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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AN #1호 [인터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인터뷰
이우빈 사진 백종헌 2023-06-29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가 27회를 맞았다. 박진형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의 말처럼 “한 세대를 지나 새로운 시대를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이 세대교체의 중심에서 부천영화제의 다섯 프로그래머는 영화, 그리고 영화제의 범위를 고민하고 있다. 올해 영화제의 슬로건인 ‘영화+’가 주지하듯 K-콘텐츠와의 연계, 고전 작품들의 복원, 다양한 산업 프로그램의 성장 등 여러 방면에서 부천영화제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다. 이는 영화제의 존재 당위와 기능을 골똘히 살피는 프로그래머진의 애정 덕분이다. 아시아권 영화를 담당하는 김영덕 수석 프로그래머를 비롯해 각각 영미권·한국권·유럽 및 기타권역 영화, XR 큐레이션을 맡고 있는 남종석, 모은영, 박진형, 김종민 프로그래머를 만나 이야기 나눴다.

- 부천영화제가 시작하려 하니 귀신같이 날씨가 더워졌다.

박진형 영화제 기간에 장마가 겹치기도 하는데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웃음)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아리 애스터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보는 맛. 이게 바로 부천영화제만의 매력이 아니겠나.

- 올해 상영작의 경향을 정리해보자면.

김영덕 중화권 영화는 중국 정부의 검열 문제로 이런저런 제한이 많았다. 특히 다수의 홍콩 영화계 감독들이 해외로 거처를 옮기면서 올해 상영작 중에선 그들을 찾기 힘들 수도 있다. 반면 일본 영화는 여전히 강세다. 주제 측면에서는 여성 서사가 이제 어떠한 새로움으로 언급되기에 어려울 만큼 많아졌다. 인도네시아의 <스리 아시>는 여성 히어로물이고, 인도의 <프라이버시>는 그간 드물었던 여성 탐정물이다. 한편으론 SNS나 유튜브 등 온라인 세계를 소재로 한 작품도 꾸준히 늘고 있다.

모은영 아무래도 코로나19 팬데믹 중 제작된 영화가 지금 나오다 보니 작은 아이디어 중심의 영화가 많이 출품됐다. 가령 제한된 장소에서 대사만으로 극을 이끄는 방식이 많이 보였다. 다만 새로운 장르적 시도나 이른바 ‘끝까지 밀고 가는’ 과격한 영화는 드물었다. 이런 면에서 <영생인>은 끝까지 영화의 힘을 밀고 나가는 흔치 않은 작품이다. 만화 작가 출신의 감독이 만들었는데, 비슷하게 <2035>의 연출자 역시 촬영감독 출신이다. 이렇게 다른 영역의 창작자, 스토리텔러가 영화 연출에 뛰어든 것도 새로운 경향으로 보인다.

박진형 예전 세대의 영화를 복권하려는 현시대 창작자들의 움직임이 뚜렷하다. 90년대 시네필이라면 당연히 열광할만한 <2551.02-지옥의 난교> 같은 작품이 그렇다. 아마 본인들의 성장 과정에서 자양분이 됐던 작품들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 같다.

- 부천영화제도 ‘스트레인지 오마쥬’, ‘부천시 50주년 기념전’ 섹션을 통해 여러 고전 작품을 편성했다.

박진형 글로벌 트렌드라고 볼 수 있다. 산업적으로는 복원작품들의 판매가 국제적으로 성황이다. 칸국제영화제를 봐도 칸 클래식 부문에서 40편에 육박하는 고전을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 고전 영화가 담긴 섹션들을 꾸리고, 이에 관한 비평적 담론도 마련하려 한다.

남종석 영미권에선 특히 20세기 영화에 대한 오마주나 리스펙트가 무척 많았다. 예를 들어 조 린치 감독의 <악의 육체>를 언급하고 싶다. H.P 러브크래프트의 자장 아래에서 20세기 컬트의 걸작 <좀비오> 시리즈를 만든 프로듀서 브라이언 유즈나, 각본가 데니스 파올리, 배우이자 제작자인 바바라 크램톤과의 협업이 이뤄진 작품이다. 또 <테리파이어 2>는 80~90년대 슬래셔물의 정통 계승자다. 이처럼 이전 세대 영화를 소개, 복원하며 소비하는 현상이 올해뿐 아니라 차후 3~4년간 국내외 영화제들의 주요 흐름이 될 것 같다.

- 고전 작품 중에선 <둠 제너레이션>이나 <네이키드 런치>, <앤디 워홀의 프랑켄슈타인>, <위커맨>에 대한 인기가 높다.

박진형 <네이키드 런치>처럼 인기 있는 고전은 해외 영화제들과의 4K 상영 프리미엄 경쟁도 굉장히 거셌다. <앤디 워홀의 프랑켄슈타인>은 심지어 3D 상영이지 않나. 시사 때 보니까 정말 강렬했다. (웃음) 이 작품의 과격한 거사 장면을 3D로 경험할 기회는 부천영화제뿐이다.

남종석 <둠 제너레이션>은 1995년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된 뒤로 어디에서도 제대로 상영되지 않은 작품이다. 아시아 극장 상영은 이번 부천영화제가 처음이다. 정말 귀한 기회이니만큼 관심 가져주면 좋겠다.

모은영 4K 리마스터링으로 상영하는 <천년여우>도 잊지 말아달라. 내 권역 작품도 아닌데 김영덕 프로그래머에게 간곡히 부탁해서 한 자리 얻었다. (웃음) 워낙 극장 상영이 어려운 작품이니만큼 많이 봐주시길.

