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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예산은 줄고 말할 곳은 없다, 2024년도 영화진흥위원회 예산 논란
이우빈 2023-09-22

<씨네21>이 국회에서 입수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자료 4권’(이하 ‘2024 문체부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예산에서 영화 창제작 지원, 국내외 영화제 육성, 애니메이션 종합지원, 지역 영상 생태계 기반 마련 사업 등의 예산이 절반 이하 수준으로 대폭 삭감되거나 폐지된다. 영진위가 공개한 영진위 설립목적 중 임무 항목에는 지역 영상문화 진흥, 예술·독립·애니메이션 영화의 진흥, 영화의 유통배급 지원이 적혀 있다. 요컨대 2024 문체부 예산안엔 영진위의 기본적인 설립 목적에 어긋나는 사업 방향성이 대거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23년에 각각 8억원, 4억원으로 편성됐던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 관련 사업’,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이 모두 0원으로 전액 삭감된다. 지역의 영화문화 발전을 꾀하며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역 영상 생태계 기반 마련’ 사업을 폐지하는 것이다. 영화제작지원 사업과 영화기획개발지원 사업을 통합한 ‘영화 창제작 지원 예산’은 298억원에서 107억원으로 줄어 전년 대비 36% 수준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이중 기획개발지원금은 70억원에서 37억원으로, 영화제작지원금에선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 사업이 117억원에서 70억원으로, 애니메이션영화 종합지원 예산은 32억원에서 0원으로 줄어들었다. 대신 국고 20억원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을 지속한다. 영진위 관계자는 “국고로 진행되는 내년도 애니메이션 지원사업 중 제작지원, 개봉지원 등 어떤 세부 사업이 진행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라며 “여타 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사업으로 집중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내외 영화제 육성’ 사업 예산도 올해 56억원에서 내년 28억원 수준으로 50%가량 삭감된다. 사업 항목 중 ‘국내 및 국제 영화제 지원’은 52억5천만원에서 25억2천만원으로, ‘독립영화제 개최지원’은 3억7천만원에서 2억9600만원으로 줄어든다. 더하여 ‘국내 및 국제영화제 육성지원’의 경우 지원 대상의 수가 20편으로 40편이었던 전년 대비 절반이다. 심지어 국내와 국제영화제가 하나의 부문으로 통합됨으로써 작은 국내 영화제들의 상황이 더 나빠질 위기에 놓였다.대신 영상전문투자조합 출자, 장애인 관람환경 개선,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 영화·영상 로케이션 지원사업 등이 증액되거나 신설된다.

특히 영상전문투자조합 출자는 80억원에서 250억원으로 전년 대비 212%가 늘어났다. 공공자금을 기반으로 한 영상전문투자조합 결성을 통해 민간투자 활성화와 이탈 방지를 목적으로 한다. 또 영화 향유권 강화 사업 중 지역영화 관련 사업은 폐지됐지만, 장애인 관람환경 개선을 146% 증액했고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 사업을 새로 만들었다. 주요 사업에 대한 대폭적인 예산 삭감, 신설 사업 및 일부 사업의 증액이 별다른 공적 논의 없이 결정된 상황이다.

| 2024 문체부 예산안에 반발하는 영화인들 |

2024 문체부 예산안에 따른 영진위 일부 사업의 예산 삭감 소식에 영화인들의 반발이 거세다. 먼저 강원·광주·대구·부산·인천·전북·대구독립영화협회를 주축으로 한 지역 영화인 및 영화단체 연합은 문체부에 예산 전액 삭감 결정을 철회하고 협상 자리를 마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역 영화 생태계를 파괴하는 처사이며 삭감 결정에 대한 마땅한 근거가 없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2024 문체부 예산안 중 ‘최근 3년간 동 사업에 대한 주요 외부지적사항 및 평가, 문제점 및 대책’과 ‘해당사업에 대한 각종 사업평가의 결과’ 항목엔 지역 영화 지원사업에 대한 지적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

