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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일본 독립영화계에서 당신이 주목해야 할 작품 및 인물들
이우빈 2023-06-16

동시대 일본 독립영화의 경향을 묻자 미야케 쇼 감독은 “혹여나 우리가 자각하지 못할 뿐 한국 관객이나 비평가가 보기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듣고 싶다”라고 답한 바 있다. 이러한 요청에 응하기 위해 최근의 일본 독립영화를 범주화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선정하며 그와 관련된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동일본 대지진과 사토리 세대

<도쿄의 밤하는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동시대 일본 독립영화계에 흐르는 주제 의식에서 동일본 대지진의 흔적을 빼놓을 순 없다. 이들의 기수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도호쿠 기록영화 3부작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재해의 상흔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후에 내놓은 <아사코> <드라이브 마이 카> 역시 같은 주제의 연장으로 여겨진다. 고모리 하루카의 <하늘에 귀 기울여> <더블 레이어드 타운>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6월 개봉한 나카가와 류타로 감독의 <이윽고 바다에 닿다>는 극영화 방식으로 재해의 흔적과 죽음이란 주제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이후 꾸준히 언급되는 미야케 쇼 감독도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에서 재난을 직면한 후 상실감에 빠진 일본의 청년층(사토리 세대)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는 일본의 신진감독을 대표하는 이름 중 하나, 이시이 유야 감독이 일관되게 견지한 주제이기도 하다. 가령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젊은 남녀는 불안정한 일자리, 주변인의 죽음을 겪으며 일상을 부유한다.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일자리를 찾으러 온 부자는 사회적 고초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다.

사토리 세대에 해당하는 신진감독만이 포스트 동일본 대지진의 주제를 택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1947년생의 노장감독 아라이 하루히코는 <분화구의 두 사람>에서 동일본 대지진을 직접 끌어오는 것만으로 모자라 후지산 대폭발이란 재해를 더하기도 한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그저 사랑을 지속하는 두 젊은 남녀를 그리면서, 사토리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가능한 저항이란 옆에 있는 타인과의 관계 맺기임을 주장한다. 한편 (<큐어>의 깊고 깊은 무저갱에서 일견 탈피하여) <산책하는 침략자>의 마지막에서 ‘사랑’의 가치를 외친 구로사와 기요시의 변화도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독립영화의 공통점을 신진감독들만의 특질이라 단정하기는 무리다. 차라리 헤이세이 시대(1989~2019년. 버블 경제의 몰락, 옴진리교 가스 테러로 일본 사회가 위기에 직면했던 시기)를 지배했던 상실감, 그러나 이 진창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려는 일본의 시대정신, 그리고 그것을 표출하려는 일본영화계의 주제 의식을 그들이 제때 계승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OOO의 제자&조감독

<세 번째의, 정직>

일본 신진감독들의 가장 큰 표면적 공통점은 그들이 도쿄예술대학에서 구로사와 기요시나 스와 노부히로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나열하자면 하마구치 류스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세 번째의, 정직> 연출자 노하라 다다시, <우리 집>으로 도쿄피아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순회했고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에 <리멤버링 에브리 나이트>로 초청된 기요하라 유이 감독, <타카라, 내가 수영을 한 밤>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 진출했던 이가라시 고헤이 감독, <하모니움>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오는 7월 <러브 라이프>의 국내 개봉을 앞둔 후카다 고지 감독, 마리코 데쓰야 감독 등이 포함된다. 한편 누군가의 조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한 이들도 눈에 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사단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히로세 나나코는 감독을 맡은 야기라 유야 주연의 <여명>, 다큐멘터리 <책 종이 가위>로 연달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빛의 노래>로 마르세유국제영화제에서 수상, 이 영화와 <하루하라상의 리코더>로 부산을 방문했던 스기타 교시 감독은 구로사와 기요시, 스와 노부히로의 조감독을 거쳤다. <벼랑 끝의 남매> <실종>의 가타야마 신조 감독도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다.

