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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불가능을 탐하다, 중화권 청춘영화의 꾸준한 호응에 관한 짧은 칼럼
이유채 2024-02-21

<말할 수 없는 비밀>

2월14일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중국 청춘영화 <우견니>가 개봉했다. <우견니>란 제목은 자연히 국내에 ‘상친자’(<상견니>에 미친 자)라는 팬덤까지 형성된 인기 대만 드라마 <상견니>를 떠올리게 했다. 찾아보니 영화 <상견니>는 지난해 이맘때쯤인 1월25일 개봉해 당시 36만명이라는 범상치 않은 관객수를 기록했다. 올해 같은 날에는 개봉 1주년을 기념하는 재개봉 이벤트도 있었다. <상견니>의 허광한은 <여름날 우리>의 허광한을 소환시켰다. <여름날 우리>는 박보영, 김영광 주연의 한국영화 <너의 결혼식>을 리메이크한 중국 청춘영화다. 2021년 개봉 당시엔 4만명이라는 미미한 수치를 남겼으나 2023년 재개봉 때 반응이 왔고 현재 누적 관객수는 41만명까지 뛰었다. <상견니>와 <여름날 우리>가 유의미한 스코어를 기록했다는 깨달음과 밸런타인데이라는 시기는 국내에 개봉했던 중화권 청춘영화를 다시금 훑어보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남색대문> <말할 수 없는 비밀> <안녕, 나의 소녀>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장난스런 키스> <청설> <해길랍>…. 낚싯줄에 물고기가 줄줄이 걸려 올라오듯 관련 작품이 계속 나오는 광경과 늘 함께 발견되는 이 영화들에 관한 마니아적 리뷰는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국내에서 중화권 청춘영화에 대한 수요가 계속 있었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그리하여 새삼스럽게 중화권 청춘영화가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예쁨과 흥과 진심의 세계

<나의 소녀시대>

솔직해지자. 중화권 청춘영화를 보는 이유의 8할은 예뻐서일 것이다. 이 영화들은 특별히 예뻐 ‘보이게끔’ 만들어졌기 때문에 매혹적이다. 대만이 온난한 기후인 영향도 크겠으나 기본적으로 영화 속 날씨는 화창하고 그 덕에 식물은 푸르르다. 햇빛은 버스 창가에 앉은 첫사랑의 뺨을 간질이거나(<해길랍>) 피아노 치는 손을 우아하게 보일 만큼만(<말할 수 없는 비밀>) 쏟아진다. 비는 터전을 집어삼키는 <기생충>의 폭우가 아닌 연인이 웃으며 함께 뛰거나(<우견니>) 낭만적 키스를 나누기에 적당한 수준으로 내린다. 의상과 공간은 악의 없이 미화한다. 교복은 흙탕물이 묻어도 더러워 보이는 법이 없으며 낡은 학교와 집은 어딘가 감성적인 느낌과 예스러움을 확보한다. 그렇게 영화의 보호를 받는 과거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신기루와 같은 노스탤지어에 빠지게 하고 다시금 청춘영화를 찾게 한다.

주인공의 겉모습은 어떠한가. 가진동, 왕대륙, 주걸륜, 허광한 등의 남자배우와 가가연, 계륜미, 송운화, 진연희 등의 여자배우를 떠올려보자. 그들 모두는 촌스러운 기색이 있을지언정 훤칠한 미남이거나 귀여운 미녀다. 그들이 분한 캐릭터들은 젊음의 아름다움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까지의 시간을 주로 다루는 청춘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영원히 늙지 않는다. 입시와 꿈, 우정과 연애 문제에만 골몰하며 결혼생활, 출산과 육아, 노년의 삶까지 고민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다. 몇년 뒤로 시간이 점프한다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성장기라 여전히 피부는 탱글탱글하고 체력은 변함없이 짱짱하다. 노화의 공격이 원천 차단된 세계 안에서 어리고 젊은 상태로 영구 보존된다는 점은 노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두려움을 가진 우리의 시선을 자꾸만 잡아끈다.

영화음악의 가치

<상견니>

좋은 영화음악은 청춘영화를 보고 싶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 감성적인 멜로디에 인물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랫말을 얹은 음악을 이용하는 건 청춘영화의 일종의 공식이다. 그리하여 음악영화와 비견하는 청춘영화는 음악영화에 각별한 사랑을 보내는 한국 관객의 흥을 건드린다. <여름날 우리>는 중국에서 잘 알려진 가수 광량의 히트작 <동화>(2005)를 가져왔다. 극 중 ‘난 동화 속 네가 사랑하는 그 천사가 될 거야. 두손을 펼치면 날개가 돼서 너를 보호할게. 믿어줘, 우리가 동화 속 이야기처럼. 행복하고 아름다운 해피엔딩이 될 거라는 걸. 우리 함께 우리의 이야기를 쓰자’라는 노랫말이 광량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울려 퍼진다. 그럴수록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첫사랑 요우용츠(장약남)를 향한 저우샤오츠(허광한)의 간절함은 극대화되고 저우샤오츠를 응원하는 관객의 마음은 배가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O.S.T인 후샤의 <Those Bygone Years>도 비슷한 기능을 한다. ‘잠시 후 만날 넌 분명 내 상상보다 예쁘겠지.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라는 가사가 담긴 애절한 노래는 좋아했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의 결혼식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봐야 하는 남자의 복잡한 심경을 단번에 전달한다. <상견니>의 <Last Dance>는 죽은 연인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절박함과 어우러지며, <남색대문>과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피아노 사운드트랙은 아련함을 돋우면서 해당 영화들이 회자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마지막으로 청춘영화는 순수한 진심으로 구성된 세계라는 점에서 관객을 건드린다. 청춘영화 의 인물들은 누군가를 전력을 다해 사랑하고 또 같은 크기로 사랑받는다. 다시 말해 100% 상의 사랑과 우정을 나눈다. 그 안에 계산 따윈 없다. 친구가 슬퍼하는 걸 볼 수 없어 자신이 비난받는 상황을 감수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다. 시간을 분산 투자해서 써야 하고 관계를 재고 따져야 손해 보지 않는 현실에서 그와 같은 ‘올인’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는데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불가능을 탐한다.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섣불리 용기낼 수 없을 관계를 이어나가는 주인공들에게 대리만족하면서 청춘영화를 찾아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살면서 한번쯤은 그들처럼 누군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몽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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