영진위의 ‘2023년도 예산 영화발전기금운용계획서’에 따르면 영진위의 기금사업 편성안 중 하나는 ‘지역 영화 균형발전체계 구축’이다. 이는 2013년에 제정된 문화기본법에 따라 지역의 문화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법률적 근거를 마땅히 실행해온 것이다. 2016년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에 지역 영화 진흥에 관련된 조항이 신설되었고, 2018년부터 영진위는 ‘지역 영상 생태계 기반 마련’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지역 영화 관련 사업은 비교적 적은 규모의 예산 편성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안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던 세부 사업 중 하나다. 영진위 9인 위원회 소속이자 지역소위원회장인 김이석 동의대학교 교수는 “올해 초부터 영진위와 9인 위원회는 지역 관련 예산 증액을 우선순위로 올렸다. 지난 2~3년간 해당 사업이 안정적으로 잘 수행되며 알짜배기 소리를 들었던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문체부와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를 거치며 공적이고 합당한 근거나 대안 없이 갑작스러운 사업 폐지가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전주·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를 비롯한 50개의 영화제는 (가칭)국내개최영화제연대를 구성해 영화제 지원 예산 삭감의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2024년 영진위 예산에 대해 “역대 최악의 산업 중심 예산”이란 강한 비판과 함께 “영화제 예산은 보편적 문화복지 실현과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외치는 현 정부의 정책에도 부합하는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2024 문체부 예산안 중 영화발전기금 운용의 향후 추진방향 및 추진계획엔 ‘다종다양한 영화제 개최 확대’, ‘글로벌 경쟁력과 차별성을 갖춘 국제영화제 육성’ 등이 기재돼 있다. 더하여 예산안에는 최근 3년간 국내외 영화제 육성에 대한 마땅한 외부지적사항도 없다. 지역 관련 사업과 마찬가지다. 영진위의 존립 근거 및 추진 방향성, 사업 결과에 예산 편성 흐름이 반대되고 있는 것이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정부 예산안이야 늘 긴축 및 10~15% 수준의 예산 절감을 지시한다. 그러나 올해 영화제 지원 예산처럼 50% 수준의 삭감은 이례적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영화제 관련 영화인들이 모여 앞날을 논의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영화인들의 요청에 대해 문체위 소속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영화인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정책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영화 창제작 사업의 축소에도 반대의 목소리가 크다. 이는 올해 6월 문체부가 영진위의 방만 경영을 지적한 일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문체부는 “영화제작지원 사업에 매년 100억원 넘는 예산이 편성되나 최근 3년간의 실집행률이 30~40%”임을 지적하며 영진위 사업 방향성의 개선을 예견했다. 하지만 영화계 일각에서는 문체부가 제시한 ‘실집행률’의 기준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는 “문체부는 지원금을 받은 당해 연도에 영화 제작이 끝난 경우를 집행률로 집계했다. 내년으로 넘어간 영화는 미집행으로 간주하여 독립영화 제작지원 집행률이 2~30%라고 지적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지원금을 통해 실제로 완성된 독립영화의 비율을 따지면 90%가 넘는다”라고 주장했다. 문체부가 영화 제작에 필요한 실질적인 소요 기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애니메이션 발전연대는 애니메이션 종합지원 사업의 폐지가 알려졌던 지난 8월에 해당 사업의 폐지에 반대 성명을 발표하며 일찍이 반발했다. 연상호 감독 등 애니메이션 감독 27인의 성명에 더불어 개인 연명 수가 1만명을 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발전연대는 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을 “한국 장편애니메이션 산업 육성을 위한 마지막 산소호흡기”라고 강조하며, 문체부의 결정은 “애니메이션 창작의 씨를 말리는 일”이라고 항의했다.

