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 유아인 다시 보기
주성철 2015-09-11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에서 우연히 케이크숍의 주방보조 겸 견습생 기범(유아인)을 맞닥뜨린 복싱 선수(조희봉)는 순간 얼어버린다. 과거 최연소 동양웰터급 챔피언이기도 했던 기범을 링 위에서 만난 적 있는 그의 회고에 따르면, 기범은 수많은 여성 팬을 몰고 다니던 ‘링의 아이돌’이면서도 상대 선수에게는 더없이 가혹했던 ‘냉혈 꽃사슴’이었다. 당시 영화에서 유아인을 묘사했던 냉혈 꽃사슴이라는 별명다운 느낌을, 세월이 흐르고 흘러 <베테랑>에 와서야 확인한 것 같다. 그런데 <사도>에서는 또 다른 얼굴이다.

그처럼 요즘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고 있다. <씨네21>과의 인터뷰(지난 1021호 <사도> 커버스토리)에서도 그 스스로 얘기하듯 ‘소년성’이라는 특질을 온전히 간직한 채로 여러 캐릭터들을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디카프리오’라는 표현도 어색하지 않은 것 같고, 개인적으로는 유약하고 섬세한 표정 뒤로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지녔던 홍콩 배우 장국영의 모습을 발견하게도 된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남자배우들은 하나같이 영화에서 ‘마초’가 되려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데(아마도 그래야 더 연기를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딱히 그런 게 없다. 게다가 흥미로운 공통점은 <아비정전>(1990)의 아비(장국영)와 <완득이>(2011)의 도완득(유아인) 모두 필리핀 어머니를 둔 혼혈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우월한 미모는 그렇게 설명된다. 그러고 보니 <공동경비구역 JSA>(2000)의 소피(이영애)도 혼혈이었다.

더구나 지난 10년간 젊은 배우들의 경우, 기획사 관리 체제의 캐스팅 시스템 아래서 성장해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유아인의 경우 거의 모든 출연작에서 마치 이름만 다른 한 인물로 느껴지는 디테일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흥미롭다. 필모그래피의 그런 자연스런 흐름은 배우 개인에게도 무척 행복한 일일 것이다. 어머니의 부재를 결핍으로 지닌 인물일 때가 많았고(<완득이>에서는 뒤늦게 만났고 <깡철이>에서는 있으나 마나 했다) 주로 가난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6)의 종대(유아인)와 TV드라마 <밀회>(2014)의 선재(유아인) 모두 어렸을 적 어머니가 문을 잠그고 바깥일을 나가 외롭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재는 혼자 피아노를 배웠다. 반면 싸움은 잘해서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와 <완득이>에서는 복싱을 배웠고 <베테랑>에서는 킥복싱을 했다. TV드라마 <최강칠우>(2008)에서도 노비의 아들이자 절대고수였고 <성균관 스캔들>(2010)에서는 통제 불능의 불량아(하지만 여자와 함께 있으면 딸꾹질을 멈추지 못하던)였다. 그래서 <우아한 거짓말>(2014)에서 쥐도 못 잡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으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빵’ 터졌다.

유아인과 왕이라는 자리도 은근히 여러 번 중첩돼왔다. <좋지 아니한가>(2007)에서 자신이 친자식이 아니라는 생각에 하늘을 바라보며 자살을 꿈꾸던 소년 용태(유아인)는, 심령술사를 통해 과거 자신이 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다 TV드라마 <장옥정>(2013)에서는 이른바 ‘섹시 숙종’이라 불렸다. 그런 그가 사도세자가 되어 돌아왔다. 아들이 있음에도 ‘소년’의 얼굴이다. 그 느낌이 묘하다. 그 유아인의 소년성에 대해 얘기할 때 모두가 기억하는 장면, 데뷔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그가 마지막에 꼬마로부터 받아든 질문 “훌륭한 소년이 될 거예요?”로부터 10년을 충실히 채워왔다. 진정 그의 다음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