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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 강동원 "다정한 이상주의자"
조현나 사진 백종헌 2022-06-08

다정하게 아기를 안아 드는 동수에게 묻고 싶었다. 브로커를 자처하고, ‘고객’을 만나기 위해 전국을 여행하면서까지 아기에게 가족을 찾아주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배우 강동원은 “보육원 출신으로서 많은 일을 겪은 동수에겐 당연한 선택”이었을 거라며 담담히 그의 속내를 헤아린다. 베이비박스 운영 단체에서 일하는 동수는 파트너 상현(송강호)과 함께 소영(이지은)의 아기에게 양부모를 찾아주기 위해 길을 나선다. “날카롭지만 쓸쓸해 보이는 눈부터 슬픔이 서린 듯한 등까지 모든 것이 동수 그 자체”(고레에다 히로카즈)였던 강동원은 오랜만에 장르물의 영역을 벗어나 천천히 호흡을 이어간다. 일면 무심한 듯해도, 상현과 소영의 감정을 다독이는 그의 말엔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하는 힘이 분명하게 깃들어 있다. 전작 <반도>에 이어 <브로커>가 다시 한번 칸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지난 5월 강동원은 칸의 레드 카펫을 밟았다. “칸에서 <브로커> 완성본을 처음으로 감상하게 됐다”는 그의 웃음에 작품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짙게 담겼다.

- <브로커>에 관한 이야기가 오간 건 6~7년 전이라고 들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강동원 배우와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고 밝힌 게 계기가 됐다고.

= 한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기에 그럼 한번 만나자고 일본으로 갔다. 내 출연작 중에서 <의형제>를 재밌게 보셨다더라. 자연스럽게 어떤 작품을 같이하면 좋을지 이야기가 오갔고 그때 말씀해주신 작품이 <브로커>였다. 당시 워킹 타이틀은 ‘베이비박스 브로커’였고. 나중에 시놉시스를 보내주셨는데 A4 2장이 채 안되는 짧은 분량이라 놀랐던 기억이 난다. (웃음) 그 뒤로 감독님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셨고, 우리도 잘 준비해서 좋은 영화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프리프로덕션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지지난해, 촬영은 지난해에 마쳤으니 시놉시스 단계부터 완성까지 총 7년이 걸린 셈이다.

- 시나리오 개발 과정에서도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다던데.

= 프로듀싱에 참여했기 때문에 초고부터 완성본이 나올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나중에 감독님이 알아서 하실 부분이긴 해도 느낀 대로 의견을 전했다. 감독님이 글을 정말 빨리 쓰신다. 엄청 디테일하시고.

- 고레에다 감독에겐 어떤 인상을 갖고 있었나.

= 감독님의 작품을 계속 재밌게 봐온 관객이었다. 개인적으론 <어느 가족>을 좋아한다. 장르적인 색채가 있어서 취향에 잘 맞는다. 감독님을 한국에 모시고 와서 찍은 것도 무척 보람찬 일이었고, 한국에선 주로 장르영화에 참여했는데 오랜만에 이런 드라마적인 서사를 찍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 현장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 배우들을 많이 믿어주셨다. 오래전부터 이야기를 같이해오던 작품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현장에서 모니터를 잘 안 보시고, 눈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확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엔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나.

= 촬영 들어가기 전에 여러 차례 보육원에 들렀다. 그때 만난 보육원 원장님, 보육원 출신 아이들, 그리고 한 신부님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마음에 잘 담아두려 했다. 그 과정에서 수정한 대사들도 꽤 있다. 그분들과 대화를 나눈 뒤로 동수의 과거가 더 잘 와닿았다. 보육원에서의 삶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겠구나, 이래서 어머니에게 애증의 마음을 갖게 됐구나 싶었다. 나중에 소영과 함께하면서 ‘어쩌면 자신의 어머니도 이랬을지 모른다’고 여기며 스스로를 치유해나갔을 것이라고, 그렇게 동수를 이해했다.

- 동수는 아이에게 반드시 부모를 찾아주겠다는 사명감을 지닌 인물이다. 선의를 갖고 행동하지만 그 과정에서 브로커라는 불법적인 행위를 택한다. 그런 동수의 결정은 어떻게 받아들였나.

= 동수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육원에서 자라면서 아이가 가족을 찾지 못하는 상황을 많이 봤을 거고, 가족을 찾기 위해 심사를 거치는 것도 부당하게 여겼을 인물이다. 동수의 상황상 재단을 설립하거나 할 수도 없으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빠르고 최선이라 판단한 방법을 택한 거다.

- 아기에 관한 이야기도 해보자. 베이비박스 운영 단체에서 일해서인지 우성이를 안아 드는 동수의 손길이 능숙하고 자연스럽다. 그 모습을 보며 왠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떠올랐다.

= 안 그래도 촬영 마지막날에 스탭들이 케이크를 선물해줬는데 거기에 내가 우성이를 안고 있는 사진과 함께 ‘동수도 그렇게 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웃음)

- 아기와 같이 촬영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려진 시간> <두근두근 내 인생>에선 아역배우와 함께했고, <군도: 민란의 시대>에선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품에 안고 등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갓난아기와 함께한 건 <브로커>가 처음이다.