| 줄어드는 영발기금, 영진위의 수난 시대 |

다수 사업의 대폭적인 예산 삭감에 대해 영진위는 고질적인 재원 문제로 인해 부득이하게 일어난 결정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당장 돈이 없으니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단 논리다.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은 지난 9월5일 영진위 보도자료를 통해 “영화발전기금(이하 영발기금)의 충당 여력이 없는 상황을 감안할 때 일부 사업의 조정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확대되거나 관행적으로 증대된 일부 보조 사업에 대해 불가피한 조정이 있었다”라고 포괄적인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지역 영화, 영화제, 영화 창제작 사업에 대해 일일이 구체적인 감액의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2024 문체부 예산안도 마찬가지로 모든 감액 사업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실제로 영진위의 예산 부족은 가속화되고 있다. 영진위가 발표한 2024 한국영화 진흥 예산은 734억원이다(영발기금 464억원, 일반회계(국고) 270억원). 영진위는 2023년도 영발기금 사업비 729억에서 5억원 증가한 규모로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영화 진흥 예산이 아니라 2024 문체부 예산안에 따른 영발기금 사업비 총액(영화산업 육성 및 지원비)으로만 따지면 729억원에서 266억원 줄어든 464억원으로 계산된다. 5억원의 증가란 국고로 지원되는 270억원을 포함해 계산한 총 예산인 셈이다. 한편 그간의 사업비 추이는 2019년 660억원, 2020년 899억원, 2021년 1053억원, 2022년 978억원으로 줄어드는 상황이다. 2024년 문체부의 전체 예산안과 비교하면 영진위의 상황은 더욱 나쁘다. 2024년 문체부의 전체 예산은 전년도 대비 3.5% 증가했고 그중 문화예술 분야는 1.9% 감소했다.

영진위 예산 문제의 주된 원인은 영발기금의 급속한 축소다. 영진위 예산으로 쓰이는 영발기금의 주요 수입원은 기금설립 초기에 이월된 출연금과 기금운용수입을 제외하면 극장 관객 입장료의 3%를 징수하는 부과금뿐이다. 이처럼 사실상 영진위의 유일한 재원인 부과금 수입이 2019년 540억원에서 2020년 110억원, 2021년 140억원, 2022년 179억원으로 대폭 줄었다(<표> 참조). 팬데믹으로 인한 극장 관객수의 감소와 코로나19 팬데믹 특별지원사업, 부과금 납부 의무의 면제 조항이 부과금 감소를 초래하고 있다.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에 따르면 올해에도 “200억원을 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며 내년엔 250억~300억원 규모가 예상된다. 9월12일 영진위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영화산업 매출액은 팬데믹 이전의 61.8%에 그쳤다. 부과금 부족 사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영진위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OTT 콘텐츠도 영화에 포함하고 영발기금을 충당하는 방법을 추진하고 있다. 7월21일엔 영진위 주관으로 국회에서 여야 인사가 참여하는 관련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영진위가 보도자료를 통해 내년도 예산안을 “비교적 긍정적인 성과”라고 발표했지만, 근본적인 재원 구조의 결점을 해결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700억원대 예산을 국고와 타 기금으로 충당하긴 했으나 영발기금 고갈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은 없기 때문이다. 보도자료에 따른 영진위의 의견은 내년도 정부 예산 증가율이 2005년 이후 역대 최저 수준인 2.8%인 것을 고려했을 때 내년도 예산 확보가 일정 수준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근거는 기금 재원의 다각화를 이뤄냈다는 부분이다. 올해 영진위는 체육기금 300억원, 복권기금 54억원을 영발기금으로 전입했다. 타 기금으로부터 전입금을 확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예술진흥기금이 위헌 판정을 받은 2003년 이후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체육기금, 복권기금, 관광기금과 국고에서 지속적인 재원 전입을 받은 사례를 떠올리면 긍정적인 지점이다.

