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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시 차간티 감독의 정공법 '런'의 중요한 세번의 클로즈업 사용
오진우(평론가) 2020-12-15

기본으로 돌아가다

<> 스페셜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이동진 평론가는 아니시 차간티 감독이 전작인 <서치>, 그리고 앨프리드 히치콕과 싸운 것 같다고 평했다. <>이 구축하는 서스펜스를 고려해보면 스릴러 장르의 권위자인 히치콕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여기서 시간을 좀더 앞당겨서 하나의 영화를 추가하여 말하고 싶다. 그 영화는 90년대 클래식인 <미져리>(1990)다. <미져리>는 이미 <> 안에 작게나마 이스터 에그로 각인되어 있다. 감독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치>보다 <미져리>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은 <미져리>의 21세기 리메이크작이라고 거칠게 말해도 무리가 없다. 왜 감독은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썼을까? 그 이유를 히치콕에게서 찾아보고자 한다. 다큐멘터리영화 <히치콕 트뤼포>를 보면 히치콕은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관객의 기대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히치콕의 전성기인 50~60년대의 관객성과 현재의 관객성 사이엔 큰 간극이 존재한다. 그사이 우리는 수많은 영상과 이미지들에 노출되었으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들에 익숙해졌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영화관보다 방 안에서 OTT로, 2시간 정도의 러닝타임은 점차 짧아지면서 우리의 지각은 영화관에서 멀어져만 가고 있다. 영화는 대체 누구를 위한 아트 폼인지 다시 묻게 되는 요즘이다. 현재의 관객성에서 <>은 너무 쉽게 읽히는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릅쓰고 보여주고자 한 것은 영화적 기본이다. 이 글은 그중에서도 이미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구속하는 클로즈업과 프레임 밖으로 나가려는 모험

아니시 차간티 감독의 전작인 <서치>의 미덕은 익숙해져버린 각종 디지털 기기들의 화면을 영화 스크린에 옮겨놓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관객은 이 화면들을 좀더 낯설게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연출법은 <>에서도 이어진다. 영화에서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이게 하는 방법은 숏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이다. 히치콕 역시 이를 지적한다. 그는 이미지의 크기가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에서 인상적인 이미지는 주로 클로즈업 숏으로 영화의 변곡점마다 등장한다.

영화에서 클로즈업 숏은 주로 인물의 얼굴에 치중된다. 하지만 <>은 사물에도 클로즈업한다. 영화 초반부에 클로이(키에라 앨런)의 루틴을 클로즈업 숏으로 담아내고 몽타주한다. 수많은 알약, 피부 발진 크림, 채혈, 인슐린 주사 등은 아픈 클로이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클로즈업된 이미지들은 자연스레 클로이의 신체와 연결된다. 어느 날, 클로이가 엄마 다이앤(사라 폴슨)의 장바구니에서 초콜릿을 찾다가 자신의 약통을 발견한다. 하지만 약통 겉면에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엄마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 순간 이 영화의 첫 번째 변곡점이다. 클로이는 자신의 루틴과 엄마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후 등장하는 클로즈업된 알약(들)은 구속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일상이었던 것들이 사실은 자신의 신체를 구속시키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구속의 의미가 짙어지기 위해선 반대급부인 탈출이 영화 속에서 피어나야 한다. 클로이는 집을 떠나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영화에서 클로이는 집 밖으로 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럴 때마다 다이앤이 이를 막으려 한다. 클로이는 대학 합격 통지서만 하루 종일 기다린다. 그녀는 집배원 차량이 오는 시간에 맞춰 황급히 현관문으로 향해 휠체어를 몬다. 하지만 문밖엔 항상 엄마가 있다. 영화는 탈출하려는 딸과 이를 막으려는 엄마의 충돌을 그리고 있다. 이를 클로즈업을 통해 사유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클로즈업은 대상의 특정한 부분을 확대한 것이다. 다른 의미로 생각해보면 특정한 부분을 사각 프레임 안에 가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에서 엄마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가두려 한다. 그 대상은 자신의 딸이다. 딸은 계속 프레임 밖으로 나가려 한다.

