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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송강호는 송강호다

<박쥐> 송강호

박찬욱 감독의 <박쥐>는 올해 상반기 최고 기대작 중 하나다. ‘복수 3부작’ 이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를 그의 ‘쉬어가는’ 영화로 생각했던 팬들이라면 더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박쥐>는 이미 오래전 박찬욱 감독이 <공동경비구역 JSA>(2000)를 끝내고 차기작 중 하나로 구상하며 송강호에게 출연을 제의했던 영화다. 그렇게 <박쥐>는 박찬욱과 송강호 두 사람이 오래도록 벼르고 벼른 영화다. 우정출연이었던 <친절한 금자씨>를 제외하면 <복수는 나의 것>(2002) 이후 박찬욱과 송강호의 사실상 7년 만의 만남이기에 그 기대는 더 크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의 ‘이상한 놈’ 태구로부터 <박쥐>의 ‘이상한 신부’ 상현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변신을 시도한 송강호를 만났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허락하소서. 살이 썩어가는 나환자처럼 모두가 저를 피하게 하시고, 사지가 절단된 환자와 같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하시고, 두뺨을 떼어내어 그 위로 눈물이 흐를 수 없도록 하시고, 어깨와 등뼈가 굽어져 어떤 짐도 질 수 없게 하고서. 머리에 종양이 든 환자처럼 올바른 지력을 갖지 못하게 하시고, 영원히 순결에 바쳐진 부분을 능욕하여 어떤 자부심도 갖지 못하게 하시며, 저를 치욕 속에 있게 하소서. 아무도 저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만이 저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소서.”(상현의 기도)

송강호는 송강호다. 당대 최고의 한국 남자배우, 라는 표현에 달리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그 앞에서 다른 수사는 필요없다. 이제는 그저 그가 어떤 새로운 역할을 맡았는지 그 외양과 스타일만 궁금할 뿐 그가 우리를 실망시킬 것이란 우려는 쓸데없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박쥐>의 ‘뱀파이어가 된 신부’라는 역할은 너무나 호기심이 동한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의 태구를 떠올리자면 그 격차는 너무나 크다. 송강호 스스로도 “전작과 후작의 캐릭터 갭이 이렇게 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한다. <놈놈놈>이 극도로 몸이 힘든 영화였다면 아마 <박쥐>는 가장 마음이 힘들었을 영화다. “영화 자체가 워낙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느낌이라 어떻게 대중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갈 수 있을까, 내가 그것을 어떻게 더 정서적으로 흡입력있게 표현할까를 계속 고민했다”는 게 그의 얘기다.

<박쥐>에서 존경받던 신부 상현(송강호)은 아프리카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백신 개발 실험에 자원했다가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받고 뱀파이어가 된다. 비록 어둠을 가까이 해야 하는 처지지만 상처가 쉽게 아무는 등 남들보다 강한 힘을 지니게 된다. 그 사실을 모르는 신도들은 수백명의 자원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홀로 돌아온 사람이라 하여 심지어 그를 신성시한다. 그러던 그가 매주 수요일에 모이는 마작 모임의 친구인 강우(신하균)의 아내 태주(김옥빈)를 만나 ‘죄라는 실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위험하고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더불어 모두가 영험한 신부라고 우러러 보는 상현이 태주 앞에는 그저 ‘불쌍한 노총각’일 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끝없이 서로를 갈구하고 탐닉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태주가 남편을 살해하자고 제안한다.

“신부님, 아프리카에서 수혈받은 피를 내가 고른 건 아니잖아요. 저 좋은 일하러 거기 갔던 거 아시잖아요. 저는 이제 모든 쾌락을 갈구합니다. 하지만 도대체 살인하지 않고 사람의 피를 어디서 어떻게 구한단 말입니까.”(상현이 노신부에게)

<박쥐>는 송강호가 이미 10년 전 <공동경비구역 JSA> 현장에서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제안받은 영화다. “뱀파이어라고 하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난 전혀 거기에 부합되지 않는다. (웃음) 그래서 오히려 난 이 사람이 정말 기존 뱀파이어 영화들과는 다른, 굉장히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을 정도로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새롭고 도발적이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하지만 제작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일단 박찬욱 감독이 <복수는 나의 것>을 먼저 완성했고 다시 차기작 물망에 오르던 중 또다시 새로운 기획을 제안받아 <올드보이>(2003)에 착수했다. 그래도 <박쥐>는 꼭 만들어질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었다.

