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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유족을 찾습니다
주성철 2015-08-28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암살>은 1200만 관객을 돌파할 기세이고 <베테랑>은 대망의 천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불과 2주차의 시간을 두고 개봉한 두 한국영화가 나란히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것이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범죄의 재구성>(2004)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라는 데뷔작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는, 장르적 취향과 비전이 뚜렷한 두 감독의 영화라는 점에서 기분 좋은 일이다. 더구나 여러 인터뷰를 통해 거론된 것처럼, 시대적 배경을 달리하면서도 결국 ‘정의란 무엇인가’ 질문하는 영화들이라는 점에서 현재 천만 관객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게 된다. 무엇이 대중으로 하여금 뒤늦게 정의를 갈구하게 만들었을까.

<암살>과 <베테랑>의 흥행을 축하하며 이번 1020호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다른 여러 기사들도 꼼꼼한 일독을 부탁드린다. 먼저 위의 두 영화를 포함해, 공교롭게도 올해 한국영화에 유난히 여성주인공들이 많았다는 점에 착안한 황진미, 박인호 두 평론가의 글이 비슷한 시점에 도착했다. 황진미는 강력한 살부(殺父) 모티브를 지닌 여성 영웅담 <암살>과 <협녀, 칼의 기억>이 당대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에, 박인호는 <마돈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위로공단>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여성 노동자의 삶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아버지를 죽이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을 맞을 수 없다”는 황진미의 글이 묘한 울림을 갖는다.

산업으로 들어오자면, 서로 다른 두개의 대화가 당대의 한국영화와 그를 둘러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먼저 멀티플렉스가 만들어낸 천만의 신화 혹은 신기루 뒤에서 ‘독립영화계의 어벤져스’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 인디플러그 김정석 대표, 강릉 신영극장 박광수 프로그래머, 김선 감독은(물론 함께하지 못한 서울독립영화제 조영각 집행위원장을 더해야겠지요)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사업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며 “독립영화계에 진짜 위기가 닥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두편의 천만 영화 뒤에서 1만 관객의 소중함을 떠올리고, 지원금 4천만원에 대한 긴 대화에 만감이 교차하게 될 것이다. 그 반대편에서 올레국제스마트폰영화제의 배두나 심사위원장 외 윤종석, 임필성, 진원석 심사위원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일견 달라 보이는 대담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으나 결국 창의성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는 측면에서, 두 대담에 귀기울여주길 희망한다.

특집은 바로 부산국제영화제 20주년 기념 ‘아시아영화 100선’에 대한 이야기다.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부터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페이무의 <작은 마을의 봄>까지, 일찌감치 부산행을 결정지은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리스트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은, 한국영화의 최초 황금기라 할 수 있는 1960년대에 활약한 박상호, 조긍하, 이봉래, 이형표, 이상언, 이용민, 이성구, 최하원 감독의 숨은 걸작 8편을 묶은 회고전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감독들이 세상을 떴고 유족들이 상영 후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그중에서도 <명동에 밤이 오면>의 이형표 감독, <살인마>의 이용민 감독, <장군의 수염>의 이성구 감독은 아직 유족과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한다. 혹시 유족이나 그 소재를 알 만한 분들은 부산국제영화제와 <씨네21>로 제보를 부탁드린다. 그 어떤 이야기도 한국영화사의 숨은 자리를 소중하게 채울 것이다. 부산에서 쓸쓸하게 상영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