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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독자편집위원회

그런데 우리 독자들이 이런 걸 좋아할까? 잡지를 만들다보면 늘 부딪히는 질문이다. 독자 여러분에게 설문을 돌려 기사를 작성한다고 해도 이런 고민에서 벗어날 것 같진 않다. 사람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게 마련이고 많은 독자가 원한다고 무조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기사가 될 거란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 독자편집위원회를 만들면서 그래도 이런 시스템을 갖추면 사후적인 모니터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면 쓴소리를 많이 할 것 같은 사람들로 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예상했던 이상으로 냉정한 비판을 많이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매주 나오는 위원회의 보고서를 볼 때마다 꼭 이런 걸 해서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필요가 있냐는 말까지 나왔다. 그래도 내가 한 일을 꼼꼼히 지켜보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1기와 2기 사이에 공백이 있던 몇주간 쓸쓸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걸 보면 솔직하게 말을 건네는 누군가는 확실히 필요한 것 같다. 대단한 혜택도 없는데 열정적으로 1기 위원회에 참가했던 여러분께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2기 위원회가 이번주 모니터 모임을 처음 시작했다. 칭찬과 격려만큼 이번에도 따끔한 지적이 있었다. 끼어들기 미안할 만큼 열띤 토론 속에서 <디 워>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것 아닌가, <행복>에 비해 <사랑>을 홀대하지 않았나, <원스>에 대해 너무 많이 다룬 것 아니냐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한마디로 <씨네21>을 편집하는 원칙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짧게나마 토론 도중 설명하긴 했으나 다른 독자들 역시 궁금할 것 같다. 가장 간단한 답은 <씨네21>이 우리 필진의 감식안과 취향에 기반한 잡지라는 것이다. 우리가 좋게 본 영화가 자주 언급되고 지금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사가 실리다보면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영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말은 거꾸로 개봉하는 모든 영화를 같은 분량으로 다루는 편집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불공평하다고 생각될지 모르겠으나 영화가 스스로 글쓰기의 유혹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때 흥미로운 글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리는 공평하지만 재미없는 잡지가 되느니 불공평하지만 재미있는 잡지가 되는 편을 택했다. 물론 원칙만 고수하다 대중한테 외면받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도 많다. 게을러서 혹은 동시대의 감각을 읽지 못해서 잘못 판단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독자편집위원의 존재는 이럴 때 긴요할 것이다. 우리가 잘한 것을 칭찬하는 만큼 오판하거나 누락한 것에 대해 지적하고 다그쳐달라. 독자들의 반응은 우리의 채찍이자 당근이다.

잡지를 만드는 것도 영화 만드는 감독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 대중이 재미있어할까 궁금하겠지만 우선은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고, 편집진이 보고 싶은 잡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독자들의 쓴소리를 접할 때마다 평론가들의 혹평을 듣는 감독의 입장이 떠오른다. 상처가 되지만 그게 약이 되기도 할 것이라 믿는다. <씨네21>에 별 셋 이상 안 준 독자한테 화가 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