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디스토피아로부터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윌슨도 아니고 사만다도 아닌
임소연 2023-06-22

인공지능이 아니라 응용통계라고 부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SF 작가 테드 창이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인공지능 개발자나 기자들이 챗지피티와 같은 챗봇을 “나”와 같은 인칭 대명사로 칭하게 하거나 인공지능 기술을 묘사할 때 “학습”이나 “이해” 등과 같은 인간 중심적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인공지능에 대한 환상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응용통계라니, 그동안 인공지능을 둘러싸고 과도하게 불붙었던 기대와 두려움 둘 다에 찬물을 끼얹는 이름이 아닌가. 테드 창의 표현을 빌리면 “섹시하지 않은” 이름이기 때문에 아마 아무도 사용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마침 또 이런 소식들이 들려온다. 자신을 본뜬 ‘인공지능 여자 친구’ 서비스를 출시한 미국의 인플루언서. 인공지능 앱에서 만난 가상 남성을 완벽한 남편으로 소개하는 여성. 챗지피티를 이용해서 나만의 여자 친구를 만드는 걸프렌드지피티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남성. 지난 화에서 이미 밝혔듯이 나는 인간을 닮은 기계를 만드는 것에 대체로 부정적이다. 원반 모양의 청소하는 기계에 사용자들이 이름을 붙여주며 의인화하는 것과 애초에 로봇청소기를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 대상이 청소하는 기계가 아니라 친구의 역할을 수행하는 가상의 존재라면 더욱 문제적이다.

테드 창이 예로 들었듯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떨어진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배구공을 ‘윌슨’이라고 부르며 마음을 주고 의지한다. 영화에서 척은 한낱 배구공일 뿐인 윌슨을 잃어버린 후 깊은 상실감에 빠지며 절망한다. 배구공 친구 윌슨을 향한 감정은 오롯이 척이 만든 것이기에 안타깝지만 그 상실감과 절망에 대한 책임 역시 그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혼자 있는 척의 외로움을 달래주겠다며 ‘인공지능 친구 윌슨’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어떨까? 척이 인공지능 윌슨과의 대화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우정을 느낀다면 그 감정은 온전히 척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 친구 윌슨과의 관계에서 척이 심신에 상처를 입는다면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수 있을까?

아니 잠깐, 척은 ‘인공지능 친구 윌슨’을 원하지 않을 것 같다.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를 가진 ‘사만다’ (영화 <그녀>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연인이 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는 한. 2021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이준환 교수팀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사용자가 여성 챗봇을 선호하는 만큼 남성 사용자는 남성 챗봇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챗봇뿐만 아니라 디지털 가상 인간도 온통 여성인데 여성 인간과 여성 인공지능의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다니.

어차피 인공지능을 의인화할 거라면 이제 인공지능이 나오는 영화에도 여성 서사를 도입하면 좋겠다. 그래야 비로소 인공지능이 더이상 섹시하게 여겨지지 않게 될 테니까. 인공지능에 대한 환상 속에 사만다가 있는 한 아무도 응용통계 같은 이름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게 분명하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