“박찬욱 감독에게 <친절한 금자씨>(2005)는 이왕 시작한 복수 시리즈의 매듭을 짓고자 했던 의도가 있었고, 그 다음에는 확실히 <박쥐>에 들어갈 것 같았다. 그래서 스케줄 조정도 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문득 떠오른 영감이 있었는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하게 됐다. 그렇게 <박쥐>는 10년 만에 현실이 됐다. <놈놈놈> 중국 현장에서 팩스로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뱀파이어 신부 이야기를 읽어내려 가면서 거울을 보니 거기 우스꽝스런 태구의 얼굴이 있었다. 참 몰입이 안되더라고. (웃음) 하지만 박찬욱 감독이 10년 동안 작품을 준비했고 단 한번도 나 이외의 다른 배우는 떠올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무조건 내가 마무리지어야 하는 영화인 거다.”

<박쥐>에서 상현은 독실하고 엄격한 신부다. 살면서 한번도 한눈판 적 없고, 또다시 기회가 된다면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 그 실험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 실제 송강호는 종교가 없다. 그는 그것이 캐릭터를 더 깊이 흡수할 수 있게 해줬다고 한다. “종교는 없지만 무신론자라고 딱히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평소 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정신적인 측면에 있어 종교인에 대한 경외감은 있다. 내가 만약 독실한 신자였다면 이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날카롭게 각이 서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종교가 없다는 것이 편안하게 연기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된 것 같다.” 더불어 강한 금욕주의자적인 면모를 보이는 상현을 연기하기 위해 적당하게 감량도 했다. “살을 뺀다고 없던 성적 매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웃음), 사제가 지닌 금욕적인 면을 부각하기 위해 살을 뺀 거지 베드신이나 섹슈얼한 면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실제로 예고편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다소 창백하고 말랐다. 배우 송강호로부터 추출했던 모습들 중 가장 뜻밖의 얼굴이라고나 할까. 마치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난 좋은 일 하러 거기 갔던 거예요. 내가 뱀파이어인 게 뭐가 중요해요. 태주씨, 내가 신부라서 날 좋아했어요? 아니잖아요. 거봐요. 신부라는 건 그냥 직업이잖아요. 그런 거처럼 뱀파이어인 것도 그냥 식성이나 뭐 생활리듬의 문제 같은 거예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때 그런 게 뭐 중요해요?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뱀파이어라서 싫어요, 응? 나랑 같이 가요. 내가 이 지옥에서 데리고 나가줄게요.”(상현이 태주에게)

<박쥐>가 새로울 것이란 기대는 박찬욱 감독에 대한 신뢰 혹은 도발적으로 느껴지는 소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상 핵심은 ‘송강호의 첫 번째 멜로영화’라는 데 있다. 차가운 절제를 보여주던 상현은 태주와 사랑에 빠지면서 한없이 흐트러지고 만다. 그 역시 그 점을 가장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 “<밀양>을 두고 멜로영화라고 말해준 사람도 있었는데 그건 가벼운 멜로 라인만 있었던 정도지 <박쥐>는 사랑에 대해 극단적으로 파고드는 작품이다. 상현이 사랑을 하면서 정말 치졸하게도 변하고, 신과 마주하면서 정말 숭고한 경지까지 나아가는 두 가지 모습이 한데 담겨 있다. 그런 세속적이고 원초적인 감정의 힘 때문에 굉장히 쉽게 이 영화에 빠져들 수 있을 거다. 그래서 <박쥐>를 내 최초 멜로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더불어 그것은 박찬욱 감독이 늘 다뤄왔던 ‘심각한 딜레마에 처한 인물’이라는 테마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작업이다. 타인의 피를 갈구하는 우유부단하고 금욕적인 신부, 그리고 피를 얻기 위해 살인 충동에 시달리는 신부라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송강호라는 배우는 태구처럼 나와야 송강호답다, 그래야 관객이 편안하게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박쥐>는 정말 행복한 작품이었다. 물론 박찬욱 감독 특유의 유머를 읽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배우로서 이처럼 도발적이고 매력적인 작품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늘 새로운 이야기와 캐릭터를 찾는 게 배우가 꿈꾸는 모험이라면 <박쥐>는 기존의 나로부터 가장 멀리 떠난 모험이다.” 이처럼 송강호는 그 누구보다 이 영화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딸(?) 얘기도 잊지 않았다. 바로 <우아한 세계>(2007)에서 자신의 딸로 출연한 김소은이 최근 TV드라마 <꽃보다 남자>로 이른바 엄청나게 ‘떴기’ 때문. “얼마 전에 <박쥐> 시사 언제냐고 문자가 왔다. 이제 대학생이 됐으니 <박쥐>를 볼 수 있는 나이다. 그런데 자리가 모자라서 초청이 될지는 모르겠네. (특유의 웃음) 농담이고, 정말 또래 배우들에 비해 연기에 애착이 많은 친구였다. 잘되리라 믿었다.” 그렇게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 역시 그대로였다. 그래서 또 송강호는 송강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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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메이크업 김효진·의상 권은정·협찬 (의상)란스미어, 닥스, 지이크, 벨그라비아, (소품)빨질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