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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찌르는 자국 정신문명에 대한 자부심,<영웅 英雄>
2003-01-21

■ Story

기원전 3세기의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의 막바지로 진나라 왕 영정이 대륙을 통일하기 직전이다. 전국 7웅 가운데 진의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자 영정(진도명)을 암살하려는 자객들이 무수히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 조나라 출신의 장천(견자단), 파검(양조위), 비설(장만옥)은 영정마저도 두려워하는 무예를 지녔다. 영정은 호위병에 둘러싸인 채 누구든 백보 안에 접근하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린다. 그런데 이름없는 장수인 무명(이연걸)이 3인의 무사를 모두 처치한 공로로 십보 안에서 영정을 알현하는 기회를 얻는다. 무명의 무용담이 펼쳐지는 가운데, 그의 의도와 정체를 둘러싸고 영정과 무명의 머리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 Review

<영웅>의 첫 번째 특징을 꼽으라면 무엇보다도 그 압도적인 규모를 들어야 할 것이다. 훗날 진시황으로 불리게 되는 영정의 왕궁 문이 열리고 수천명의 군사와 신료가 도열한 모습을 보면 입에서 저절로 ‘헉’ 소리가 튀어나온다. 그외에도 용맹한 군사들이 열을 지어 쏜 화살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채 날아간다든가 수만리 높은 산 위에 둘러싸인 호수에서 물 위를 날며 결투를 한다는 등 어지간히 허풍 센 무협지에서나 보았음직한 표현들이 진짜로 시각화되어 수시로 화면 안에 등장한다. 스펙터클에서 이 영화와 견줄 만한 것은 <반지의 제왕> 정도가 아닐까 싶다.

서사구조상으로 <영웅>은 <라쇼몽>이나 <시민 케인>적인 장치를 취했다. 장천과 파검, 비설이라는 절대 고수들이 어떻게 무명에게 연달아 패하게 되었는가라는 이야기가 여러 가지 버전으로 반복되는 것이다. 영화의 앞과 뒤는 명백한 현실이며, 그 현실 속의 두 인물 즉 무명과 영정이 들려주거나 상상하는 세 무사의 이야기가 중간에 끼어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같은 형식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영웅>의 서사장치가 도달하는 효과는 상이하다. 현실이 명백하고 절대적으로 해명되며,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거짓말과 상상, 실제 벌어진 현실로 나뉘어 판명된다. 이 장치의 일반적인 쓰임새가 단 하나의 객관적인 진실이란 과연 가능한가를 의심하면서 복수의 관점과 해석을 통해 한 인물이나 사건의 다면성을 드러내려는 데 있다면, <영웅>의 경우는 진실과 거짓이라는 위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단선적인 내러티브로 수렴된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색채를 통해 그 의미를 부여받는다는 점에서 <영웅>은 장이모 감독의 영화답다. 무명이 들려주는 격렬한 사랑과 질투 버전은 공간과 의상 등이 온통 붉은색으로 뒤덮여 있으며, 영정이 상상하는 희생의 버전은 푸른색으로, 파검과 비설이 옛이야기를 회상하는 것은 녹색으로, 실제 벌어진 진실은 흰색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힘의 상징인 진나라 왕 영정과 그의 궁궐, 군사들은 모두 검은 빛으로 통일했다. 이런 아이디어는 동양화의 화론(畵論)에서 왔음직하다. 이 영화의 제반 요소들은 하나의 뚜렷한 스타일을 이루도록 결합되어 있는데, 바로 무협 양식이 그것이다. 무협은 일종의 표현주의적 스타일이다. 공간과 의상, 분장, 연기 양식, 대사 등이 모두 현실적이라기보다는 특정한 관행에 따라 양식화되어 있으며, 과장된 양식화를 통해 심리적 현실을 시각적으로 외화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장이모 감독이 무협이라는 중국 특유의 표현주의적 스타일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사실 <영웅>은 여러 가지 층위에 걸쳐 중국적인 것 혹은 중국의 욕망에 관해 말하는 영화다. 우선 규모의 스펙터클을 채택한 것부터가 그러하다. 중국의 이미지는 흔히 ‘거대함’으로 요약된다. 땅 넓이와 인구, 건축물, 게다가 최근에는 경제적 잠재력까지 ‘거인 중국이 다가오고 있다’는 수사는 주변 국가뿐만 아니라 서방세계에까지 매우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장이모 감독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심지어 바둑알조차 커다란 주걱으로 퍼서 옮길 만큼 장대한 것으로 묘사했다.

거기에다 중국은 동양적인 정신문명의 정수라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검법과 서법 즉 무와 문이 통한다는 신비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무예의 절대 고수들이 창과 검으로 피바람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현의 음률에 맞추어 기 싸움을 벌임으로써 마치 철학자들처럼 의경(意境)을 다툴 뿐이라거나, 무협에서 협(俠)의 정신, 곧 세계의 큰 목표를 위해 작은 이해관계를 버린다는 전통 관념을 영화의 주제로 내세운 것 등이 그것이다. <영웅>의 진정한 주인공은 파검이라는 감독의 말은 단순히 양조위라는 배우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나르시스트적인 중국애호가(Sinophilie)가 던지는 영화의 메시지는 너무도 쉽게 권위적이고 공격적인 이데올로기로 연결된다. 영화는 파검의 입을 빌려 진시황이 비록 독재자에다 가족을 죽이고 나라를 무너뜨린 원수일망정 그를 죽이면 안 된다고 설득한다. 강력한 중국 건설을 통해서 ‘천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다른 무사들 역시 결과적으로 이 말을 받아들이고, 왕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적진에 있었다며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느닷없이 만리장성을 비추어줌으로써 중국의 역사가 실제로 그렇게 흘러갔음을 확인시킨다. 차이나(China)의 어원이 진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영웅>은 중국이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음을 확인하려는 중국인의 소망이 활짝 펼쳐진 욕망의 미장센이다. 중국 대륙에서 번지는 <영웅>의 흥행 열풍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국가적 정체성이라는 공허한 미학적 상징에 의탁해서 집단적인 관념을 전달하려는 욕망은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감독’이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는 감독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인 것 같다. 이것을 목도하는 변방의 관객으로서 중화주의와 팍스아메리카나 사이에 끼여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들 뿐이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cafe.daum.net/cw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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