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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만] 난 지금도 배우다, 희극배우
이화정 사진 오계옥 2011-01-14

영화 <평양성> <서유기 리턴즈> 출연한 개그맨 김병만

말이 좋아 ‘정통 코미디’다. 빠른 말이 더딘 몸을 앞서고, 그 말이 예능의 대세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무기가 된 세상. 무슨 작정인지, 김병만은 근 십년을 한결같이 몸을 연마하는 ‘역행’의 개그를 선보인다. 제 몸을 마구 던지고, 꺾는 데서 모자라, 몹쓸 걸 먹어가며 하는 혹독한 개그. 편히 웃어버리기엔 그가 치러냈을 훈련의 과정이 짐짓 떠올라 차라리 연민이 앞서는 개그. 독한 수련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이 아이러니한 몸의 연기는 십년이 지난 지금, 대충 눈짐작으로 배워 섣불리 따라할 수 없는 김병만식 전매특허가 됐다. 몸의 액션을 큰 웃음으로 치환하는 ‘개그계의 성룡’ 김병만. 마침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 출연을 비롯해 주연을 한 <서유기 리턴즈>까지 잇단 영화 출연이, 연기자로 그를 만나기에 좋은 구실을 만들어줬다. 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달인’ 코너의 공개방송을 앞둔 KBS 신관 연기자 대기실. 의상을 갈아입는 류담과 수제자인 노우진이 오늘 쓸 소품인 신문지를 자르느라 여념이 없는 북새통에서 그를 만났다. 희극배우로 자신이 견지해온 길을 피력하는 그의 말은 빠르고 확신에 차 있었다.

-‘씨네인터뷰’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영화는 <조폭마누라3> <김관장 VS 김관장 VS 김관장> <라듸오 데이즈> 등 많이 출연했지만 거의 단역이었다. 아이템의 시작이자 주연배우로 출연한 건 처음이다. =상업영화를 해서 성공을 해보자는 욕심은 전혀 없었다. 내 개그 스타일이 스토리와 연결됐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지 보고 싶더라. 개그맨스럽지 않게 하자, 내가 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활용해보자 싶었다. 다른 작품에 출연하더라도 경험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고 싶었다.

-‘달인’이 아닌 ‘손오공’이라 더 의외다. 직접 아이템을 구상해서 영화화까지 했는데, <서유기>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캐릭터의 인기를 등에 업고 만드는 그런 영화는 반대였다. 보통 ‘갈갈이 삼총사’가 인기있으면 그 캐릭터를 그대로 해 영화화하지 않나. 난 달인이란 캐릭터를 벗고 최대한 ‘김병만’이 돼서 하자, 개그맨의 유행어는 넣지 말자 싶었다. <서유기>는 <날아라 슈퍼보드> 같은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주성치의 <서유기>까지 다양하게 나왔지만, 각각 다르고 다 재밌다. 누가 만드냐에 따라 이야기 자체가 무궁무진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 재밌는 이야기를 개그맨이 뭉쳐서 해보자, 한 거다. 류담이 저팔계, 한민관이 사오정, 내가 손오공. 핵심인물은 딱 셋이다. 잘되면 시리즈도 생각해볼 수 있겠더라.

-액션개그가 역시 중요한 포인트가 될 텐데. 어떤 연기를 보여주는 건가.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하고 갔다. 요즘은 웬만하면 CG의 도움을 빌리는데 난 어설프더라도 끊어가지 말고, 직접 해보자고 주장했다. 손오공이 나무타고 올라가는 장면도 와이어 없이 그냥 맨몸으로, 내려올 때도 대역 없이 두발로 쭉 미끄러져 내려오는 거다. 그런데 겨울 촬영이라 뜻대로 안된 장면이 많다. 춥고 미끄러우니 액션 합을 맞추기 쉽지 않더라. 더군다나 마지막 액션장면을 찍을 때는 무릎 관절을 다쳐 대역을 써야 했다. 그런 것들이 다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런 아쉬움이 결국 다음 작품에 대한 엄청난 동기부여를 해주지 않을까. =안 그래도 이번 작품 하면서 못했던 것들을 보완해 단편영화를 찍어보고 싶다. 집배원이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할까 하는데 마음먹은 지 두달 정도 됐고, 벌써 작가까지 섭외한 상태다. 내가 영화 만드는 전반적인 부분을 다 해낼 수는 없지만, 내 코미디를 하면서 구상한 그림들을,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한다면 얘기가 될 것 같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작품이 아니라, 일종의 ‘김병만식 슬랩스틱’을 확장한 코너를 만드는 것과 같은 작업이다.

