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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모두 건강합시다

씨네21 11주년 창간기념호

<씨네21>이 창간 때마다 실시하는 충무로 파워 50 설문조사 결과, 올해 1위는 싸이더스FNH의 차승재 대표가 선정됐다. 8년간 1위였던 강우석 감독이 2위로 물러난 것이 지난해의 화제였다면 올해는 차승재 대표가 1위라는 사실 자체가 이목을 끈다. 지금 영화계의 가장 큰 돈줄인 CJ와 쇼박스를 대신해 차승재, 강우석 두 사람이 1, 2위를 차지한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부정적으로 보면 대기업에 대한 견제심리이겠으나 긍정적 의미를 부각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영화계가 자본의 힘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대등한 관계를 맺고 있는 증거로 말이다. 부동의 1위를 고수하던 무렵 강우석 감독은 파워 1위로 선정됐다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내가 하든 누가 하든 영화인이 1위를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투자자와 영화인을 적대적으로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그의 말에 공감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나는 영화인, 이라는 자존심이 아니었다면 한국영화는 지금보다 훨씬 보잘것없는 존재가 됐을 것 같기 때문이다. 차승재 대표도 “산업에 있어 자본의 힘이 가장 좋은 법 아닌가. 영화산업 안에서 프로듀서 위치가 그만큼 올라갔고, 다른 분들이 그걸 중요하게 인식해준 건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부담이다”이라고 1위 선정의 소감을 밝혔다. 개인의 영예에 앞서 창작의 힘을 돈의 힘보다 높게 평가한 점에 주목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사실 11주년을 맞으면서 파워 50 설문조사를 그만둘까, 고민하기도 했다.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그렇겠지만 사람에게 등수를 매기는 일이 유쾌하지만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영화계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파워 50만큼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기회는 없다. 더구나 지난 10년의 결과가 차곡차곡 쌓여 이미 한국영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로 기능하는 상황이 아닌가. 아마 이런 조사 방식은 영화의 편당 수익률이나 투자 금액의 규모처럼 딱 떨어지는 숫자가 아니라 덜 객관적이라는 느낌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에서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한 수치로 계산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대규모 흥행작이 나올 때마다, OO경제연구소가 이 영화의 경제효과는 얼마라고 발표하는 것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영화계가 증권가의 경제용어에 길들어가는 요즘엔 더욱더 파워 50 같은 설문조사가 의미있어 보인다.

전반적으로 창작에 직접 관여하는 영화인들이 더 많이 순위 안에 포함된 올해 파워 50 설문 결과는 영화계가 아직 건강하다는 느낌을 준다. 여기엔 <왕의 남자>의 흥행이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은 게 크게 한몫했으리라. 최근 시사회를 연 <사생결단>도 창작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대적 미개척 분야에서 장르적 세공술을 발휘하는 <사생결단>은 성실한 대중영화라는 지향점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런가 하면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을 영화사 봄이 제작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영화계가 아무리 자본에 휘둘려도 홍상수를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갖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

창간 11주년을 맞아 지금 영화계는 그래도 건강하다고 안도할 수 있어 다행이다. <씨네21>도 독자 여러분께 건강하다는 말을 들을까. 그럴 거라 믿으며 11살 생일을 자축한다. <아무도 모른다> DVD는 우리가 내는 생일 턱이다.

P.S. 새로운 디자인팀이 이번주부터 일을 시작했다. 아트디렉터 권정임씨와 김유미, 모보형, 김민주, 이은정 등 5명의 새 식구를 맞았다. 자료담당자로는 안현진씨를 채용했고 새로 창간할 TV 전문 웹진 <매거진 T>에는 석현혜, 이대제 2명의 기자가 들어왔다. 새로운 인물들과 더불어 변화 발전하는 <씨네21>을 기대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