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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컬트를 유쾌한 활극으로,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김성식 감독
이우빈 사진 백종헌 2023-09-28

올해 추석영화 3파전의 유일한 신인감독인 김성식 감독은 <기생충> <헤어질 결심> 등에 조감독으로 참여해온 10년차 베테랑 영화인이다. 그는 철저한 사전 조사와 레퍼런스 탐구를 선결하는 모범 감독이기도 하다. 이는 걸출한 선배 감독들에게 오랜 시간 영화 일을 배워온 경험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단지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만으로 고군분투했던 애니메이션 학도의 입봉 과정, 그 험난했던 지난날은 최근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도제 시스템의 사례를 떠올리게 만든다. 오래 몸담아온 한국영화계의 역사와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계승하면서 본인만의 색채를 드러내려 했다는 그에게 <천박사>의 제작 일지를 물었다. 그가 언급하는 수많은 레퍼런스의 향연은 그의 다채로운 영화적 경험치를 느끼게 한다.

-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것으로 안다.

중학생 시절 <뉴타입>이란 만화 잡지를 보고 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살인의 추억>을, 3학년 때 <올드보이>를 보면서 예술작품이 감독의 힘으로 이만큼이나 달라질 수 있는지 절실히 느꼈고,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취직한 애니메이션 회사에선 하청 작업만 했고, 한 선배가 “여기선 감독 못 된다”라고 얘기하더라. 결국 전역하고 나서 영화판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영화 연출부 일을 시작하게 된 과정은.

먼저 울산 MBC에서 방송 일을 하면서 촬영, 조명 기술의 기본을 배웠다. 혼자 단편도 찍고 시나리오도 썼다. 그즈음 봉준호 감독님이 <설국열차>를 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원래 좋아했던 원작 만화를 내가 직접 영화 시나리오로 써봤다. 그러곤 봉준호 감독님이 참석하는 관객과의 대화 현장에 가서 무작정 내 시나리오를 드렸다. 감독님께선 “열심히 쓴 걸 아무에게나 갖다주면 안된다”라고 하긴 했으나 흔쾌히 받아주시더라. 또 <설국열차>가 모호필름에서 제작된다는 얘기를 듣고는 직접 찾아가서 시나리오를 드리기도 했다. 신기한 눈초리로 나를 보던 직원들의 시선이 아직도 기억난다. 3~4주 후에 조감독님이 연출부를 할 생각이 있느냐고 연락해주셨는데 영어를 못했던 터라 결국 일은 못했다. 그래서 또 다른 길을 찾아 곽경택 감독님의 <미운 오리 새끼> 연출부 막내로 들어가 현장 일을 시작하게 됐다.

- 당시 봉준호 감독과의 일화가 <기생충> 조감독 이력으로 이어진 것인가.

<해무> 연출부에 들어갔더니 제작자가 봉준호 감독님이시더라. 감독님께서 설마 그때 그 사람이냐고 놀라워하셨다. (웃음) 아직 시나리오는 포장도 안 뜯고 보관 중이라며 사진까지 찍어 보내주셨다. 그렇게 연을 쌓다가 <기생충> 조감독을 하게 됐고, <천박사> 시나리오를 봐주셨을 땐 “유재선 감독 <> 시나리오 정말 죽이는데, 너 어떡할래?”라면서 신별로 굉장히 디테일하게 피드백해주셨다. 박찬욱 감독님도 의견을 주셨는데 두분의 공통 의견은 “네가 이런 오컬트, 판타지 영화를 한다니 놀랍다”와 “최대한 유머를 절제하며 잘 써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 오컬트 장르의 웹툰 <빙의>를 원작으로 삼은 이유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해서 그런지 VFX 산업에 늘 관심이 있었다. 봉준호, 최동훈, 김용화 감독님 등 이미 혁혁한 공을 세운 분들에 이어서 할리우드영화 못지않은 한국 고유의 VFX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빙의> 기획을 처음 접하고 이런 목적을 세우기에 안성맞춤이라 생각했다.

- 오컬트 장르물을 구현하기 위한 VFX 비주얼의 준비 과정은 어땠나.

마리아 랙스라는 핀란드 출신 사진작가의 작품을 주요 레퍼런스로 삼았다. 범천이 이용하는 생령의 푸른빛이나 영화의 룩을 관통하는 원색의 색감을 많이 참고했다. 촬영, 조명에서도 VFX 컨셉과 어울리는 통일성을 주려 했다. <해무> 때부터 현장에서 함께 작업해온 양현석 촬영감독과는 아틀라스 애너모픽렌즈 사용을 결정해서 화면의 푸른 색감을 강조하기로 했다. 클래식한 질감에 현대적인 분위기의 화면을 얹고 싶었다.

- 동시대 한국영화의 요소들을 다수 패러디했다. <기생충>에서 지하실 부부로 등장했던 박명훈, 이정은 배우가 부잣집 부부로 나오는 것이 대표적이다.

봉준호 감독님에 대한 감사 표시와 함께 <기생충> 지하실 부부의 염원을 이뤄주고도 싶었다. 유경이 사는 마을의 안개는 임권택 감독님의 <안개마을>이나 내가 조감독으로도 참여했던 <헤어질 결심>의 이미지를 많이 끌어왔다. 천 박사의 의상 컨셉도 <헤어질 결심> 속 해준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헤어질 결심>에 나온 스마트폰의 시점숏 같은 것도 쓸까 했지만 너무 노골적인 오마주 같아서 뺐다.

- 천 박사의 캐릭터 컨셉에선 <전우치> <검은 사제들> 등에서 보여준 강동원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강동원 배우가 나온 작품들의 스틸컷을 벽에 붙여놓고 이미지를 떠올렸다. 개인적으로 워낙 <전우치>를 좋아하기도 하고….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카우보이 비밥>의 주인공 스파이크 스피겔도 많이 참고했다. 겉으론 능청스러운데 싸울 때는 마구 진지해지는 성격이 유사하다고 느꼈다. 말하다 보니 헤어스타일이나 길쭉길쭉한 다리도 비슷한 것 같다. 하긴 강동원 배우가 워낙 만화 같은 인물이다 보니까. (웃음)

- 고유 능력을 지닌 천 박사, 유경, 인배, 황 사장(김종수) 등의 팀플레이가 눈에 띈다. 일종의 롤플레잉 무비로 보인다.

맞다. 제임스 건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각 캐릭터의 개성과 유머가 눈에 띄게 만들었다. 그러나 미세하게 접근하면서 인물들의 전사와 감동적인 순간이 드러나게 하고 싶었다. 또 천 박사를 보조하는 유들유들한 사이드킥으로 인배 캐릭터를 조절했고, 오컬트 장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 말랑말랑하고 캐주얼한 캐릭터들을 많이 첨가했다.

- 언급했듯이 오컬트 장르이면서 판타지 요소를 가미했기에 작품의 분위기가 무겁지만은 않다. 어떤 목표가 있었나.

어릴 적에 본 <고스트 버스터즈>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성룡 영화들처럼 어린아이들이 밝은 세상을 꿈꾸고 희망할 수 있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오컬트 장르로 치면 <콘스탄틴>의 밝고 유쾌한 활극 버전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분위기를 구현하기 위해서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처럼 소위 ‘삑사리’가 나는 순간들, 예를 들어 전투 중에 무기를 어이없게 놓친다든가 하는 장면들을 많이 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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