-김병만의 몸개그는 훈련되고 계산되고 숙달되지 않고선 결코 소화할 수 없는 유기체다(심지어 최근엔 줄까지 탔다!). 단순히 몸을 쓰는 예전 방식의 몸개그와는 다른 차원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김병만식 슬랩스틱’은 무엇인가. =위험한 코미디를 하고 싶었다. 예전엔 그런 걸 하면 너무 위험하다고 방송에서 편집된 적도 있었다. 주로 버스터 키튼의 작품에 크게 영향을 받았는데, 그가 하는 애크러배틱 연기는 실로 놀랍다.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가 율동적이라면, 버스터 키튼은 더 익스트림하고 액션 성격이 강하다. 단순하게 몸을 사용한다기보다 치밀한 계산하에 나오는 과학적인 슬랩스틱인 거다. <코미디쇼 희희낙락>의 ‘김병만이 살아 있다’의 연기가 버스터 키튼에게서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경우다. 최대한 대사는 쓰지 않고 몸을 활용하는 거다. 여행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다 넘어지면 가방이 너무 커서 가방 위에 올라타고 미끄러진다거나, 매트리스를 들고 가다 놓쳤는데 매트리스에 말려서 바닥까지 내려온다거나 하는 식이다. 보통 이런 몸개그를 보면 사람들은 웃기보다, ‘아이고, 안 다칠까?’ 걱정을 한다. 그런 액션을 슬픈 스토리에 넣으면 그냥 웃음이 아닌, 감동적이면서 웃긴 장면이 나올 수 있는 거다.

-그게 김병만 몸개그의 숨은 비기였나. =사람들이 김병만은 몸으로만 한다고 말하지만, 몸으로만 했다면 여기까지 못 왔다. 난 항상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달인이 수제자를 보고 시선 연기를 안 했더라면 지금만큼 관심을 받았을까. 남들이 말로 설명하는 개그를 한다면, 난 굳이 말을 하지 않고도 의도를 전달하는 거다. ‘16년간 여자를 모르고 살아온 달인’이라는 설정을 보자. “내 인생에서 여자는 없어요. 책을 썼다면 <로미오와 로미오>…”, 이런 대사를 하면서도 스튜디오에 나온 여자에게 서 시선을 못 떼는 거다. 여자의 행동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손가락까지 관찰하다가 여자가 사라지면, 그 사라진 곳으로 시선을 주는 거다. 그 부분에서 웃음이 터지는 거다. 설명하고 보여주는 즉각적인 웃음이 아닌, 은근한 웃음. 그 차이를 전달하고 싶었다. 이게 참 자극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고 어찌 보면 밋밋하기 짝이 없는 개그다. 지금이야 반응이 좋지만, 신인 때는 자기를 알릴 연기가 필요했고 그게 잘 안 보일 수밖에 없었다.

-버라이어티가 대세고, 개그 역시 주로 말개그가 트렌드다. 결국 말보다 느린 몸의 개그는 정통 개그, 옛것으로 치부되고 그걸 하는 개그맨도 많지 않다. 트렌드에 역행하며 그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달인 이전의 ‘따귀맨’같이 시도가 불발된 경우도 있었고, 동기, 후배들이 인정받을 당시, 무명의 시기도 꽤 길었다. =개그맨 시작한 지 1년 남짓 됐을 때 한 선배가 그러더라. “넌 언제까지 무술할 거냐. 말을 해야 자리를 잡지.” 그래서 내가 “60살까지 할 겁니다” 했다. 60살 돼서, 하얗게 수염 난 개그맨이 몸개그하면 얼마나 재밌겠나. 그러니 하면 할수록 내가 하는 연기에 대한 만족감이 커진다. 무대 위에서 그렇게 해야 땀흘린 것 같고, 김병만 코미디를 한 것 같다. 나도 처음엔 후배나 선배들이 굉장히 부러웠다. 정형돈이나 이정수가 동기인데 그들이 잘나가니 부럽더라. 그런데 몇년이 지나니 나는 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오래 하자, 길게 하자. 정상에 도달했을 때 내려오지 않는 사람이 되자며 스스로 위안했다.

-이른바 말하는 ‘개그계의 1인자=버라이어티’와 달리, 연기쪽으로 뜻을 굳혔다. 흔치 않은 경우다. =지금은 버라이어티가 예능의 가장 큰 부분이 되다 보니, 사람들이 개그맨은 거의 버라이어티를 목표로 한다고 인식한다. 그런데 버라이어티를 꿈꾸는 개그맨만큼,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개그맨도 많다. 50 대 50 정도. 실제로 최근 분위기가 점점 더 그렇기도 하다. 난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구봉서 선배님 같은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코믹 무대에서만 희극 연기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작품에서 희극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말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작은 역할이 들어와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배역을 받고 그 배역에 대해서 고민하는 게 너무 재밌다. 버라이어티 쇼에 나가서 모니터할 때보다 그런 고민을 하는 시간들의 설렘이 더 크다. 개그가 짐 보따리를 풀어내는 거라면 연기는 하면서 모아가는 느낌이다.

