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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쉬핑 뉴스
2002-05-21

시사실/쉬핑 뉴스

■ Story

아버지에게 학대받은 소년 코일(케빈 스페이시)은 자라서 불행한 윤전공이 된다. 분방한 페틀(케이트 블란쳇)과 즉흥적으로 결혼한 그는 아내와 딸에게 사랑을 쏟지만, 가출한 페틀은 시체로 돌아오고 부모의 동반자살 소식이 들려온다. 고모 아그니스(주디 덴치)와 함께 선조들의 고향 뉴펀들랜드로 딸을 데리고 이사한 코일은 어촌 킬리클로의 지방신문 <개미 버드>의 기자로 취직해 새로운 생활을 하며 가족사의 어두운 비밀과 삶의 이치를 배워나간다. 그리고 슬픈 기억을 가진 여인 웨이비(줄리안 무어)와 로맨스를 시작한다.

■ Review 그 남자는 언제나 거기 없었다. <쉬핑 뉴스>의 코일은 평생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온 중년이다. 아버지는 헤엄칠 줄 모르는 어린 아들을 물에 빠뜨렸고, 여름날 소나기처럼 그의 인생에 찾아왔던 아름다운 여인은 왔을 때와 똑같은 급한 발걸음으로 황망히 사라져갔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아서 영화 내내 그저 성(姓)인 코일로만 통하는 이 남자의 인생은 평생 발길질만 당하고 산 개처럼 처량하고 비굴하다. 마치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옛 영화 제목처럼.

해법은 간단하다. 구제불능으로 엉킨 매듭을(코일이라는 단어에는 사투리로 매듭의 뜻이 있다고 한다) 풀려면 실타래의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고, 메두사의 머리를 베려면 괴물을 마주보아야 한다. 코일과 그의 딸 버니는 먼 뱃길을 따라 해적질과 폭력, 근친상간으로 점철된 조상의 역사가 묻혀 있는 뉴펀들랜드의 바람 많은 섬으로 돌아가 정신적 번제(燔祭)를 치른다. 각기 비밀과 흉터를 안은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마을의 괴짜 주민들로부터 인생과 화해하는 방법도 배운다.

케빈 스페이시, 줄리안 무어, 주디 덴치, 케이트 블란쳇이 사방에 포진한, E. 애니 프롤스의 퓰리처상 수상작 원작의 <쉬핑 뉴스>는 승선한 배우의 이름만으로도 아카데미를 솔깃하게 할 만한 영화다. 하지만 <생쥐와 인간>의 존 말코비치가 그랬듯이 흠없는 연기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익히 알고 있는 교활하리만큼 영리한 배우 스페이시의 카리스마는 낙오자 코일의 가면과 다소 불편하게 포개진다. 바닷가 집이 도로시의 오두막처럼 하룻밤 사이 날아가고, 잘린 사람의 머리가 아이스박스에 담겨 표류하는 <쉬핑 뉴스>는 자못 목가적인 풍경 위에 터부를 넘나드는 엽기적 가족사를 새겨넣는 감독의 취향이 또 한번 발휘된 작품이다. <개 같은 내 인생> <길버트 그레이프> <사이더 하우스> <초콜렛>으로 이어진 이력에 <쉬핑 뉴스>를 더함으로써 라세 할스트롬은 황량하지만 낭만적인 그림엽서 같은 휴먼드라마의 브랜드 안에, 그리고 영화제 시장에서 그 상표가 갖는 힘을 잘 이해하는 미라맥스의 지붕 아래 안주했다. 김혜리 verme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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