 장악한 만기파를 찾아가 노점 자리를 얻고 그곳에서 자신들이 훔친 미군 물품을 팔면서 돈을 모은다. 두 소년의 꿈은, 시장 바닥을 전전하거나 수용소에 갇혀 겨우 목숨 정도 부지하는 삶을 벗어나 원하는 만큼의 돈을 갖고 새 인생을 사는 것이다. 순남(박그리나)과 또 다른 소년 무리들이 태호와 종두의 일에 합류하지만 곧 이들 중에 배신이 일어나고 지금까지 종두와 태호를 보호해주던 만기파 서열 2위 명수가 서열 3위인 도철 손에 죽으면서 종두와 태호 무리는 신변의 위협을 강하게 느낀다.

소년들은 이 세상이 스스로 살아남아야 할 곳임을 안다. 방법이 다를 뿐이다. 태호는 “무조건 많이 가진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라 생각한다. 종두는 “다른 사람 필요없이 나 혼자 강해지는 것”이 그 답이라고 생각한다. 순남을 향해서도 사랑의 대립각을 이루던 두 소년은 결정적 위기가 닥쳤을 때 상반된 입장을 내세운다. 이것은 예정된 비극을 낳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다시 현실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는 비열한 세상을 배경으로 한 강한 남자들의 누아르 장르와 닮은꼴을 갖고 있다. 인물들의 연령대 설정이 낮다는 점을 제외하고 두 남자의 우정, 한 여자를 사이에 둔 사랑, 조직원의 배신, 조직의 위협, 죽음 등 모든 장르적 클리셰를 갖춘 누아르 비극이다. 뒷골목 소년들의 삶 속에서 황량하고 쓸쓸한 노스탤지어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막연히 연상시키는 구석도 있다.

매력적인 대중영화를 의도한 <소년은…>은 그런데 절반의 설득력만을 발휘한다. 슬픔과 허무를 동반한 아련한 희망의 메시지는 어떻게든 전달되지만, 세부적인 장면 설계 및 연출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엔딩장면에서 소년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묘사하는 것만큼이나 그들이 속한 세계의 냉정함을 긴장감있게 표현했다면 훨씬 보기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소년은…>은 김하늘, 강동원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렀던 배형준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tip/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촬영은 황기석(<형사 Duelist> <친구>), 프로덕션디자인은 신보경(<태극기 휘날리며>), 무술은 신재명(<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이 맡았다. 스탭 크레딧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제작비 35억원의 만듦새 이상을 보여주기 위해 프로덕션 과정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짐작한다. 실제로도 그 정성은 상당부분 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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