하마구치 류스케와의 관계

<타카라, 내가 수영을 한 밤>

현재 일본 뉴 제네레이션의 기수라 할 수 있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향력을 지우기는 어렵다. <해피 아워>에 이어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을 기술한 책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 집필에도 같이 참여한 노하라 다다시의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노하라 다다시가 연출한 <세 번째의, 정직>은 <해피 아워>의 정신적 속편으로 분류된다. 또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각본가였던 오에 다카마사가 있다. 오에 다카마사는 앞서 언급한 가타야마 신조의 시리즈물 <간니발>의 각본에 참여했고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장편 연출작 <고래의 뼈>를 선보이기도 한다. 미야케 쇼가 하마구치 류스케와 함께 영화 연출 스터디를 함께하며 막역한 관계를 쌓았단 사실도 유명하다. <드라이브 마이 카> 촬영감독 시노미야 히데토시는 미야케 쇼의 <플레이백>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의 촬영감독이고, <우연과 상상>의 이이오카 유키코 촬영감독은 스기타 교시의 <빛의 노래>를 촬영하기도 했다. 뉴 제너레이션이라 명명되는 주요 신진 영화인들이 서로의 작품을 공유하고 도우며 새로운 시도에 다가서고 있는 현상 역시 일본 독립영화계의 뚜렷한 경향이라 할 수 있겠다.

장르물의 후예들

<시크릿 카운터>

일본 장르영화의 계보를 훌륭히 이어가고 있는 신진감독들도 있다. <시크릿 카운터>로 일본 특유의 만화적 상상력을 뽐낸 아라키 신지 감독은 <내일의 죠> <거인의 별> 등에 참여한 일본의 전설적인 애니메이터 아라키 신고의 아들이다. <디스트럭션 베이비>에서 일본영화계 속 폭력 장르의 계보를 잇는 마리코 데쓰야 감독은 사카모토 준지구수연, 최양일 등 이전 세대의 마초 감성을 보여줬다. 그의 다른 작품 <미야모토>는 문구회사 세일즈맨 히로시를 주역으로 삼아 일본의 속칭 ‘열혈 청춘 비즈니스물’ 장르를 계승하기도 한다. 가타야마 신조 역시 <벼랑 끝의 남매> <실종> 등으로 구로사와 기요시식의 미스터리를 이어받으며 일본영화의 장르적 매력을 보여준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로 일약 일본 독립영화계의 스타가 된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일본식 컬트 장르를 탁월하게 이었다. 한없이 진중하다가도 한없이 허무맹랑한 일본영화의 양면성을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선 이 젊은 감독들의 작품을 챙겨볼 법하다.

언어적 소통의 불가능성

<우리 집>

언어적 소통의 불가능성은 동시대 일본 독립영화에서 발견되는 주요 소재다. 이런 흐름 역시 하마구치 류스케로부터 설명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자국어-외국어의 차이 혹은 사망한 아내의 녹음된 목소리와 대화하는 소통의 지연을 구현하며 언어의 필연적인 한계를 표명한다. 미야케 쇼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역시 농인 복서를 주인공으로 설정한다. 이시이 유야의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에도 언어 차이로 인한 한국인과 일본인의 소통 불가능이 드러난다. 또 후카다 고지의 <하모니움>이나 <러브 라이프>에서도 장애로 인한 인물간의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전면에 부각된다. 이가라시 고헤이가 프랑스 감독 다미앙 마니벨과 만든 <타카라, 내가 수영을 한 밤>은 이러한 비언어성을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설원을 거쳐 아버지를 찾으러 간 주인공 소년 타카라를 비롯해 이 세계 속의 인물들은 사실상 말하지 않는다. <해피 아워>의 후미가 부부간의 진심을 대화가 아닌 상대의 배 울림소리로 느끼던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혹은 언어적 소통의 불가능이 기억의 소거로 치환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기요하라 유이의 <우리 집>엔 기억을 잃은 인물이 등장하여 영화의 기묘한 분위기를 이끈다. 노하라 다다시의 <세 번째의, 정직>도 기억을 잃은 한 소년과 중년 여성이 모자 관계를 매개로 각자의 존재성을 탐구하는 이야기다. 한편 4부로 나뉜 느슨한 플롯의 병치로 통상적인 영화 문법을 거부하려는 스기타 교시 감독의 <빛의 노래>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사토리 세대에 얽힌 주제 의식과 마찬가지로 동시대 일본 독립영화의 영화적 방법론들은 헤이세이 기간을 함께 겪은 윗세대 영화계의 자장에 포함되어 있다. 김예솔비 평론가는 <우리 집>과 <세 번째의, 정직>이 차용한 기억 상실의 모티프를 언급하며 <큐어>, 상세하게는 <큐어> 속 마미야란 인물의 속성을 위 작품들의 정신적 유산으로 규정한다. 결론적으로 동시대 일본 신진감독들은 이전 세대의 영화적 주제와 형식을 일부 이어받은 동시에 자신들만의 독자적 행로를 구축해가고 있다. 한편으론 익숙하면서 한편으론 무척 낯선 이중의 매력, 범주화하려 할 때마다 조금씩 변주되는 흥미로운 양상이 우리를 강하게 매료시키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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