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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왜 하필 닭강정인가
임소연 2024-04-11

<닭강정>을 봤다. 의문의 기계에 들어간 여자주인공이 닭강정으로 변한다는, 상상조차 못해본 설정을 밀고 나가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끝까지 다 보기 위해서는 상당한 항마력이 필요한 B급… 도 아닌 D급 코미디라고 하기에 처음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몇몇 지인들의 호평에 솔깃해졌다. 강력한 ‘반전평화’의 메시지를 읽어낸 이도 있고 장안의 화제인 <삼체>보다 더 재미있게 봤다는 이도 있었다. 질문도 떠올랐다. 왜 감자튀김도 아니고 탕후루도 아닌, 닭강정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사람이나 물건의 겉모습에 관심이 많은 내가 재밌게 볼만한 콘텐츠겠다 싶은 기대가 생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만족. 첫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보는 내내 너무나 즐거웠다. 기대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외모가 중요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신선한 방식으로 다루어진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최민아(김유정)가 변신한 닭강정이 같은 식당에서 만든 다른 닭강정과 섞였을 때부터다. 겉에 들러붙은 깨의 개수까지 완전히 동일한 많은 닭강정들 사이에서 어떻게 ‘최민아 닭강정’을 골라낼 것인가?

당연히 최민아를 지극히 사랑하는 두 남자, 아버지 최선만(류승룡)과 썸남 고백중(안재홍)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짐작했다. 진실한 사랑의 힘이 그들로 하여금 튀김옷이나 물엿, 깨와 같은 겉모습에 가려 보이지 않는 닭강정의 내면, 그 안에 있는 다른 닭살 쪼가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최민아라는 아름다운 존재를 기어코 보게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 뻔한 예상이 빗나가서 얼마나 기뻤는지. 닭강정을 마침내 분별해낸 이는 고백중의 전 여친으로 갑자기 등장한 맛 칼럼니스트 홍차(정호연)다. 그것도 눈으로 봐서가 아니라 코로 냄새를 맡아서. 진짜는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에 있다는 위선적 이분법을 훅 치고 들어오는 후각이라니!

생각할수록 웃긴 점은 이 드라마에서 말도 안되는 여자주인공의 닭강정 얼굴(?)보다 더 문제적인 것이 남성 등장 인물들의 외모라는 사실이다. 우선 내내 노란 바지만 입고 나오는 고백중은 멋진 남자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변신 기계 안에 들어가 ‘차은우’를 외칠 때 근래 들어 가장 크게 웃었다. 그래놓고 그가 기술의 도움 없이도 점점 잘생겨진다는 최민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말이다. 기계를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려는 유인원 박사(유승목)를 돕는 (척하는) 그의 천재 조카 유태만(정승길)은 어릴 때 한약을 잘못 먹어 노안이 된 20대 청년이다. 심각하게 늙어 보이는 얼굴 때문에 유태만은 번번이 연애에 실패하고 잘생긴 그의 형을 질투한다. 잘생기고 싶은 욕망은 그가 기계를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주요 동기로 작동한다.

200년 전 이 기계를 처음 발견한 조선시대 몰락 양반가의 자제 정효봉(문상훈)은 기계 덕분에 미남이 된 유일한 인물이다. 당대 영재로 인정받고 존경받던 그 역시 신분이 낮음에도 자신보다 잘생긴 동료들에게 심한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대단한 과학기술을 단지 잘생겨지는 데 사용하려는 남자들을 보는 것이 이렇게 웃음이 날 줄이야.

정작 왜 하필 닭강정인지에 대한 답은 원작자 인터뷰 기사에서 찾았다. 박지독 작가는 “닭강정 혼자 다 먹고 닭강정이나 돼버려라!”는 언니의 말에서 웹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인간에게 닭강정이 되라니 너무 하찮은데 또 너무 심오하다. <삼체>가 그렇게 심오하다는데 조만간 닭강정을 먹으면서 봐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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