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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음악감독 김상헌
2002-10-09

˝내가 찾는 음악,흔히 볼 수 없죠˝

‘순수함’과 ‘유치함’은 등을 맞대고 있는 단어다. 순수함을 표방한 영화 <연애소설>은 그래서 유치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도 몰래 손이 올라가 간간이 낯을 긁적였던 건 그래서다. 처음 이한 감독에게서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김상헌(38)은 ‘스무살의 풋풋한 첫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결코 순진하지 않은, 비운의 감정마저 묻어나는 음악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루어질 수 없음’을 충실한 전제조건으로 다는 첫사랑 앞에서 슬쩍 비극적이 되는 건 필연이었다. 그러나 해피엔딩 아니면 처절한 비극으로 끝날 연애소설이 실은 동화였음을 그도 나중에 알았다.

러시 필름을 본 순간, 그동안 구상했던 음악적 구조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을 느꼈다는 그는, 그제야 이한 감독이 원한 것이 사모곡이 아니라 동요였음을 눈치챘다. 필름 안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그걸 보여줬다. 스무살의 사랑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말투가, 행동이 꼭 열살배기들 같았다. 감독이 그것을 요구했단다. 서투를 것, 몹시 어설플 것, 그리고 가 아니라 <연애소설> 같을 것. 이 영화는 소설 같은 영화가 아니라 영화 같은 소설이고, 레벨을 붙이자면 초등학생용 그 비슷한 언저리라는 설명. 그런데 다 큰 어른들이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훌쩍거리도록 만드는 힘은 뭘까. 몹시도 서툴렀던 첫사랑은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추억하는 것보다 더 어설프고, 유치하고, 어렸던 게 아닐까.

생각을 정리한 그는, 일단 스스로를 ‘그라운드 제로’로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15년 이상 음악을 공부하면서, 매끈하기보다는 깊이있는 음악을 추구해온 습관 덕분에 내내 진중해지는 자세부터 바꿨다. 켜켜이 음악적 구조를 쌓아가기보다는 하나의 선율에서 출발해 쉽게 각인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들, 음악적으로 내세울 만한 것들을 버리고 나니, 오히려 감정에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첫사랑의 감정에 가까워지기 위한 그의 노력은 말보다 쉽지 않았던 셈이다. ‘다 버리니까 보이더라’는 말이 적절한 케이스. 6개월간의 작업이 무위가 되면서, 뒤늦게 음악 스타일이 재결정됐다.

“포크+언플러그드.” 전자음을 배제한 최소한의 악기 편성만으로, 일관된 선율을 끌고 나가고자 했다. 청명한 기타 사운드와 아주 소박하면서 중성적인 느낌을 주는 피아노, 그리고 플루트 등의 구성만으로 이루어진 음악은 뒷맛까지 깔끔하다. 배우 이은주의 피아노 참여와 손예진이 부른 <내가 찾는 아이>(들국화 원곡), 나중에 첨가된 차태현의 <모르나요>까지 묵직한 O.S.T가 올 가을 로맨스 해프닝을 예고하는 듯.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프로필1965년생* 서울대 작곡과 84학번92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유학* 5년간의 유학생활 마치고 97년 영화음악계 입문* <정사> <퇴마록>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순애보> 등의 음악 스탭으로 참여* 멜로드라마 <연애소설>로 음악감독 입봉현재 경희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강사로 활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