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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몰입의 리듬, 어깃장의 순간 - <외계+인> 2부 최동훈 감독
김소미 사진 최성열 2024-01-18

- 1부와 2부를 동시에 찍으면서 총 387일(재촬영 1회차 포함)간 촬영한 영화를 드디어 갈무리하게 됐다. 지금까지 경험한 물리적으로 가장 긴 프로덕션은 무언가 다르던가.

=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급속도로 약화되는 것을 느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니까. 한창때는 한달 반 만에 집에 들어갔다. 역시 영화 찍는 사람들에게 그리 유별난 일은 아니다. 관건은 집중도였다. 배우, 스탭들이 13개월간 한 작품에 집중하게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특히 배우들은 출연 장면에 따라 한동안 현장에 나올 일이 없는 경우가 있지 않나. 이를테면 한달 만에 현장에 온 배우가 마치 어제도 계속 찍었던 것처럼 만든다는 것, 그런 게 과제였다.

- 김우빈 배우의 비인두암 투병과 완치까지의 과정을 동행한 프로덕션이었다.

= 1부 개봉을 마무리하고 2부 작업에 들어갈 때 김우빈 배우가 “감독님 고생했어요, 힘내세요”라고 건네준 한마디에서 절절한 진심을 느꼈다. 나는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 그 말이 내게 정말 도움이 됐다. 게다가 그는 언제나 잘 안아주는 사람이다. 키 차이가 극복이 안돼 나는 항상 우빈의 목을 볼 뿐이지만….

- 수치로 요약하면 2부 완성까지 1년 반 동안 혼자서 150번의 시사를 하고 52개의 편집 버전을 만들었다고. 어떤 루틴으로 작업했나.

= 3, 4일 편집에 매달리고 나면 한 이틀은 쉰다. 그리고 마지막 날 밤에 불 꺼놓고 혼자 영화를 쭉 본다. 메모하면서 ‘이 부분은 템포가 빠르다, 이 컷은 빼고 저 컷은 교체하자, 시퀀스 단위로 전체 구조를 아예 바꿔볼까’ 등등 막 써내려간다. 그다음 다시 편집실에 간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영화를 한참 보다가 메모를 전혀 하지 않는 날이 온다. ‘어, 한줄도 안 썼네?’ 그때 편집이 끝난다. 1부가 개봉한 이후에 2부 편집을 더 열심히 하려고 의식한 것도 있지만, 세상의 모든 감독은 편집 단계에서 오랫동안 고민하고 붙든다고 생각한다. 1부가 어찌됐든 원래 그렇게 했었어야만 하는 것이다.

- 2부 오프닝은 1부 내용의 줄거리 요약으로 시작한다. 서머리의 유무와 그 방식을 놓고 여러 경우의 수를 고민했을 것 같다.

= 내레이션이 없는 버전, 앞에 나온 1부의 대사로만 구성한 버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식의 비장한 오프닝 등을 시도해봤는데 어울리지 않았다. 내레이션도 김태리 배우 이전에 여러 목소리를 고민했다. 제3의 보이스를 시도해보면서 내가 녹음한 버전도 있다. 결과적으로, 앞으로 펼쳐질 일을 직접 해내야 하는 단 한 사람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지금껏 이런 일이 있었고 이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다, 는 1인칭 서술로 마무리하자 서머리가 종결이 아닌 새로운 출사표처럼 느껴졌다. 이어 타이틀이 뜨면 목소리의 주인공인 이안이 바로 등장한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찾는 데 6개월이 걸렸다. 한 가지, 1부와 2부를 연달아 보는 관객들에겐 오프닝의 내레이션이 중언부언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1~2부 동시상영 시사 후 반응으로는 다행히 하나의 스타일로 봐주시는 것 같다.

- 이하늬 배우가 연기한 민개인 캐릭터가 맹인 검객 능파의 후손이라는 설정이다. 민개인 서사를 1회차 재촬영했는데 이유가 궁금하다.

