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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AN #6호 [인터뷰] 브라이언 유즈나 감독 “디지털보다 고무 크리처가 더 무섭다”
임수연 사진 백종헌 2022-07-12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마스터클래스 진행하는 브라이언 유즈나 감독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는 환상영화학교 학장으로 브라이언 유즈나 감독을 위촉했다. 환상영화학교는 아시아 신진 영화인들을 위한 장르영화 제작 교육 및 네트워크 프로그램이다. 지난 5월엔 팬데믹 상황을 고려해 온라인 플랫폼 게더타운 내 메타버스 공간에 ‘부천 판타스틱 캐슬’을 만들어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다. 하지만 부천영화제 참석을 위해 내한한 브라이언 유즈나 감독은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게 더 좋다”며 곧 있을 오프라인 마스터클래스 행사를 고대하고 있었다. <리애니메이터> 시리즈 등으로 대표되는 저예산 호러 영화의 거장, 브라이언 유즈나 감독을 만났다.

- 처음부터 호러영화를 만든 건 아니라고 들었다. 어떻게 이 세계에 입문하게 됐나.

= 원래 영화 공부를 한 적도 감독 데뷔를 준비한 적도 없었다. 대신 목수로 일하거나 그림을 그려서 팔거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러다 취미 삼아 카메라를 갖고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신문 광고를 냈는데, 그렇게 만난 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과정이 너무 행복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면서 돈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호러 장르를 좋아했다. 처음 호러영화를 봤을 땐 악몽을 꿨지만 돌이켜보면 사실은 무서운 감정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언젠가 호러영화도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있었다.

- 2020년 타계한 스튜어드 고든 감독과의 협업으로 유명하다. 두 사람이 잘 맞았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 내가 영화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감독이 필요했다. 수소문 끝에 시카고에서 극장 연출을 하고 있던 스튜어트 고든을 추천받았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호러영화 아이디어를 확실히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1년 정도 아이템을 개발한 후 함께 만든 작품이 <리애니메이터>였다. 사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함께 일하기에 최악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달랐기 때문에 오히려 잘 지낼 수 있었다.

-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며 함께 상영하는 영화는 <소사이어티> <데이곤>이다. 당신에겐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들인가.

= <소사이어티>는 내가 연출한 첫 번째 영화다. 감독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른 채 마음대로 만든 작품이다. <데이곤>은 스튜어트 고든과 작업했던 마지막 영화이기에 각별하다. 2000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영화사 ‘필맥스’와 함께 ‘판타스틱 팩토리’를 설립해 영화를 만들었는데, <데이곤> 역시 이때 제작됐다. 시나리오는 <리애니메이터>의 데니스 파올리 작가가 썼다.

- <데이곤>을 비롯해 호러 작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다수 영화화했다. 지금 시대에 러브크래프트의 텍스트를 만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 무섭다는 감정은 언제나 동시대적 보편성을 갖는다. 가령 러브크래프트의 가장 유명한 소설 <인스머스의 그림자>는 유전적으로 내 몸이 원래 내 것이 아닌 다른 데 뿌리가 있을지 모른다는, 신체가 바뀔 수 있다는 근본적인 공포를 자극한다. 굉장히 무서운 괴물을 발견하고 도망치지만 알고 보니 나 역시 괴물 중 하나였다는 진실은 조금 다른 측면에서 보편적 공포를 느끼게 한다.

- <소사이어티>는 영국에서 상업적 성공은 물론 평단의 호평까지 받았지만 미국에서는 실패했다.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 영국에서 먼저 개봉했을 때 마케팅을 굉장히 잘했다. 그런데 몇 년 뒤 미국에서 개봉할 땐 홍보도 거의 하지 않았고 안정적인 배급망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 정치학적 측면에서 <소사이어티>는 계급 차에서 비롯된 괴물에 관한 이야기다. 영국인들은 계층이 나뉜다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반면 경제 호황기였던 1990년대 미국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신화가 있었기 때문에 <소사이어티>에 공감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2000년대 후반 대침체 이후 <소사이어티>를 본 젊은 관객이 이 영화에 훨씬 더 공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 당신의 영화에서 섹스는 곧 죽음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 호러영화는 언제나 터부시되는 주제를 다루고 이는 상당 부분 섹스와 연결된다. 청소년기 이차 성징이 일어날 때 마치 몬스터처럼 몸이 변하고 성에 눈을 뜨게 된다. 신체 변화는 신체 훼손과 연결될 수 있고, 성에 대한 욕망은 윤리적 문제를 수반한다. 생물학적으로 봐도 난자와 정자는 섹스를 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섹스를 해야 합쳐져 새로운 생명을 만들 수 있지 않나. 때문에 기본적으로 섹스와 죽음은 상통한다.

