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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적 이데올로기와 그에 대한 저항 <베일을 쓴 소녀>
송경원 2014-01-22

18세기 프랑스, 딸만 셋인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난 수잔(폴린 에티엔)은 두 언니의 결혼 뒤 더이상 결혼 지참금을 마련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녀원에 들어가길 강요받는다. 그녀는 완강히 거부해보지만 달리 탈출구가 없다. 1년의 수련기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도 잠시, 자신이 어머니(마르티나 게덱)가 외도해 낳은 딸이란 사실을 안 뒤 결국 수녀서원을 받는다. 하지만 원장수녀 크리스틴(루이즈 보르고앙)은 그녀가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는다며 온갖 핍박을 가하고 참다 못한 수잔은 변호사를 통해 비밀리에 자신의 파문을 청한다. 이후 조사를 나온 주교 덕분에 겨우 다른 수녀원으로 옮겨가지만 새로운 원장수녀 유트롭(이자벨 위페르)의 이유를 알 수 없는 편애가 또 한번 그녀를 괴롭힌다.

한마디로 아름답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작가 드니 디드로의 소설 <수녀>를 원작으로 한 <베일을 쓴 소녀>의 뼈대는 봉건적 이데올로기와 그에 대한 저항이다. 하지만 억지로 수녀가 된 한 소녀를 통해 종교가 인간을 억압하는 모습을 드러낸 이야기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다. 출간 당시엔 금서로 지정될 파격의 소재였을지 몰라도 지금에 와서는 상식과 비합리 사이의 갈등 이상의 긴장감을 자아내긴 힘들다. 기욤 니클루 감독 역시 이 점을 잘 아는지 서사만으로는 한 소녀의 체험담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진 않는다. 대신 억지로 수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인들의 훈련되지 않은 감정과 이에 따른 반응을 반복적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이 과정이 실로 아름답다고 할 만한 화면을 통해 펼쳐진다.

<베일을 쓴 소녀>는 마치 회화처럼 관객의 마음속에 잔상을 남기는 영화다. 엄격하게 재단된 미장센이 매 화면을 꽉 채우고 있어 장면마다 한폭의 그림처럼 완결성을 지닌다. 이때 사건은 종종 생략되고 결과는 파편적으로 나열되는데, 오히려 이 점이 무표정한 수녀들의 가슴속에 들끓는 감정들을 상상하게끔 한다. 수녀가 되길 거부하는 수잔, 얼음 가면을 씌운 듯 강박적으로 규칙을 강요하는 크리스틴, 수녀원이란 성벽에 갇혀 사람의 온기를 갈망하는 유트롭까지 혐오, 배척, 갈망, 애정, 질투 등 종교가 그토록 억누르려 했던 파격의 감정들을 한폭의 회화처럼 화면 위로 펼쳐놓는다. 거기에 더해 거의 움직임이 없는 카메라는 공간과 인물의 표정을 문자 그대로 ‘마사지’하며 의외의 현실감을 자아낸다. 물론 평범한 회화를 명화로 완성시켜주는 건 이자벨 위페르를 비롯한 여배우들의 호연이다. 특히 주연을 맡은 떠오르는 신예 폴린 에티엔의 존재감이 상상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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