= 기존 시나리오에서는 2부의 시작점이 현대다. 그런데 편집에서 고려를 시작점으로 바꾼 뒤 애초에 찍힌 촬영본의 현대 장면을 붙여보니 리듬이 느려 맞지 않았다. 첫머리가 두번 반복되는 셈인 거다. 그래서 이 모든 걸 다 버리고 민개인이 어떤 사람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민개인-능파 관계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가장 쉽고 간략한 소개 신을 쓰기로 했다. 하늬씨에게 전화해서 “아무도 재촬영하지 않고 자기만 찍는다”고 공들여 설득했다. 마지막까지 조금씩 다듬어서인지 어떤 면에서는 시나리오를 6년 동안 쓴 것처럼 느껴진다.

흐르는 물 혹은 떨어지는 돌처럼

- 1부가 박스오피스에서 아쉬운 성적을 거두고 관객 반응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2부를 작업할 때 가장 중시한 요소는 무엇인가.

= 앞의 대사 하나를 바꾸면 뒤에 오는 대사도 유기적으로 바꿔나가는 작업 같은 것은 늘 해왔던 일이다. 원체 현장에 가서 대사를 잘 만지는 편이다. 다만 그동안은 배우가 연기하기에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방향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방법을 택하려는 과정이었다면 <외계+인> 2부의 수정은 방대한 서사를 접하는 관객의 몰입도를 높여야 한다는 확실한 목표를 두고 이루어졌다. 몰입감이라는 게 산꼭대기의 바위 덩어리 하나가 저 밑까지 굴러떨어지는 것하고 비슷하다. 문제는 바위가 경사를 따라 아무렇게나 튕겨나가고 예측 불허로 굴러떨어지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은 하나하나 내가 원하는 대로 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편집의 기조는 중복이 없도록 만들고 설명을 줄이는 것이었다. 편집을 안 한 것 같은 편집으로 일관하다가 느닷없이 이건 모두 연출된 것이라는 감각을 상기시키는 순간을 만들 수 있다면 가장 좋고. 가령 <외계+인> 2부에서는 마지막에 모두 모여 싸우는 몽타주 장면이 그렇다. 이 장면은 ‘연출의 개입이 느껴져도 상관없다 혹은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며 작업했다.

- 그런 맥락으로 보자면 1부는 혼종적인 요소들이 까끌거리며 튀어나오는 순간이 더 많았고 2부는 더 매끈한 판타지 블록버스터로 완성됐다. 돌이켜볼 때 감독의 인장이 좀더 보이는 쪽은 1부가 아닌가 싶은데.

= 동의한다. 1부에 감독의 개입이 보이는 순간이 더 많긴 하다. 시공간의 흐름에 어깃장을 놓는 순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이안 대신 강 속에 뛰어든 어린 무륵이 관에서 빠져나온 성인 무륵과 마주보는 장면이 특히 1부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내게 큰 구심점으로 작용했다. 평행선을 달리던 이야기가 모여들기 시작하는 지점인 동시에 무륵에게는 정서적 균열이 본격화되는 지점이다. 반대로 2부에선 그런 비현실적인 연출이나 감독의 개입이 보이는 순간을 최 대한 뒤로 미루려고 했다. 거의 없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느 쪽이 더 만들기 힘든 영화냐고 하면 지금은 모르겠다. 과거의 나라면 1부가 더 까다로운 작업일 거라 대답했을 텐데, 이번에 2부를 작업하고 나니 역시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다.

- 편집 과정에서 고려와 현대를 오가는 횟수를 시나리오보다 줄였다고. 여기에 더해 2부는 한신 혹은 한 시퀀스 안에서도 전개가 생략된 구간들이 두드러진다. 의도일까.

= 영화 전체가 아니라 한신 안에도 구조가 있다. 기승전결, 기기승승 혹은 결결결로 가도 된다. 여기서 연출의 리듬이 나온다. 스스로에게 느끼는 부분 중 하나가 신이 점점 길어진다는 거다. 물론 일부러 길게 찍고 싶은 장면들도 있다. 2부에서 신검을 차지하기 위해 모두가 벽란정에 하나둘씩 모여드는 과정은 반드시 차곡차곡 보여줄 필요가 있는 구간이다. 너무 늘어지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길게 가고 싶었다. 말하자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계속 어떤 분위기만 피어오르는 재미다. 언뜻 불필요해보이는 것을 공들여 보여주고 정작 보여줄 만한 것은 빼버리는 것 같은 결정을 하는 일이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정작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쾌속으로 진행된다. 리듬감에 일종의 낙차를 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 언급한 벽란정 시퀀스는 무륵이 도착했을 때 한 차례 전투가 이미 끝난 상황으로 묘사된다.

