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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지금까지 없었던 뮤지컬영화의 탄생: 윤제균 감독의 ‘영웅’을 말하다
김수영 2022-12-22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으로 2009년 초연된 국내 창작 뮤지컬 <영웅>이 윤제균 감독과 만나 뮤지컬영화 <영웅>으로 탄생했다. 안중근이 독립투사들과 <단지동맹>을 부르며 극을 열고, 사형장에서 안중근이 부르는 <장부가>로 끝맺는 엔딩까지 영화는 원작 뮤지컬의 기본 서사를 충실하게 옮겼다. <해운대> <국제시장>으로 천만 관객을 극장으로 이끈 감독의 장기를 발휘해 원작보다 대중적 요소를 가미했고 감정의 농도는 끌어올렸다. 윤제균 감독은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두 사람 중심으로 전개된 뮤지컬 <영웅>을 안중근과 어머니의 이야기로 다시 읽어냈다. 이 둘의 관계를 감정의 축으로 삼아 윤제균표 뮤지컬영화로 재구성했다.

영화는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계획하는 과정과 암살 직후 순국하기까지의 시간을 다룬다. 거사 2년 전, 안중근(정성화)은 신부의 주선으로 교황청에 다녀오겠다며 길을 나서고 가족들은 배웅한다. 조마리아 여사(나문희)는 아들이 쉽게 돌아오지 못할 먼 길에 나섰음을 직감한다. 이어 로마에 간다며 가족을 안심시킨 안중근이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국내 진공 작전을 지휘하는 모습이 이어진다.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 많은 동지를 잃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일본군의 습격을 받은 회령 전투 장면은 원테이크로 담아 안중근의 시점에서 그가 느낀 충격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이러한 구국투쟁은 12명의 독립투사들이 3년 이내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겠다고 각오하는 단지(斷指) 동맹으로 이어진다.

무대의 실재감과 몰입감을 구현하기까지

윤제균 감독은 뮤지컬 <영웅>을 다섯번 관람했고 그때마다 눈물을 쏟았다고 말했다. 이미 아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는 <영웅>이 가진 이야기의 힘에 감동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대의 감동을 어떻게 스크린으로 옮겨낼 것인가. 윤제균 감독은 연출자이자 동시에 관객의 시선으로 접근했다. 몰입할 수 있는 뮤지컬영화를 만들기 위해, <영웅>의 초연 때부터 출연해 14년간 안중근을 연기해온 정성화를 주연으로 발탁했다. 안중근을 누구보다 오래 고민하고 연기해온 정성화는 체중 감량과 분장을 통해 실제 안중근 의사의 외양과 상당히 흡사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의심의 여지없는 가창력과 무게감 있는 연기를 통해 대의로 움직이는 독립투사이자 고뇌에 찬 인간으로서 안중근의 면모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무대 감동의 핵심은 배우들이 관객의 눈앞에서 노래할 때 전해지는 실재감과 몰입감이다. 영화 <영웅>은 컷 분할을 거의 하지 않은 롱테이크 촬영과 라이브 녹음방식을 통해 무대의 감동을 극장에서 재현하고자 했다. <영웅>의 주요 스코어는 <누가 죄인인가>처럼 장면을 묘사한 곡도 있지만 대부분 인물들의 처절한 감정을 담은 곡들이다. 명성황후가 시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일본의 스파이가 된 설희(김고은)의 노래나 아들을 사형대로 보내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노래, 거사를 앞두고 부르는 안중근의 노래 등 <영웅>의 스코어 자체가 한곡만으로도 비장하고 극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 노래 못지않게 배우의 연기와 감정이 강렬한 감흥을 남긴다.

리딩 때부터 배우들의 눈물을 쏟게 했다는 조마리아의 노래 장면도 그렇지만 격정적인 감정이 들끓어 쇳소리까지 더해진 설희의 노래 장면은 라이브 녹음을 고집한 감독의 의도를 납득하게 한다. 이토 히로부미의 곁에서 정보를 빼내 독립군들에 전달하고 조국을 대신해 복수를 꿈꿨던 설희의 경우 무대에서는 그림자나 무대장치로 함축했던 사연이 영상으로 재현되면서 원작보다 생동감 있는 캐릭터로 빚어졌다. 캐릭터가 돋보인 데는 김고은의 명확한 연기도 한몫을 담당했다. <그대 향한 나의 꿈>이라는 영화 버전의 새로운 스코어와 서사가 보강되면서 극중 안중근 못지않은 비중을 가진 설희는 가상의 캐릭터임에도 역사 이야기 속에 어색하지 않게 자리 잡았다. 원작에서 중국인 남매로 등장한 왕웨이, 링링은 한국인 남매 마두식(조우진), 마진주(박진주)로 바뀌었고, 하얼빈 거사를 도모한 실존 인물인 우덕순(조재윤), 조도선(배정남), 유동하(이현우)가 안중근의 동료로 등장한다. 각각의 조연들이 내공 있는 연기와 노래를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영웅’이라는 영화의 제목을 나눠 가질 만큼 서로간의 동지로서의 연대감이 충분히 전해지지 않는 점은 아쉽다. 코미디 요소가 짙은 전형적인 캐릭터성이 강조된 조연들은 무거운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역할에 그친다.

영화 <영웅>의 매력은 애국주의나 신파에 크게 매몰되지 않고 독립투사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진정성으로 승부수를 띄운 점이다. 송모먼트에 공들였다고 강조한 만큼 이제껏 봤던 한국 뮤지컬영화와 비견될 수 없이 극과 노래가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뮤지컬을 이미 본 관객이나 그렇지 않은 관객이라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다. 극적 설정을 단순하게 스크린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공연에서 느낄 수 있는 감흥을 재현하기 위해 시도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성취를 거둔 한국 뮤지컬영화다.

*이어지는 기사에 <영웅> 윤제균 감독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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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