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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벌이는 흥미진진한 게임,<히 러브즈 미>
손원평(소설가) 2003-02-11

■ Story

미술을 전공하는 안젤리끄(오드리 토투)는 심장전문의 루이(사뮈엘 르 비앙)에 대한 사랑으로 항상 애달아 있다. 루이에게 선물도 보내고 그의 초상화를 그려 보내기도 하고 같이 여행갈 계획도 세우지만, 그는 임신한 아내를 떠나지 못하고 늘 안젤리끄를 바람맞히거나 혼자 남겨두기 일쑤다.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목격한 안젤리끄는 상심한 마음에 자살을 기도하게 되고, 그 순간 영화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 Review

핑크빛 하트로 가득 찬 아기자기한 포스터에 ‘그는 나를 사랑해’(he loves me)라는 달콤한 제목, 게다가 오드리 토투의 묘한 미소까지 합쳐졌을 때 과연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를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러나 이 영화는 단연코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며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놀랍게도 스릴러의 토양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물론 이 스릴러는 결코 섬뜩하거나 긴장으로 가득 차 있지 않다. 이 영화에서의 ‘무서운 짝사랑’은 결코 미저리의 사랑처럼 위협적이지 않다는 거다. 관객은 계속해서 안젤리끄의 안타까운 사랑에 시선을 빼앗긴다.

관객을 속이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이 영화는 매우 신선하게도 몽타주를 이용하고 있다. 숏과 숏이 맞물려 있을 때 관객은 그 연결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낸다. 예를 들어 공원에서 아이와 즐겁게 뛰노는 루이를 보여주는 숏 뒤에 미소를 지으면서 그를 그리고 있는 안젤리끄의 숏이 붙을 경우 둘이 한 화면에 같이 담겨 있지 않아도 관객은 그들이 같이 공원에 놀러온 것으로 자연스레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카메라의 시선을 주관적인 시선으로 대체해버린 것 같은 숏들은 영화 곳곳에 드러나지 않는 장치처럼 숨어 있다가 나중에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영화의 후반부에 보여지는 반전은 여타의 스릴러나 공포영화들의 반전처럼 숨겨졌던 이야기들을 갑자기 짜잔 하고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관객이 눈치채지 못했던 카메라의 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방식으로서의 반전이다.

이렇게 볼 때 ‘그는 나를 사랑한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he loves me, he loves me not)라는 영어제목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것이 된다. 감미롭게만 느껴지는 사랑이 실은 얼마나 허구나 환상에 의존하는 건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혼자만의 읊조림은 매우 커다란 복선을 가지면서 새롭게 다가온다. 따뜻한 색감에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낫 킹 콜의 <러브>, 게다가 오드리 토투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살짝 비튼 영화는 제법 탄탄한 시나리오의 구조 위에서 관객과 흥미진진한 게임을 벌인다. 그리고 그 게임은 관객에 익숙해져 있는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사랑의 문법’을 영화적으로 관찰하고 비튼 것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wetsox@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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