= 콘티 작가가 그 장면을 짤 때 여기서 밀본도사 30명과의 액션 신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기에 아무와도 싸우지 않아도 된다, 그냥 다 죽어 있으면 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그 이전에 신검을 찾는 이들의 표정과 움직임, 그것이 발생하는 긴장감을 묘사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왜? 마지막 피날레 액션까지 관객이 지치지 않고 당도하도록 여력을 만들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가드의 집 앞에서 벌어지는 피날레 장면 역시 액션이 벌어지기 전에는 느리게, 액션이 시작된 이후로는 과감히 치고 나가는 쪽으로 템포를 조절했다. 이 모든 건 사실 몇초 차이, 길어야 30~40초 차이의 밀고 당김이다.

※영화의 후반부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너는 몰랐겠지만 나는 계속 네 옆에 있었어

- 무륵과 이안의 로맨스를 담백하게 처리한 이유는? 류준열이란 배우에게서 나올 수 있는 여러 면모 중 소년성을 극대화했다.

= 류준열, 김태리 배우와 대화 중에 한번은 그런 질문이 날아오기도 했다. “감독님 이건 멜로인가요?”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다. 로맨스에 집중하는 영화는 아니라는 점을 배우들도 반가워했다. 누군가를 찬찬히 생각하거나 그리워하는 것도 사랑이라면 물론 멜로일 수 있지만.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우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는 일이란 생각도 있었다. (갑자기 놀라며) 아니, 내가 이제는 이런 말도 천연덕스럽게 하는구나! <암살> 때까지만해도 이런 얘긴 잘 못 꺼낸 것 같은데…. 삶의 우여곡절 덕분이라고 해두자. (웃음) 무륵 캐릭터만 놓고 볼 때 좀더 건드려보고 싶었던 건 마음속에 숨겨둔 두려움이다. 어마어마한 능력을 지닌 것 같기도 한데 실은 별 볼 일 없는 인간 아닌가 하는 자기 의심을 지닌 인물이다. 다만 그 속을 절대 꺼내어 보여주지 않는다. 이안은 그런 무륵이 처음으로 자기 속내를 얘기하고 싶은 사람일 테고.

- 김태리 배우는 공교롭게도 <악귀>와 <외계+인>에서 어둠에 잠식된 장르적 연기를 보여준다. 장르적 컨셉이 더 돋보이는 연기를 하는 순간에도 넘치거나 모자람 없는 연기의 완결성에 놀랐다. 김태리가 뛰어난 테크니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듯 싶다. 곁에서 지켜보는 감독에겐 어떻게 보였을지 궁금한데.

= 테크닉은 기술이고 기술은 어쩐지 잡스러운 것이란 편견이 있기도 한데 감독으로서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나는 제발 배우들이 더 많이, 수많은 테크닉들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태리라는 배우는 분명 내게도 말하지 않는 어떤 뛰어난 테크닉의 소유자인데 아무 테크닉도 없는 것처럼 연기를 한다. 그래서 놀라운 결과들이 나온다. 죄수가 깨어난 이후를 연기할 때 김태리는 일부러 더 나빠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생각과 의도로 만들어진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심지어 저 밑바닥에 어쩐지 저 사람은 슬퍼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현장에서 그것에 대해 감탄하면서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잘하고 있어서 조금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본인은 계속 “감독님, 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 하는데, 내 할 일은 이미 그가 하고 있는 것을 망치지 않고 계속하게 두는 것뿐이었다.

- 52개의 편집본 중 제목 ‘외계+인’이 가리키는 정체성의 문제를 더 파고든 버전은 없었나. 몸속에 잠든 외계인 죄수와 공존하는 삶, 혹은 그들의 탈옥이 의미하는 바가 2부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길 기대하는 관객도 있을 텐데.

