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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하얀 마물의 탑>
이다혜 사진 백종헌 2023-05-16
미쓰다 신조 지음 / 민경욱 옮김 / 비채 펴냄

미쓰다 신조의 책은 밤에 읽으면 안된다. 공포를 자아내는 솜씨가 일품이기 때문이다. <검은 얼굴의 여우>에 이은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하얀 마물의 탑>은 호러 미스터리 소설로, 태평양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청년 모토로이 하야타가 <검은 얼굴의 여우>에서는 탄광에서 수수께끼 사건을 경험했다면, 이번에 그가 새롭게 도전하는 일의 무대는 바로 등대다.

공포물의 클리셰 중에 ‘사망 플래그’라고 불리는 (일종의) 복선이 있다. “만약 길을 잃더라도 하얀 집에는 가지 마세요. 거기서 묵으면 안됩니다”라는 편지를 받고도 하얀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주인공의 상황이 딱 그렇다. 모토로이 하야타는 등대지기가 되기로 하고, 새로 근무하게 된 고가사키등대로 향한다. 그런데 등대까지 가는 길이 험난하다. 등대까지 길을 안내해줄 사람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 혼자 길을 떠나게 되는데, 해가 금방 져버리고 불빛을 찾아 신세를 지게 된 허름한 집은 노파인 무녀와 그 손녀가 사는 곳이었다. 전날 묵었던 여관에서 싸온 도시락을 뒤늦게 먹으려던 모토로이 하야타는 도시락 속에서 “만약 길을 잃더라도 하얀 집에는 가지 마세요. 거기서 묵으면 안됩니다”라고 적힌 편지를 발견하고 당황한다. 자신이 머무는 집이 바로 그곳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망을 치려다 실패한 그는 그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된다. 고가사키등대에 도착하기까지도 파란만장한데, 고가사키등대의 첫인상은 ‘거대한 하얀 얼굴’이다. 도대체가 무섭지 않을 수가 없다. <하얀 마물의 탑>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모토로이 하야타가 고가사키등대에 가기까지의 사건이, 2부에서는 등대에 도착한 하야타가 등대장으로부터 듣는 20년 전 사연(그런데 놀랍게도 등대장이 겪은 일이 하야타가 겪은 일과 겹친다)이, 3부에서는 사건의 진상과 새로운 수수께끼가 펼쳐진다. 미스터리와 공포가 뒤섞여 기묘한 엔딩으로 이어진다. 불안과 슬픔이 뒤섞인 결말까지 도달하고 나면,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의 새로운 이야기가 어떤 공간을 무대로 하게 될지 서둘러 읽고 싶어진다.

325쪽

고도와 만나 함께하기 전의 자신을 ‘일모도궁’이라고 한 적 있다. 이는 ‘해는 지기 시작했는데 갈 길은 먼’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까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더는 방법이 없다’라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