-우려하다시피, 개그맨이 연기를 할 경우에 같은 이미지의 반복으로 소모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일 텐데. =영화쪽을 가면 네가 얼마만큼 크게 되겠냐, 개그맨이니 결국 역할에 한계가 있지 않겠냐, 라는 충고도 많이 들었다. 이슈가 되니 카메오 출연은 몇번 하겠지만 더이상은 힘들지 않겠냐는 것이다. 근데 난 연기 제안이 들어오면 내용이나 역할을 떠나서 열심히 배우자 하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기회가 왔고 그게 숙제가 된 거다. 최근 <아테나: 전쟁의 여신>에서 ‘사격의 달인’을 할 때는 원래 있는 대사를 하는 대신, 상황적인 코미디를 많이 넣었다. 정우성한테 인형 다 뺏기고 비비탄으로 자살하려는 장면을 했더니 다들 좋아하더라. 그렇게 내가 만든 개그에 반응이 좋으면 만족감이 생긴다. 단순히 기계적인 연기에 그치지 않고 자꾸 시도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는 거다.

-그러고 보면 개그맨이 되기 이전, 원래 출발은 연극이었다. =연극을 한 건 끼가 너무 부족해서였다. 개그맨을 하더라도 기본은 연극이겠구나 싶은 마음에 극단에 들어가서 4년 동안 연극을 한 거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도 늦게 들어갔고, 시험 운도 없어서 자꾸 떨어졌다. 대신 연기는 대학로에서 연극하는 선배를 따라다니면서 배웠다. 잘 보이려고 선배가 아플 때 죽 끓여주고, 또 술 사가지고 집에도 가고 했다. 그러면 밤새 술 마시면서 연기의 기본이 뭐다, 뭘 준비해라 이런 걸 알려준다. 취해서도 그걸 다 적어놓는다. 다음날 보면 꼬부랑 글씨로 그런 가르침이 적혀 있는 거다. 그때 선배가 준 숙제가 별의별 게 다 있었다. 연기 배우고 싶으면 대학로 극단과 그 극단 대표 다 외우라고 해서 외우고, 지하철에 가서 사람들 분석하라고 해서 노트에 지나가는 사람들 특징 다 적고 했다. 감각훈련한다고 방에 불 다 끄고 물건 찾기, 이런 것도 했다. 이것저것 연기에 도움된다는 건 혼자 다 해봤다.

-끼가 부족하다는 말엔 보충설명이 필요하다. 매주 그 많은 관객 앞에서 연기를 하는 달인 아닌가. =물론 친한 친구들 앞에서는 재밌다, 개그맨 뺨친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으면 쑥스럼을 너무 탄다. 관객 앞에서 손 흔들고 그런 것도 못한다. 한번은 야구 개막전 시리즈에서 박태환 선수와 한민관이 성화 봉송을 하는데, 다들 손을 흔드는데 나만 가만히 서 있더라. 안되는 거다. 울렁증 때문에 오디션도 못 본다. 개그맨도 8번 도전 끝에 기적적으로 됐다. 기본적으로 사람 많은 데를 싫어한다. 쇼핑도, 클럽도 안 간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작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인 것 같다. 사람 많으면 시야 확보가 안되니까. 내가 만약 키가 컸더라면 지금과는 또 다른 성격의 사람이 됐을 것 같다.

-대체 그런 소심한 성격을 어떻게 극복한 건가. =대신 주위에서 인정하건 안 하건 포기하지 않는 편이다. 두고 봐,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해보자 하는 걸 에너지원으로 삼는 거다. 남들이 생각하면 좀 이상한 버릇이 있는데 술 먹고 혼자 들어가서 거울 보면서 이야기를 한다. 내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 거다. “넌 왜 이렇게 끼가 없냐, 멍청하냐, 이것밖에 못하냐.” 이런 걸 거울 속의 나와 막 이야기하는 거다. 내 나름의 안간힘인 거다.

-지금은 어떤가. ‘봉숭아 학당’을 제외하곤, 달인은 <개콘>의 최장수 프로그램이다. 이젠 개그맨 후배들에게도 롤모델이 됐다. =<개콘>만 쉬지 않고 십년을 했다. 공개 코미디가 폐지된 거지, 코미디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개콘>이 장수하는 건 김준호 선배 같은 원년 멤버가 여전히 활동하고, 그 존재감이 후배에게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후배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줄 선배가 되려 한다. 난 지금도 배우다. 희극배우. 개그맨 중 자기 이름을 가지고 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심형래 개그’ 하면 누구나 전형적인 그 연기를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나도 김병만식 개그로 오래 남고 싶다. 내 꿈이 너무 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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