= 얼마나 풀어낼지 고민이 깊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주제를 의식해서 신을 더 오래 지속시키고 다른 대사를 남겼다면 결국 설명하는 꼴이 되고 말았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나는 ‘문득 떠오른다’는 말을 좋아한다. 서사적으로 슥 스쳐 지나가는 정도이지만 나중에 문득 다시 떠오르는 것들을 만들고 싶다. 달리 말하면 중요한 것을 일부러 강조하지 않는 것이다. <서울의 봄>을 본 뒤에 김성수 감독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태신이 아내에게서 받은 목도리를 두르는 장면이 너무 좋았다고. 티나게 힘준 장면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의 동작이 내게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 한국형 판타지의 디테일로서 새롭게 고민한 것은 무엇인가. 우왕, 좌왕과 나무꾼들이 마주할 때의 기묘한 분위기나 사당의 풍경(風磬)을 잡는 인서트 컷 등에선 은은하게 호러적인 뉘앙스도 묻어난다. 1부에서 부각된 밀본 미장센도 밀교적 요소를 섬뜩하게 해석한 부분이 있다.

= 장재현 감독(<사바하> <파묘>)과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웃음) 어느 날인가 고가구, 다기들을 모아놓은 훌륭한 찻집에 갔는데 내가 앉은 테이블 위에 커피잔 크기의 나무조각상 두개가 올려져 있었다. 언뜻 기괴한 모습이기도 해서 주인에게 물었더니 상여 안에 넣는 목각 인형이라고 했다. 첫 번째 충격은 우리 전통문화에 대해 내가 이토록 금시초문이라는 점에서 창피함으로 찾아왔고, 두 번째 충격은 우리가 이렇게 죽음 곁에 있으면서도 영영 죽지 않을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태연히 커피나 마시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새삼스러운 실감으로 다가왔다. 사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인식은 오래전부터 우리 문화에 스며들어 있었으나 언젠가부터 금기시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조금만 안쪽을 열어서 보여주면 곧잘 낯설고 무서운 느낌을 받는 게 아닐까.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할 때부터 이런 요소들이 재미있었고 그 흥미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다.

- 엔딩에서 1960년 대 팝인 로이 오비슨의 가 모든 캐릭터들이 총집합한 슬로모션 장면을 채운다. 할리우드 고전 장르물들의 복고적인 분위기를 불러오기 위함이었을까. 너무 유명한 곡을 쓴다는 데 부담은 없었나.

= 내게는 <블루 벨벳>(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음악인데 MZ세대는 의외로 잘 모르는 곡이라는 말도 있고. 한국 음악을 찾으려고 시도했지만 를 뛰어넘는 선택지를 찾지 못했다. 처음 현장 편집 때 깔아보고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전주 없이 곧바로 노래가 시작되어서 본격적인 액션이 시작되는 순간과 잘 맞아떨어지고 경쾌한 멜로디지만 슬픈 이면이 있는 것도 좋았다. 너무 서글프지 않으면서 미묘한 그리움도 있다. 거대한 시간이 덧없는 꿈처럼 아울러지길 바랐다.

- <외계+인>, 그리고 <전우치>는 500~600년 단위의 아득한 시간을 오간다. 이 꿈같은 설정의 바탕에는 동양철학과 친밀한 감독의 인식관도 자리하는 것 같다. 개인적인 기원을 찾는다면 무엇일까.

= 종교는 없지만 내게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 내가 과연 진짜 나야? 질문하는 이야기들에 끌린다. 그래서 SF 작가들 중 필립 K. 딕을 흠모하는 건지도 모른다. 필립 K. 딕의 문학이 일관되게 ‘네가 너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고 묻잖나. 오래전에 <토탈 리콜>(폴 버호벤 감독의 1990년 영화. 필립 K. 딕의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가 원작 소설이다)을 누군가가 해적판 만화로 그린 것을 본 적 있었는데 정말 충만한 즐거움을 느꼈다. <외계+인>을 짜릿하고 즐거운 어드벤처 영화라고만 말하고 싶지만 한 꺼풀 벗기면 ‘네가 몰랐겠지만 나는 지난 10년 동안 네 옆에 있었어. 근데 문제는 나도 몰랐어’ 같은 식의 문제가 있다. ‘사실 내가 저 사람이고 너는 이 사람이야’ 같은 비밀 속의 호명이랄까. 그런 기이함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가 사실은 가장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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