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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존 윅4'를 계기로 돌아보는 '존 윅' 시리즈의 매력
조현나 2023-04-14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포기해라. 이제 왕이 돌아왔으니!” 단테의 <신곡-지옥편>을 인용해 소리치던 바워리 킹이 웃으며 뒤를 돌아본다. “준비됐어?” 나무 기둥에 주먹을 내리꽂던 존 윅이 처음으로 입을 연다. “그래.” 최고회의에 “열 좀 받았냐”는 바워리 킹의 질문에 바닥에 널브러진 존이 “그래”라고 답했던 <존 윅3: 파라벨룸>의 결말을 상기해보자. 그 끝을 그대로 이으며 마침내, 존 윅이 귀환한 것이다.

오프닝 시퀀스가 주지하듯 <존 윅4>는 최고회의에 가열차게 반격을 가하는 존 윅을 좇는다. 세계관이 확장됨에 따라 일본, 독일, 프랑스 등 로케이션도 다양해졌고 각 나라의 랜드마크를 활용한 독특한 액션 신들이 펼쳐진다. 액션에 힘을 싣는 시리즈의 특성을 강화하되 선악 구도의 인물들을 새로이 배치해 존 윅의 주변 관계를 다변화했다. “팬들을 위해 넘치도록 채워진 선물”(<버라이어티>)과 다름없는 이 영화는 현재까지 총 2억5200만달러라는 시리즈 최고 수익을 기록했다(4월4일 기준). 무엇을 무기로 존 윅은 다시금 팬들을 사로잡았나. 4년 만에 공개된 <존 윅> 시리즈의 네 번째 챕터를 펼쳐보는 동시에 <존 윅> 1~3편을 관통하는 시리즈의 매력과 명장면을 되짚어보았다.

권총을 들고 정장을 갖춰 입은 존 윅(키아누 리브스)이 사막을 가로질러 최고회의 장로 앞에 당도한다. “자유를 원한다”는 그의 말에 장로는 당신이 자유를 되찾을 유일한 길은 죽음뿐이라고 말한다. 이에 반기를 들며 존 윅은 장로에게 총을 겨눈다. 수장을 잃은 최고회의는 그라몽 후작(빌 스카르스고르드)에게 권한을 일임하고, 그는 뉴욕 콘티넨털 호텔의 지배인인 윈스턴(이안 맥쉐인)에게 존 윅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책임을 묻는다. 최고회의를 피해 오사카 콘티넨털 호텔에 머무르던 존 윅을 찾아 그라몽 후작의 수하들이 일본으로 건너오고, 호텔의 지배인이자 존 윅의 친구인 시마즈 코지(사나다 히로유키)는 존 윅에게 도움을 자청하고 나선다. 한편 케인(견자단) 역시 존 윅의 또 다른 오랜 친구이지만 그라몽 후작의 협박으로 인해 존 윅에게 맞서는 입장에 놓인다.

두드러지는 캐릭터성과 압축적 액션

혈혈단신으로 적을 급습해 몰살시키는 것은 시리즈를 관통하는 존 윅의 시그니처다. 홀로 수십명과 대적하는 장면은 <존 윅4>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존 윅의 주변인들에게도 힘을 싣는 모양새다. 존 윅의 막역한 동료들이 그의 조력자이자 반대급부로 등장하고, 이들의 서사까지 충실히 설명하며 말이다. 그로 인해 존 윅은 전처럼 주저 없이 총을 난사해 치워버리는 식으로 적에 대응할 수 없게 된다.

그라몽 후작과 케인, 코지가 등장하면서 최고회의와 킬러들의 관계 더욱 정교하게 묘사됐다. 케인과 코지, 존 윅 모두 각자의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최고회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운명에 놓인다. 특히나 케인은 가족을 볼모로 잡힌 채 그라몽 후작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해야 한다. 말하자면 그라몽 후작은 탁상에 앉아 케인과 같은 킬러들을 장기 말처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전작의 빌런들과 비교해보더라도 그라몽 후작은 유달리 오만한 태도의 캐릭터다. 뿌리 깊은 귀족주의에 내부 규율과 의례를 중시하고, 모든 상황을 뜻대로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가감 없이 과시한다. 최고회의를 의인화한다면 꼭 그와 같은 인물일 테다. 그런 그는 “존 윅의 신념 자체를 죽이기 위해 그가 손대는 모든 걸 죽여야 한다”며 오사카에서 필요 이상의 유혈 사태를 초래한다. 존 윅과 마주했을 땐 그를 ‘킬러 그 자체’로 규정하며 이전의 장로가 그러했듯, “목숨을 내놓지 않는 이상 이 삶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못 박는다. 그러나 존 윅이 어디 단순한 장기 말이던가. “그 킬러가 당신을 죽일 것”이라며 그라몽 후작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경고한다.