- 호러영화는 저예산, 무명 배우로도 정말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독특한 장르다. 실제로 당신이 증명해온 일이기도 하다. 특히 제프리 콤즈와 바바라 크램턴은 저예산 호러영화의 상징적인 아이콘이 됐다. 유독 호러 장르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 자기 돈으로 만드는 영화는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그러니 감독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연출과 배우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다. 관객 역시 저예산임에도 불구하고 웰메이드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호러 장르는 기본적으로 비현실적인 꿈같은 면이 있어서 조금 아마추어 같은 면이 있어도 무서운 순간이 있으면 팬들이 좋아한다. 다시 말해 잘 만들지 않아도 재밌을 수 있다. (웃음) 그런데 로맨틱 코미디나 드라마 장르는 기본적으로 잘 만들어야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런 차이가 있다.

- 그간 호러영화를 만들면서 인디영화와 큰 스튜디오 영화의 간극을 누구보다 분명하게 경험했을 것 같다.

= 만드는 과정은 비슷하다. 다만 독립영화를 만들 땐 협력해야 할 사람도 권력을 나눠 가져야 할 사람도 적었고,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만들 땐 복잡한 정치가 작용했다. 내 돈으로 영화를 만들 땐 마음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었지만 스튜디오의 승인을 기다려야 할 땐 내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스튜어트 고든처럼 재능 있는 감독도 인디 쪽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잘 발휘하다가 큰 스튜디오 영화를 만들 땐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 본격적인 디지털화가 이루어지기 전 당신은 고무 크리처나 퍼펫으로 호러영화를 만들었다. 최근 CGI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는 공포영화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 소품과 특수분장을 통해 구현하는 크리처는 굉장히 재능 있는 한 사람만 있어도 만들 수 있다. 반면 디지털 크리처는 거의 애니메이션에 가깝고 최소 10명 이상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작업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CGI로 구현한 크리처는 그다지 무섭지 않고 고무와 가짜 피를 쓰는 게 오히려 더 섬뜩하다. 지금은 디지털과 실제를 적당히 혼합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퍼펫의 눈을 클로즈업하면 가짜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CGI의 힘을 빌리면 실제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퍼펫티어(퍼펫을 조종하는 배우)와 와이어를 깔끔하게 지우기 위해서는 CGI 기술이 필요하다.

- <리애니메이터> 시리즈에서 신체를 해체하고 재봉합하는 기괴한 비주얼은 디지털이었다면 같은 느낌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만들었나.

= 나는 아이디어를 낼 뿐이고 다양한 작가들과 협업을 많이 했다. 특수효과 아티스트 스크리밍 매드 조지는 원래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에 바탕을 두고 아트 신에서 활동했지 영화 쪽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소사이어티> 때 그와 처음 만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같은 작업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스크리밍 매드 조지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이상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리애니메이터 2> 마지막 장면에서 온갖 조합의 시체 괴물들이 등장하는 신 역시 그가 창조한 것이다.

- B급 호러영화가 비디오나 DVD를 통해 많이 소비되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시대가 됐다. 이러한 환경 변화가 호러영화 시장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까.

= 기술이 바뀌면 제작비 조달 방식이 바뀌고 필름메이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1980년대 비디오 혁명이 일어나고 비디오를 빌려 영화를 보는 시대가 됐을 때 스튜디오는 이를 거부했다. 대신 젊은 영화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직접 영화를 만든 후 바로 비디오로 유통하는 감독들이 나타났다. 이후 스튜디오들이 적극적으로 2차 시장에 뛰어들면서 신진 창작자들의 자유가 점점 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구독료만 내면 수많은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문제는 창작자가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또한 스트리밍 서비스 가입자들이 제작비가 높은 영화만 선호한다면 인디 영화는 애초에 OTT에서 만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호러영화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호러영화가 인기 있는 시대다. 다만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공포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사회의식이 강한 심각한 영화들이 많은 것 같아 아쉽다. 그럼에도 호러영화는 살아남을 것이고 더 많은 감독이 호러영화를 만들 것이다.

- 여전히 호러영화를 사랑하는 당신이 최근 흥미롭게 본 영화는 무엇인가.

= <미드소마>는 다른 문화가 등장하는 데서 오는, 생경함이 주는 즐거움이 있었다. 최근 영화는 아니지만 <캐빈 인 더 우즈>도 흥미롭게 봤다. <이블 데드> 생각도 나고, 메타적인 느낌이 좋았다. <소사이어티>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등장하는 <겟 아웃>은 특권층이 불멸을 얻기 위해 특권층이 아닌 이들의 몸을 강탈하려 한다는 설정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장르적으로 재미있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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