타 기금에서의 전입금은 영진위가 재원 구조의 다각화를 위해 계획했던 최선의 방책이다. 2022년 영진위는 공공자금관리기금(이하 공자기금)에서 800억원을 차입해 예산을 충당한 적 있다. 하지만 부채로 처리되는 차입금인 탓에 영진위의 예산 부담은 줄지 않았다. 2023년에 국고 지원으로 해당 부채를 탕감하긴 했으나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영진위 내부 관계자인 A씨의 말처럼 “공자기금이라 해도 결국 대출이다. 고름이 살이 되진 않는다. 국가 재정까지 안 좋으니 이런 방법은 더이상 타개책이 못 된다. 여타 기금에서 전입금을 받는 게 영진위의 현실적 대안”이었던 것이다. 영진위가 공개한 ‘2023년 제10차 위원회 정기회의 회의록’에서도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은 “영진위 전체 예산을 850억원으로 가정할 때 2024년에 부과금이 최대 300억원이 걷혀도 550억원이 모자란다. 다시 빚을 내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보려 기재부 관계자를 만나 타 기금 전입이나 국고 지원을 요청”했다고 지난 5월부터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타 기금 전입과 국고 지원엔 차후 지속성의 문제가 있어 또 다른 활로가 필요한 상황이다. 2024년 이후에도 타 기금에서의 예산 충당을 확정할 순 없다. ‘2023년 제14차 위원회 정기회의 회의록’(이하 제14차 회의록)에서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은 “앞으로도 계속 이런 규모로 재원 다각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타 기금 전입금과 국고의 출처에 따라서 예산의 용처도 제한된다. 올해에 영진위가 전입한 복권기금 54억원은 소외계층 지원을 위한 기금의 성격에 따라 ‘장애인 관람환경 개선’과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 사업에만 쓰인다. 문체부 차원에서 지원한 국고 270억원은 영발기금에 편입되지 않고 문체부가 관리하는 일반회계에 편성됐다. 이중 250억원이 ‘영상전문투자조합 출자’ 사업에 쓰이는 것이다. 타 기금과 국고 전입을 통한 사업 확대에 대해 A씨는 “문체부와 기재부에서 영화산업계 전체의 부흥을 목적으로 추진하는 사업들이다. 영진위 입장에서 물론 아쉬운 점이 있긴 하나 출처가 어찌됐든 한국영화계에 지원되는 돈이니 마다할 이유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영진위는 올해 하반기부터 ‘한국영화 개봉 촉진 투자조합’ 결성을 추진해 개봉이 지연되고 있는 약 110편의 한국영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에 더해 문체부가 내년도에 국고 250억원을 지원하여 영진위 출자/투자 사업의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고영재 대표의 말에 따르면 “영발기금도 없으니 직접 펀딩해서 돈을 벌어오라는 문체부의 지시”인 셈이다. 영진위가 영화 진흥 및 지원 목적의 공공기관이 아니라 투자 수익을 내야 하는 기관으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 하릴없이 정부 기조에 좌지우지 |

영화제 및 지역 영화 관련 예산 삭감은 영진위의 재원 문제뿐 아니라 현 정부의 정책 기조 및 진행 절차와 크게 관련돼 있다. 사실상 문체부의 입김에 따라 영진위의 사업 방향성이 좌우되는 형국이다. ‘지역 영상 생태계 기반 마련’ 예산 삭감이 대표적인 사례다. 2023년 기준, 해당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12억3천만원으로 영진위 전체 예산의 1.4% 수준이었다. 이 정도의 예산이 전액 삭감된 일을 단순히 영진위 재원의 고갈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제14차 회의록에 따르면 영진위측은 지역영화 예산과 관련해 “2차 심의에서 기재부 사무관에게 반은 읍소, 반은 설득하기 위해 설명했으나 이 건에 대해서는 지방정부에서 예산을 적극 부담해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김이석 교수는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람직한지 아닌지를 떠나 지역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 예산 편성이 영진위, 지자체 차원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영진위 위원장이 문제 상황에 공감하고는 있으나 예산 건은 영진위의 재량을 넘어선 문제로 보인다. 대신 영진위 실무자나 증액된 사업의 관계자들과 만나서 어떻게 지역 예산을 충당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영화제 관련 예산의 대폭 축소도 마찬가지로 정부 기조에 따른 결정으로 보인다. 전년도 연말부터 정부는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관련 현황을 꾸준히 점검해왔다. 특히 정부 17개 부처가 참여한 정책기획관 회의의 결과에 따라 정부는 ‘각 부처는 소관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사업을 재검토하여 부처별 감축 방안 마련’할 것을 영진위에 지시했다. 이중 ‘영화유통지원’ 사업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특정한 감액 요구가 있었고 이에 따라 영진위의 ‘국내 및 국제영화제 지원, 아시아 영화 시장지원, 독립·예술영화 개봉지원, 독립영화제 개최지원’ 예산이 크게 삭감된 것이다.