박진형 이렇게 극장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선사하는 게 영화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올해의 슬로건인 ‘영화+’란 미래지향적 변화뿐 아니라 과거의 유산까지 섭렵하는 확장인 셈이다. 영화제가 창작자, 관객들에게 특정한 방향성을 지시하거나 가이드를 주기보다는 최대한 다양한 판을 깔아서 여러 콘텐츠의 발견과 변형을 도모해야 한다고 느낀다.

- ‘영화+’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영화제의 외연 확장 시도인 ‘영화 + K-웹툰’ 행사, ‘코리안 판타스틱: 영화 + K-Pop' 메가 토크 등도 올해 부천영화제의 특징이다.

김영덕 부천영화제는 시작부터 영화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수용했다. 영화제 기간 내 음악 공연, 만화 행사가 병행되는 건 예사였다. 영화가 중심이되 영화라는 것이 고정된 틀이 아니란 점을 계속 외치는 셈이다. 그래서 괴담캠퍼스를 통해 지역 괴담을 아카이브한다거나 이걸 영화와 연계하는 작업도 해오고 있다. 올해 진행하는 웹툰, K-POP 연계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 또 영화제의 미래지향적 변화라 하면 올해 8년째를 맞은 ‘비욘드 리얼리티’의 XR 전시가 떠오른다.

김종민 올해 부천영화제의 XR 전시는 부천아트벙커B39에서 진행된다. 쓰레기소각장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공간이다. 공간의 분위기에서부터 하나의 장르영화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길복순> 같은 여러 장르영화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흔히 전시장 하면 생각나는 화이트 박스, 블랙 박스가 아니기에 관객이 이머시브 전시에 몰입하기에 무척 용이한 형태다. 예전처럼 VR 헤드셋을 쓰고 시각적으로 보는 작품뿐 아니라 오감을 자극하고 건축, 무용, 연극, 게임 등과 결합한 다양한 전시를 만날 수 있다. 국내 최초, 최대의 XR 전시는 부천영화제의 자부심이다. 해외 영화제들의 XR 관련 펀딩과 전시가 급격히 커지고 있는 만큼 부천영화제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 구체적인 XR 작품을 추천한다면.

김종민 월드 프리미어 작품 <가우디의 신성한 아뜰리에>는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만들던 가우디의 작업실을 직접 체험하게 한다. 가우디의 상상력과 작업 과정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에그스케이프>는 가상현실에서 계란이 깨지지 않도록 플레이하는 혼합 현실 게임이고,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상당했다. <재일버드>는 80년대 카툰을 VR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인데 서사적인 완성도가 무척 높다. 특히 부천영화제 관객을 위해 전체 한글화 더빙을 진행하기도 했으니 꼭 감상해보길 바란다.

- NAFF 프로젝트 마켓, 환상영화학교 등이 포함된 산업프로그램 B.I.G(BIFAN Industry Gathering)도 부천영화제의 얼굴 중 하나다.

남종석 B.I.G는 세계 단위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2008년부터 시작한 NAFF 프로젝트 마켓은 15년 동안 92편의 장르 영화를 완성했다. 올해 상영하는 마켓 작품 중 <호랑이 소녀>는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기도 했다. 2007년에 시작한 환상영화학교와 프로젝트마켓의 시너지도 괄목할 성과를 내고 있다. 가령 아시아 최초로 선댄스영화제 미드나잇섹션에 초청된 올해 부천영화제 상영작 <숲의 요정>은 케네스 다가탄 감독이 환상영화학교에서 기획했고, NAFF 프로젝트 마켓에 선정되어 만든 작품이다. 이처럼 해외에선 부천영화제 프로그램에 선정되면 ‘무언가 된다’라는 인식이 강하게 퍼진 상태다. 다만 이러한 성과들이 아직 국내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온 것 같다. 그래서 올해부턴 해외뿐 아니라 국내 대상 프로모션과 네트워킹도 활발히 시작하려 한다.

- B.I.G가 성행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박진형 장르 영화제에서 이런 프로젝트 마켓을 설립한 건 세계에서 부천영화제가 최초다. 물론 시작은 쉽지 않았다. 장르 영화의 특성상 일반 상업 영화나 아트하우스 영화보다 공공 펀드나 협동 프로덕션이 활성화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열심히 활동을 이어가며 해외와 교류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니 이만큼의 결과가 뒤따른 것 같다.

모은영 십수 년 동안 열심히 씨앗을 뿌렸고, 지금은 풍성하게 거두는 단계라고 봐주면 되겠다. 제작 지원, 교육, 상영 등의 안정적인 생태계가 자리 잡힌 느낌이다.

김영덕 2016년에 시작한 ‘메이드 인 아시아 포럼’도 B.I.G의 주요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특히 아시아 각국의 인사를 다수 초청하여 행사 규모를 키웠다. 부천영화제가 중심이 되어 아시아 영화계의 민간 네트워크를 체결하려 한다. 아시아 영화계에 대한 세계의 주목, 영화제 재원 창구의 다양화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영화제를 앞두고 관객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은영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관객이다. 특히 부천영화제는 관객을 넘어 팬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고정 관객층의 호응이 좋은 영화제다. 영화제를 잘 아는 만큼 우리를 자주 혼내긴 하지만. (웃음) 종종 겪는 질타도 다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객과의 긴장감 교환이 영화제의 존속, 성장을 위해 필수라고 본다. 앞에서 설명한 상영작, 섹션, 산업프로그램 모두 ‘부천 팬들이여 올해도 부천에 돌아오라’라는 신호니까 모쪼록 많은 관객이 부천에 찾아와 좋아해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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