두 번째 변곡점은 약국에서 나타난다. 클로이는 초록색 알약의 정체를 알기 위해 엄마의 프레임 밖으로,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그녀는 꾀를 내어 엄마에게 영화관에 가자고 제안한다. 영화관에서 클로이는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엄마 몰래 약국으로 향한다. 클로이가 약사에게 약의 정체를 듣는 순간 엄마가 약국에 등장한다. 이때 카메라는 클로이와 다이앤의 얼굴을 클로즈업 숏으로 번갈아 담아낸다. 외화면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다음 장면으로 딸의 허벅지에 마취 주사를 놓는 다이앤의 클로즈업된 손이 등장한다. <>에서 클로즈업은 구속을 의미한다고 앞서 이야기했다. 달리 말하면 클로즈업은 무언가를 가둠으로써 관객에게 정보를 차단시키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이를 통해 서스펜스를 구축한다.

약국 시퀀스에서 선보이는 서스펜스는 엄밀한 의미에서 서스펜스가 아니다. 서스펜스란 관객에게 미리 정보를 주고 그 결과를 유예함으로써 발생하는 불안감과 긴박감을 말한다. 시간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서스펜스는 <>에서 클로즈업을 통해 공간적으로 구축된다. 즉, 영화는 내화면인 클로즈업과 그 밖인 외화면을 적절히 몽타주하여 정보를 제한한다.

마지막 세 번째 변곡점은 병원에서 일어난다. 여기서 가장 극단의 클로즈업이 등장한다. 다이앤은 약국 소동 이후 클로이를 집 안에 가둔다. 하지만 클로이는 이에 굴하지 않고 집 밖으로 도망친다. 하지만 결국 잡히고 엄마의 비밀 공간인 지하실에 갇히게 된다. 클로이는 그 안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다. 엄마와 실랑이하는 과정에서 클로이는 어떤 약물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클로이. 그녀가 깨어난 곳은 병원이다. 카메라는 클로이의 눈을 익스트림 클로즈업 숏으로 담아낸다. 그녀는 눈을 굴리며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왼쪽 손가락은 반응하지 않는다. 오른쪽 손가락은 미세하게 반응할 뿐이다. 다음 장면으로 그녀가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을 부감 숏으로 담아낸다. 다이앤의 프레임을 떠나기 위해 극단적인 시도를 펼쳤지만 가장 극단의 클로즈업 숏 안에 클로이는 갇히게 된 셈이다. 이 클로즈업 숏은 앞에서 말했던 클로이의 신체와 연결되며 파편화되어 움직일 수 없는 몸의 상태를 보여준다. 이후에 파편화된 신체가 다시 하나로 연결되고 클로이는 자립할 수 있는 몸으로 회복한다. 그러한 상태에서 클로이는 다이앤과 맞서게 된다.

순간의 아이디어를 넘어서

지금까지 무언가를 가둔다는 의미에서 <>에 나오는 클로즈업 숏을 읽어냈다. 이미지들의 배열이라 할 수 있는 플롯의 측면에선 어떨까? 영화는 다이앤의 이야기로 시작하며 클로이가 지하실에 갇혔을 때 나머지 이야기가 등장한다. 플롯의 측면에서도 클로이는 다이앤의 서사 안에 갇힌 형상이다. 다이앤은 망상에 가까운 자신의 서사를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온 셈이다. 하지만 클로이의 탈출로 인해 다이앤의 서사엔 구멍이 나고 봉합할 수 없게 된다.

이 글에서 줌아웃해서 다시 영화를 바라보면 <>은 이미지 이외에도 스릴러 장르의 기본을 충실히 따르는 작품임엔 분명하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쉽게 읽히는 클리셰라 할 수 있겠지만 감독은 피하지 않고 정공법을 펼친 셈이다. <서치>가 순간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였다면 <>은 다시 처음으로, 기본으로 돌아간 셈이다. 어디로? 영화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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