영진위가 독립적인 위원회로서 영화 진흥에 힘쓰지 못하고 문체부의 실무 부서처럼 행동한다는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영진위의 설립목적 중 임무 항목에 기재된 영진위 운영계획의 수립·시행, 영발기금의 관리·운용 등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영진위의 현 상황은 제14차 회의록에서 발견된다.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은 “영진위가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다. 영진위가 사업 방향성에 대해 기재부와 문체부의 지시대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라고 언급했다. 또 영발기금 고갈에 대해선 “지난해 칸영화제 수상자 축하 만찬에서 대통령이 발표한 3천억원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란 언급을 남겼다.

| 깜깜이식 정책 진행, “문화 민주주의 퇴보” |

결국 문체부와 영진위 사업의 방향성이 영화계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으며, 영진위가 문체부와 영화계의 교각이 되고 있지 못하단 점에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영진위가 지난 9월5일 발표한 보도자료 “영진위, 재원 다각화 신호탄 쏘아올리고 한국영화 재도약 위해 250억원 쓴다” 외에 문체부의 예산 편성 기조를 간접적으로나마 살필 수 있었던 올해의 보도자료는 문체부가 6월15일 발표한 “영진위, 도덕적 해이 심각 방만·부실 운영으로 국민혈세 낭비”와 8월20일 발표한 “박보균 장관, ‘영화 박스오피스 신뢰 회복 위해 영화계의 자정 노력, 영진위의 조속한 대책 마련’ 강조” 2건이었다. 고영재 대표는 “영발기금 사용처에 대한 영화인들과의 토론회나 직접적인 접촉이 아예 없었다”라며 “깜깜이식의 정책 진행으로 영화계 종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문화 민주주의의 퇴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화계 종사자뿐 아니라 영진위에서 활동하는 9인 위원회와 소위원회 구성원들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2024년 문체부 예산안에 대해 영진위를 통한 문체부의 하향식 통보만을 받았다는 것이다. 강원독립영화협회 대표이자 영진위 지역영화문화진흥 소위원인 김진유 감독(<나는 보리>)은 “소위원회가 예산 편성 과정에 참여하기보단 기결정된 사항을 공유받는 정도로 운영되고 있다”라며 “의견을 내더라도 적용이 되진 않는 편”이라고 전했다. 제14차 회의록에서 김선아 영진위 부위원장은 “소위원회들이 이름만 걸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 성평등,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면 영진위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된다”라고 밝혔다.

2024 문체부 예산안 수정 가능성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오가고 있지만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예산안은 앞으로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쳐 11월 말~12월초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결정된다. 영진위 차원에서 해당 예산안에 수정을 요청할 여지는 영진위를 담당하는 문체위 위원들을 설득하는 일뿐이다. 제14차 회의록에서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은 “지난해 경험에 비추어보면 예산안 수정 요청이 반영되기는 매우 어렵다”라고 밝혔다. 한편 유정주 의원은 <씨네21>과의 인터뷰를 통해 해당 문제를 충분히 인지한 상황이며 남은 국회 일정을 통해 사태 해결에 힘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영진위 관계자 B씨는 “올해 정부 예산안이 예년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었던 만큼 평소보다는 변화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논란 속의 2024 문체부 예산안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에 영화인들의 속이 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