<존 윅4>는 존의 주변인들에게까지 본격적으로 캐릭터성을 부여하면서도 액션은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여기서의 압축은 스케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언급했듯 오사카의 호텔과 베를린의 지하 클럽, 프랑스의 개선문과 사크레쾨르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222개의 계단 등 장소는 더욱 다채로워졌다. <존 윅> 1~3편의 액션과 홍콩 누아르, 사무라이 활극 등을 오마주하는 동시에 일본도, 표창, 활 등을 활용한 동양무술, 기마 액션, 특유의 건푸 액션 등 가능한 모든 액션을 집대성하려는 야심도 거침없이 드러나 있다.

흥미로운 건 존 윅과 그에 대적하는 적을 제외하고선 모든 게 정물처럼 자리한다는 것이다. 가령 지하 클럽에서 춤을 추는 수백명의 인파나 개선문 주위를 도는 수십대의 차 모두 존 윅과 여타 킬러들에게 관심조차 없다. 카메라 또한 그들에게 낭비할 컷은 없다는 듯 존 윅에게 집요하게 따라붙기 때문에 관객의 시선도 자연히 이들에게 고정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잘 구성된 게임 맵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캐릭터를 쫓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다. 고공에서 떨어져도 부활하듯 일어서는 존 윅과 오버헤드숏으로 원테이크 총격전을 보여주는 신 같은 것들이 게임 플레이 영상을 관람하는 듯한 착각을 강화한다. “한편의 영화가 편하게 다룰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화려한 세트 피스를 등장”(<할리우드 리포터>)시키면서, 본인들이 보여줘야 할 것을 압축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존 윅의 상대역 케인으로 분한 견자단이 시각장애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노련한 속도전을 펼치고, 거구의 킬라(스콧 애드킨스)가 괴력으로 존 윅을 밀어붙이는 전투전이 또렷하게 그려지는 것도 이들을 제외한 모든 게 철저히 배경 처리됐기 때문이다.

마침내 복수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택하다

다종다양한 액션을 막힘 없이 펼치는 존 윅은 실상 그리 낯설지 않다. 도리어 인상적으로 와닿는 것은 본인의 정체성을 제 뜻대로 규정하고 싶어 하는 존 윅의 변화다. 그라몽 후작이 말한 것처럼 ‘킬러’라는 수식어를 배제한 채 존 윅 캐릭터를 논하긴 어렵다. 존 윅이 그의 존재감을 드러낸 건 키우던 개의 죽음으로 복수를 시작했기 때문이었고, 그것이 또 다른 복수로 이어져 현재에 이르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존 윅>에서 그가 최초로 등장한 건 킬러로서가 아니라 아내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는 남편의 모습으로서였다. 그러다 타의에 의해 다시금 킬러의 세계에 들어섰고, 현상금을 노리는 추격자들과 대적하며 거리를 방황해야만 했다.

초반의 모습을 잃고 오로지 복수에 열을 올리는 그에게 윈스턴은 말한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으며 그것으로는 네가 원하는 자유를 얻을 수 없다”고. ‘킬러의 복수극’은 명실상부 <존 윅> 시리즈를 추동케 했던 설정이다. 그러나 네 번째 속편에 이르러 존 윅은 복수극이라는 시리즈의 구조 자체에 의문을 표하며, 스스로 그 굴레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한다. <엠파이어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은 “이젠 영화에 공식이 생겼지만, 그것을 똑같이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한 바 있다. 반복된 살인에서 손을 떼고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 요컨대 <존 윅4>는 복수에 복수를 거듭해오던 존 윅이 본래 자신이 갈구하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려는 여정이라 할 수 있겠다.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의 의도대로 <존 윅4>는 화려한 액션과 함께 “이전 작품들을 계승”하면서도, 복수극이라는 시리즈의 정체성에 반문을 제기한다는 변주를 꾀한다. 그것이 유의미했냐는 물음엔 감히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겠다. 총과 칼을 쥔 채 자신의 자유를 찾아 나선 무법자. 지금껏 그래왔듯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법으로, 존 윅은 시리즈의 네 번째 장에 성공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존 윅> 시리즈의 매력은 이어지는 기사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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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제이앤씨미디어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