= 충무로에선 아기와 동물이 나오는 영화는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웃음) <군도…> 찍을 땐 아기가 예민해서 촬영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우성이 역할을 한 아기는 엄청 순해서 수월하게 촬영했다. 낯을 가릴 만큼 자라기 전에 끝나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원래는 돌아눕지도 못했는데 촬영 중반에 뒤집기를 해서 ‘오!’ 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 아기를 원래 좋아하나.

= 좋아한다. 잘 봐주는 편이고 안는 것도 잘한다. 나중에 우성이가 어떻게 하면 안 우는지 다 알아서 금방금방 달래고 그랬다.

-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의형제> 이후 12년 만에 송강호 배우와 재회했고 이지은 배우와는 처음으로 합을 맞췄다.

= 송강호 선배와 같이할 기회가 생각처럼 잘 오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함께해서 너무 좋았다. 동수와 상현이 티격태격하면서도 관계를 친밀하게 잘 쌓아온 사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아이를 거래할 때 발생하는 블랙코미디적인 지점이 있는데, 나도 송강호 선배도 블랙코미디를 좋아해서 적절히 애드리브를 넣어가며 재밌게 찍었다. 촬영 끝나고 맥주 한잔할 때 내가 “한번 안아봅시다”라면서 선배를 포옹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어색하게 안아주시고 가더라. (웃음) 이지은 배우와도 재밌게 촬영했다. 둘이 붙는 신이 많진 않았지만 그중 몇몇 신들의 느낌이 좋았다. 특히 관람차 신은 주어진 테이크가 많지 않았는데도 정말 잘 나왔다.

- <인랑> <반도…> 등 장르물 이후 오랜만에 감정의 결이 중요한 작품을 택했다.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작용한 결과일까.

= 음, 그렇진 않다. 장르를 딱히 가리는 편이 아니어서. 액션영화는 몸이 힘들고 슬픈 영화는 마음이 힘들다는 차이 정도는 있겠지만. 동수는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인물이어서 촬영도 좋은 마음으로 마무리했다. (잠시 고민하다) 생각해보니 촬영 끝나고 좀 적적하긴 했다.

- 듣다보니 동수에게 꽤 깊이 몰입했던 것 같다. 어떤 점에서 공감이 많이 갔나. 자신과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지점이 있었나.

= 동수는 이상주의자에 가까운 인물인데 그런 점이 나와 비슷했다.

- 스스로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하나.

= 보다 밝은 사회,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내가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 작품에 있어선 어떤가. 배우 강동원의 필모그래피에선 어떤 흐름을 짚어내기 쉽지 않다. 그만큼 겹침 없이 다양한 작품을 고른다는 의미인데, 작품과 관련해선 어떤 이상을 꿈꾸는지 궁금하다.

= 신선한 작품에 눈길이 많이 간다. 그런 시나리오를 고르다보니 데뷔작 <그녀를 믿지 마세요>부터 <의형제> <검은 사제들> <가려진 시간> 등 신인감독과 작업을 많이 했다. 최근까지도 신인감독들이 시나리오를 많이 보낸다. (웃음) 신인과 함께하면 힘든 점도 있지만 새로운 매력 때문에 즐겁게 임하게 된다. 다음 작품도 아마 신인감독과 하게 될 것 같다.

- 배우 입장에서, 그리고 프로듀서 입장에서 시나리오를 볼 때 시선이 많이 달라지나.

= 나의 경우는 비슷하다. 작품의 예산이 너무 높게 책정되면 배우 입장에서도 부담감이 생긴다. 또 참여한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길 바라는 건 다들 마찬가지니까. 사전 작업할 때 배우들도 그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 <브로커>는 제작에도 관여해서 여러모로 마음이 남다를 것 같다. 본인의 필모그래피에서 <브로커>가 어떤 위치에 놓이는 작품이라 생각하나.

= 처음으로 프로듀싱에 관여한 영화였기 때문에 정말 많이 배웠고, 무엇보다 재밌었다. 앞으로 계속 제작 일을 하게 될 텐데 그 결정에 자신감을 갖게 해준 작품이다.

- 지난 4월 유튜브에 공개된 ‘동원 목공소’ 콘텐츠를 재밌게 봤다. 목공은 언제부터 시작한 취미인가.

= 15년 정도 됐다. 한동안 안 하다가 지난해 중순에 <브로커> 촬영 끝나고 시간이 좀 비어서, 오랜만에 내가 쓸 테이블을 하나 만들고 싶어 시작했다. 사실 수제 가구를 만드는 게 쉽지 않다. 마음에 드는 나무를 고르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공장 스케줄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고 팬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었다.

- 학부 시절엔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즐기나보다.

= 어릴 때부터 그랬다. 글라이더, RC카, 라디오도 만들어봤고, 목공은 가구에 관심이 많아서 시작했다. 목공하면서 깨달은 건 내가 기계과가 아니라 건축과를 갔어야 한다는 거다.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보니 산업디자인과도 괜찮았을 것 같고, 그래도 건축과가 가장 잘 맞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 남은 2022년은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 칸에 다녀온 뒤로도 배우이자 제작자로서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겠다.

= 영화제에 다녀온 뒤론 계속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일할 예정이다. 아직 공개하긴 어렵지만 하반기에 작품 하나가 촬영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고. 틈틈이 시놉시스를 쓰고 써둔 작품을 디벨롭하는 중이다. 등장인물을 살릴지 아니면 없앨지 고민하는 과정이 재밌다. 무언가를 처음부터 완전히 새롭게 만든다는 점에선 가구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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